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한 수
雙秋海棠 쌍추해당 두 베고니아
愛憐秋海棠 애련추해당 관심 두었던 베고니아는
光淡不自盈 광담불자영 색깔 옅고 히말머리 없는데
疏離秋海棠 소리추해당 다소 무관심했던 베고니아는
色濃乃自呈 색농내자정 색깔 짙고 튼실하네
*처와 나는 화초를 대하는 관심이 다르다. 처는 ‘다다 많은 정성을’이고, 나는 ‘강하게’이다. 성(性)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일 수도 있고,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일 수도 있다. 처가 맞고 내가 틀리며 혹은 그 반대라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어떤 경우는 처가 맞고, 어떤 경우는 내가 맞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베고니아를 보는 데 양쪽의 베고니아가 극명할 정도로 차이를 보였다. 한쪽은 색깔이 옅고 히말머리가 없는데, 한쪽은 색깔이 짙고 튼실했다. 전자는 물을 자주 주었던 녀석이고, 후자는 다소 데면데면 대했던 녀석이다. 처와 내가 나누어 관리한 것은 아니고, 둘 다 내가 관리했다. 고의로 차이를 둔 것은 아니고 다분히 거리의 차이가 있어 관심의 정도에 차이가 생긴 것뿐이다. 전자는 현관 가까운 쪽에 있고, 후자는 다소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 이치대로라면 전자, 물을 자주 주었던 녀석이 튼실해야 하련만 결과는 거의 반대이다. 이 경우는 '다다 많은 정성을(?)'이 되려 녀석에 독이 됐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다다 많은 정성을'이 틀렸고 '강하게'가 맞았다.
관심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중용이 필요한 것 같다. 지나친 관심은 되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