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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렁이 제 몸 추기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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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책, 괜찮은 거 같유. 사실, 그동안 안 읽다 우연히 읽게 됐는데….”


언젠가 하룡 씨가 한 말이다(하룡 씨는 남성이 아니고 여성이다. 형님이라는 말에 오해들 할까 봐 하는 말이다. 그리고 하룡 씨의 성명은 하용ㅇ인데, 언젠가부터 내가 우스개로 ‘하룡’이라고 부른다. 소탈한데다 웃음도 많아 코미디언 ‘임하룡’이 생각나 붙인 별명이다). “그래요? 고맙네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엄청 기뻤다.


책을 내서 누군가에게 주면 상대에게 그 책에 대한 평을 받아보고 싶어 진다(악평보다는 호평을. 하하). 매우 자연스러운 기대인데, 정작 책을 받은 사람들은 십중팔구 감감무소식이다(실은 나도 남에게 책을 받으면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러니 남들이 내 책에 대해 읽고 평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인 셈이다). 그런데 정말 뜻하지 않게 메아리가 들려오는 경우가 있다. 하룡 씨가 그랬고, 어제 받은 책이 그랬다.


어제 내가 받은 책은 『단단한 일상을 만드는 내 인생의 책들』(작은 숲)이다. 교사 독서모임 ‘간서치(看書痴)’에서 낸 책으로, 자신들이 읽은 책에 대한 평가와 생각 느낌 그리고 책을 통해 성장한 내용을 조곤조곤 그러나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교사라면 얼핏 생각하기에 독서를 많이 할 것 같지만, 적어도 내 경험으로 보면, 교사만큼 독서를 아니하는 직업인들도 드물다. ‘엉~? ’ 하고 의아해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지만 교직에 몸담았던 분들이라면 내 말에 공감을 표하지 않을까 싶다. 뭐, 이유야 잡다하게 댈 수 있지만 제번(除煩)하고 하여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간서치는 20년 가까이 독서 모임을 유지했는데, 내 보기에, 이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한 이들에게 내 책이 선택됐으니, 영광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하룡 씨가 말하고 『단단…』에서 읽은 내 책은 『길에서 만난 한자』이다. 제목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길을 가며 만난 이런저런 한자들을 대상으로 잡다한 생각을 풀어놓은 책이다. 현장에 있을 때 아이들 학습에 도움이 될까 싶어 만들었던 자료들을 다듬어 책으로 낸 것이라 그렇게 깊이가 있는 책은 아니지만 한자에 낯선 이들에겐 그런대로 재미있을 책이라고 생각한다(아이고, 이거 내가 내 자랑하려니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네). 이 책에 대해 김정민(현재 공주여중 근무) 선생님께서 쓴 독후감이 『단단…』에 한 꼭지 실려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알몸으로 네거리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내면 남의 평을 듣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했지만 막상 이렇게 활자화되어 관심을 받으니 기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든 것이다. 과연 내 책이 이런 관심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나 싶었던 것.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공명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고민을 김 선생님도 하고 있었고, 그런 김 선생님에게 내 책이 작은 도움을 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책 내용이 보잘것없어도 상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그 책은 충분한 값어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중 ‘근원적 고민’을 해야 하는 교과가 있다. ‘왜 이 과목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해답을 줘야 학습 동기가 부여되는 과목들이다. 영어나 수학 과학 과목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속칭 변두리 과목은 이런 고민을 해야 하고, 한문은 그 변두리 과목 중에서도 변두리 과목이기에 그런 고민을 아니할 수 없다. 머리가 굵은 학생들을 대하면 그런 고민을 덜 할 수 있지만 아직 말랑말랑한 머리를 가진 학생들을 대하면 그런 고민이 더해진다. 김 선생님도 그런 고민을 한 것 같고, 그랬기에 내 책에 공명되는 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내가 내 책에 대해 겸양의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저 책에 있는 내용을 쓰는 동안은 약간 미쳐있었다. 심지어 교직을 그만두고 ‘한자 찾아 삼만리’까지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김 선생님 글 덕분에 『길…』을 꺼내 다시 봤는데, 글은 많이 부족하지만, 당시의 열정이 새삼 느껴졌다. 지금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열정이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면서 “이예요, 이예요”라고 말한 것 같다. 하하. 여하 간에, 세상에 내보낸 책에 대해 메아리를 듣게 되는 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어제 받은 『단단…』은 그 기쁨을 선사했다. 글을 써 주신 김정민 선생님 그리고 독서 모임 간서치 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리고 싶다. 『단단…』에는 다양한 책이 소개돼 있다. 한 꼭지 한 꼭지 천천히 읽으며 직접 그 책들을 구해 읽어보기도 하려 한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의미 있는 일일 터이고, 그것이 글을 써 준 김 선생님과 독서 모임 간서치에 대한 예의일 터이다.


책에서 보니, 김 선생님의 연배가 50대인 것 같다. 50대이면 이즈음 흔한 말로 옛날 30대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을 상대하는 직업상 점점 힘이 딸리는 시기이다. 건강 잘 챙기시고, 나처럼 중도 하차 하는 일이 없으셨으면 좋겠다. 끝으로 김 선생님께 한 가지 부탁. 간서치 대장인 최ㅇ숙 선생님께 안부 인사 전해 주셔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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