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의 연주

고황(顧況)의「이공봉의 공후 연주를 노래하다[李供奉彈箜篌歌]」

by 찔레꽃


pimg_7232191432155546.jpeg 프랑스 책에 실린 고황(顧況)의 「이공봉의 공후 연주를 노래하다[李供奉彈箜篌歌]」.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봉건(1928∼1988)의 「피아노」란 시이다. 피아노 소리에 대한 흥취를 대담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청각 예술인 음악을 시각 예술인 시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보니 이런 강렬하면서도 도발적인 이미지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피아노 연주를 듣지만 그 연주의 정수를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이는 많지 않은데, 전봉건은 그 많지 않은 이들 중 하나였을 것 같다. 그랬기에 이 같은 시를 지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사진은 당대의 시인 고황(顧況, 생몰년 미상)이 지은 「이공봉의 공후 연주를 노래하다[李供奉彈箜篌歌]」의 일부분이다. 프랑스에 가있는 딸아이가 찍어 보낸 사진인데, 프랑스어 번역 밑에 원문을 소개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읽어 보자(간자체로 쓰고 원시와 다른 한자를 쓴 것도 있어, 번체자로 고쳐 쓰고 잘못 쓴 한자도 바로 잡았다).


胡曲漢曲聲皆好 호곡한곡성개호 호곡(胡曲) 한곡(漢曲) 그가 타는 소린 다 좋아

彈著曲髓曲肝腦 탄착곡수곡간뇌 곡들의 정수를 연주하기 때문이지.

徃徃從空入户來 왕왕종곡입호래 그 소리 왕왕 공중을 타고 민가에도 전해져

瞥瞥隨風落春草 별별수풍낙춘초 언뜻언뜻 바람 타고 봄풀에 내리기도.

草頭只覺風吹入 초두미각풍취입 풀들은 그 바람 아는 듯

風來草即隨風立 풍래초즉수풍립 바람 불면 바람 따라 일어서지.

草亦不知風到來 초역부지풍도래 풀들은 바람 불어오는 곳 모르고

風亦不知聲緩急 풍역부지성완급 실어 보낸 바람도 소리 완급은 이해 못해.


이공봉 – 공봉은 벼슬이름, 이름은 빙(凴) - 이 연주하는 절묘한 공후 솜씨를 찬미하고 있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세상의 그 어떤 곡도 다 명곡이 된다고 했으니, 이 이상의 극찬은 없을 것이다. 나아가 그의 연주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풀과 바람을 통해 그의 공후 소리가 갖는 절묘함을 한 번 더 찬미했다.


그런데 풀과 바람을 통해 이공봉의 공후 소리가 갖는 절묘함을 찬미한 내용은 은연중 시인 자신의 감상안(鑑賞眼)을 자랑한 것이기도 하다. 이해 못하는 대상을 통해 이해하는 자신을 드러낸 것이니까 말이다. 여기 풀과 바람은, 어쩌면, 시인을 제외한 세상 모든 이들을 상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봉건이 피아노 연주에 남다른 감흥을 느꼈듯 고황 역시 이공봉의 공후 연주에 남다른 감흥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몇 자만 자세히 살펴보자.


彈은 弓(활 궁)과 單(홑 단)의 합자이다. 한 번에 하나씩 활을 쏜다는 뜻이다. 쏠 탄. 연주하다란 의미의 타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활줄을 당겨 활을 쏘듯 줄을 당기거나 쳐서 연주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탈 탄. 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彈丸(탄환), 彈奏(탄주) 등을 들 수 있겠다.


瞥은 目(눈 목)과 敝(해진 옷 폐)의 합자이다. 언뜻 보다란 뜻이다. 目으로 뜻을 표현했다. 敝는 음(폐→별)을 담당한다. 언뜻 볼 별. 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瞥瞥(별별, 언뜻언뜻 보이는 모양), 瞥眼間(별안간) 등을 들 수 있겠다.


覺은 見(볼 견)과 學(배울 학) 약자의 합자이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사물을 인지하듯 이치를 터득해 무지몽매한 상태를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見은 뜻을, 學의 약자는 뜻과 음(학→각)을 담당한다. 깨달을 각. 覺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覺醒(각성), 觸覺(촉각) 등을 들 수 있겠다.


緩은 糸(실 사)와 爰(느즈러질 원)의 합자이다. 풀어헤쳐진 실처럼 느슨하다란 의미이다. 느슨할 완. 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緩慢(완만), 緩衝(완충) 등을 들 수 있겠다.


急은 心(마음 심)과 及(미칠 급)의 합자이다. 옷 폭이 좁다란 뜻이다. 급하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옷 폭이 좁다 보니 입는데 허둥대고, 허둥대다 보니 마음도 급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급할 급. 心으로 뜻을 표현했다. 及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뒤에서 앞으로 가려고 급하게 서두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急行(급행), 火急(화급)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공후는 우리 고조선 시대의 노래 「공후인(箜篌引)」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악기이다. 본래 서역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파됐다. 당나라 때 최전성기를 누렸고, 지금은 사라진 악기이다(현대 중국에 들어와 복원됐다고 한다). 서양의 하프와 비슷한 악기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 때 최전성기를 누린 것은 황실의 애호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반대로 공후가 사라진 것도 황실의 애호와 관련이 깊은데, 황실의 애호를 받는 음악이 민간에 전파되는 것을 원치 않아 왕조의 멸망과 함께 쇠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의 내용에서도 그런 폐쇄적 느낌이 나타나 있다. 민가에 이따금 들린다는 것이 그것. 공후는 아무리 좋은 것도 많은 이들과 함께 해야 오래가지 그렇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여민락(與民樂)’의 교훈을 일깨우는 악기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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