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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진 놀이

by 찔레꽃
temp_1747092370865.-616607689.jpeg 서산의 중국 음식점 '만리장성'에 걸린 액자



한자가 들어간 액자나 표구를 보면 기분이 즐겁다.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즐거운 것이 아니고, 모르기 때문에 즐겁다. 뭔 소리? 금방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을 이모저모 살펴 전모를 파악하는 과정이 흡사 단서를 추적해 범인을 찾아내는 탐정의 행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즐겁고 재미지겠는가. 하지만 전제가 있다. 적절한 난이도여야 하는 것. 너무 어려우면 엄두가 안 난다. 이런 점에서 음식점에서 이따금 만나는 액자나 표구는 최적의 재미꺼리이다.


어제 서산의 대표적 중국 음식점 '만리장성'에 갔다가 카운터 옆의 액자(사진) 하나를 보았다. 초서체 글씨였지만 난이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아 사진을 찍어와 해석을 시도했다. 두어 시간 씨름 끝에 거의 전모를 파악했다('거의'라는 부사를 쓰는 건 판독에 자신 없는 글자가 두어 자 있고 해석도 완전하게 자신하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의 파악에는 큰 지장이 없을 듯싶다).


'만리장성' 카운터 옆에 있는 액자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方性原中出鋸才 방성원중출거재 근원의 바른 심성으로 큰 재주 내어

崇高一生輝煌來 숭고일생휘황래 숭고한 일생을 빛나게 지낼지니

德善爲主宣世界 덕선위주선세계 덕과 선 주장 삼아 세계에 펼치면

富貴榮華代傳代 부귀영화대전대 부귀영화 대를 이어 전해지리


낙관에 보면 '숭덕(崇德) 군은 이를 잘 보존하시라[崇德君留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대의 이름자를 활용해 축원하는 내용의 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숭덕'은 '만리장성'의 주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아님 말고.


혹 이후 '만리장성'에 가시거든 액자 내용을 소리 내어 읽으며 "흠, 좋은 내용이로다"라고 해보시기를! 주인이 풀이할 수 있냐고 묻거든 약간 거드름을 피우며 위와 같이 해석해 주시기를! 해석에 얼마간의 미쓰가 있어도 주인이 감탄하며 음식 값의 절반은 깎아주지 않을런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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