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 김득신. 조선 시대 기억력 박약하기로 소문났던 인물이다. 한식 날 말을 타고 가다 좋은 시구 하나를 얻었다. 마상봉한식(馬上逢寒食, 말 타고 가다 한식 만났나니)하니. 흐뭇해하며 소리 내 읊조렸다. 그런데 뒤를 이을 만한 시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창 끙끙대는데, 말고삐 잡았던 하인이 큰 소리를 냈다. 도중속모춘(道中屬暮春, 저무는 봄날 길 위의 나그네 신세로다)이라. 백곡이 하인더러 말했다. "네 재주가 나보다 낫구나. 이제는 내가 말고삐를 잡아야겠구나." 하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으리, 이 구절은 나리께서 날마다 외우시던 '당시(唐詩)' 아닙니까요?"
김득신만큼은 아니지만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다. 교직에 있을 때 애로점 중의 하나가 학생들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거였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교사가 학생의 이름을 불러줄 때(안 좋은 일이 아닌 한) 그 학생은 단순한 '몸짓'에서 화사한 '꽃'으로 변한다. '꽃'으로 변하는 실화 한 토막. 얼굴을 분명히 알건만 인사를 안 하는 학생이 있었다. 이름을 외웠다가 예의 무심히 지나치던 그 학생을 향해 "아무개야, 아침 먹었어?" 했더니, 그 학생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제 이름을 아세요?" "왜 몰라? 내가 가르치는 학생인데. 그런데 왜 아무개는 인사를 안 해?" "절 모르실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이후 이 학생은 만날 때마다 환한 얼굴로 90도 폴더 인사를 했다. 이런 멋진 마술을 부릴 수 없었으니, 얼마나 가련한 교직 생활이었으랴.
고전번역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시경'을 근 5번 정도 읽은 것 같다. 어지간하면 낯선 글자들도 익숙하고('시경'에는 '시경'에만 사용되는 특수 내용의 한자들이 많다) 내용도 익숙할 때가 됐는데, 여전히 성글다. 성근 실화 한 토막. 얼마 전 마나님과 함께 덕산 황톳길을 갔다가 한 음식점 간판을 보았다(사진). 일상에서 별로 사용치 않는 한자인데,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다. 어디서 봤을꼬? 열의가 있으면 사전이나 인터넷을 뒤져봤을 텐데 그냥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다. 그런데 오늘 '시경' '소아' '대동' 편을 읽다 이 글자를 발견했다. 아, 여기였어? 유몽궤손(有饛簋飧, 가득한 한 그릇 밥) 유구극비(有捄棘匕, 둥시런 가시나무 수저).... '대동' 편은 과거 정치가 순조로워 풍족했던 시절을 회상하고 지금은 그와 정 반대된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시이다. 앞 구절은 정치가 순조로워 풍족했던 시절 회상 장면에 나오는 부분이다.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의문이 해소되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박약한 기억력에 한숨을 내쉬었다.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 스스로 위안을 해보지만 시험 준비를 하다 보니 한심한 생각도 일방 든다. 이 사람아, 그런 기억력 가지고 무슨 시험을 본다고... 때려치시게!
조선의 소문난 기억력 박약자 김득신은 50대 후반에 처음 출사(出仕)했다고 한다. 그 당시 평균 연령으로 보면 사망할 나이를 훨씬 넘겼을 때에 처음 벼슬길에 나선 것이다. 이런 것을 인간 승리라 하는 것이요, 노익장이라 하는 걸 게다. 김득신만큼은 기억력이 박약치 않다고 믿으니 나도 인간 승리를 할 수 있고 노익장의 한 사례가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하하.
'몽(饛)'자의 비밀(?)을 푼 기념으로 언제 한 번 저 음식점을 찾아가야겠다. 문구처럼 음식들을 가득 채워 주는지 확인하고 싶고, 주인에게 우스개도 한 마디 던져보고 싶다. "저, 혹시 이 집 음식 먹으면 기억력도 가득 채워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