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누님은 근대 소설의 개척자이다. 『약한 자의 슬픔』, 『배따라기』, 『광염 소나타』등 다양한 예술 사조를 실험하는 근대 소설을 썼다. 거짓말 말라고요? 사실인데…. 증거를 대보라고요? 사진을 보셔요! 저의 중학교 입학 축하 선물로 준 영어 사전에 우리 누님 성함인 ‘동인’이 써있잖아요! 하하.
오늘은 우리 둘째 누님 생신이다. 1953년 생이니 72세시다. 나하고 물경 11년 차이가 난다. 나이 차가 많다 보니 살갑기보다는 시혜와 공손의 관계로, 누님한테 까분 기억이 없다. 누님은 씀씀이가 크고 음식 사치도 커서 생전 어머니께서 늘 걱정하셨다. 가진 게 별로 없는데 그렇게 생활하면 힘들 거라 여겨 그러셨을 터이다. 그러나 타고난 기질은 어쩔 수 없는지 누님은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시다.
그러나 누님에 대한 이런 관전평은 내가 결혼을 하고 살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느낀 점이고, 그전에는(특히나 철부지였을 적에는) 누님이 최고였다. 선물도 잘 사주고 용돈도 잘 줬기 때문이다. 70년대 촌구석에서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영어 사전을 선물 받은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이런 훌륭한 선물을 해준 분이니, 어찌 최고의 누님이 아니었으랴.
누님의 이름이 우리 근대 소설의 개척자 김동인과 같아서 그런지 묘하게 그와 닮은 면모가 있다. 소설가 김동인은 평양의 거부 집안 출신인데 씀씀이가 헤퍼 그 재산을 다 말아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님도 당신이 가진 재산에 비해 과도한 소비를 하여 늘 허덕인다. 그리고 그 허덕임을 생전 어머니와 언니 동생들에게 전가해 해결하려 해서 꽤 오랫동안 불화한 적이 있다(이런, 누님 흉봤네. 용서하이소). 김동인의 낭비벽에는 예술가적 허영이 크게 작용했다는데, 누님에게는 과시욕(?)이 있어 그런 것 아닌가 싶다.
누님은 김동인처럼 예술가는 아니지만 자식에게서 예술가가 나왔으니 어쩌면 이도 그와 비슷한 면모라고 볼 수 있다. 딸내미가 영화감독이다. 김동인과 닮은 면모 하나를 더 든다면, 과감한 추진력이라고 할 수 있다. 김동인이 사비를 들여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지 『창조』를 낸 것은 과감한 추진력이 밑바탕 됐다고 볼 수 있다. 우물쭈물했다면 그 일을 결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누님도 과감한 추진력이 있어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꼭 해결사로 나선다. 형님이 계시고 큰 누님도 계신데 말이다. 지금 형님이 독거노인 아닌 독거노인으로 생활하고 계신데, 그 생활을 뒷받침해 주고 조카들과 형수가 어떻게든 형님에게 신경을 쓰도록 압박하는 일을 누님이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나와 다른 누님들은 그저 약간의 금전적인 협조만 할 뿐이다). 70이 넘은 나이에 본인 형편도 넉넉지 않은데 이렇게 하고 있으니, 젊었을 때는 어떠했겠는가!
형제간 생일이 되면 각자 10만 원씩 축하금을 보내고 덕담을 건네는데, 오늘은 누님께 축하금 송금과 함께 한시도 한 수 지어 보냈다. 좀 과하긴 한데 마음에 드신단다. 아마도 부담을 느끼신 건 ‘마음에 자애로움 품고’란 대목일 것 같은데, 사실 누님이 그렇게 따땃한 분이 아니란 걸 본인도 잘 아실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최근의 형님 건도 그렇고 그간 집안의 큰 일 해결에 과감히 나섰던 것은 분명 마음에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그 애정이 이따금 부담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이런, 또 흉봤네. 용서하이소). 이렇게 보면 ‘마음에 자애로움 품고’란 말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누님, 자신감을 가지이소). 문득, 소설가 김동인도 우리 누님과 같이 ‘마음에 자애로움을 품고’ 형제간의 어려운 일을 해결했는지 궁금해진다.
누님은 올 8월 무릎 수술을 앞두고 있다. 수술 잘 받으시고 재활 훈련 성공하셔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만큼이나 걸음걸이도 카랑카랑하게 되시기를 빌어 본다.
時和氣淑不苦寒 시화기숙불고한 / 날씨 온화하고 기운도 맑아 춥지도 덥지도 않은 때
我家二姐東仁誕 아가이저동인탄 / 우리 집 둘째 누님 동인 씨 태어났네
心懷慈愛兼果敢 심회자애겸과감 / 마음에 자애로움 품고 과감함까지 겸비해
家事萬難總能寬 가사만난총능관 / 집안의 어려운 일들 많이도 해결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