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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화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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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해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아아 누구던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저죠!”

“엉?”

“저라고요, 저!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가 바로 저라고요.”

“아니, 거미 씨, 그 무슨 가당찮은 말씀을?”

“가당치 않다니요? 저는 당신께서 그 시를 처음 읊을 때부터 저를 염두에 두고 읊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닌가요?”

“그래요? 말씀을 듣고 보니 뭐 아니랄 것도 없네요. 원래는 ‘깃발’을 염두에 두고 쓴 시이긴 하지만.”

“어머, 그래요? 아유, 부끄러워라!”

“하하, 부끄러워하시기는. 그럴 수도 있죠. 그래, 밤 사이 수확은 좀 있으셨나요? 뭔가 하나 걸린 것 같긴 한데.”

“생각 외로 별로네요. 간밤에 비가 와서 그런 것 같아요. 애고, 아그들 밥이 부족해 걱정이네요.”

“아닌 게 아니라, 그러시겠어요. 그런데, 남편 분은….”

“잘 아시면서 뭘 물어보세요. 그 양반은 한량이라 살림에는 통 관심 없는 분이잖아요. 어디 또 놀러 가신 것 같아요. 집에나 들어오시면 다행이죠.”

“참, 속도 좋으셔요. 살림하랴, 자식 건사하랴, 혼자 애쓰시면서도 불평불만 없으시니.”

“호호, 그런가요? 안 되는 일 걱정한다고 되나요? 체념도 정신 건강에 좋아요.”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왜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묘사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사람이긴 합니다만. 옴짝달싹 못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거미줄에 걸렸다’고 하거나, 오랫동안 방치됐던 집을 그릴 때 꼭 ‘거미줄이 쳐있다’란 표현을 쓰잖아요?”

“글쎄, 그게 저도 불만이에요. 저는 사람들한테도 그렇고 생태계에서도 그렇고 이로운 존재인데 말이죠. 해충들을 잡아 처리하는 게 저희들이잖아요!”

“사람들이 외모지상주의자라 그런 것 아닌가 싶네요. 겉모습만 보고 당신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실 저도 외모만으로는 거미 씨에게 그다지 호감이… 죄송해요.”

“호호, 아녜요. 솔직한 말씀 감사해요.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 마음 이해해요. 사실 제가 그다지 사람들에게 호감 가는 스타일은 아니죠.”

“그래서 당신이 더 훌륭하게 보여요. 그런 부당한 대우랄까 무시에도 불구하고 선한 행동을 하시니 말이에요.”

“호호, 그런가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사줬던 동화 ‘샬롯의 거미줄’은 어쩌면 작가 분이 당신의 그런 선한 면모를 알고 작품화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어요.”

“음, 저도 그 동화 읽어본 적 있는데, 비슷한 생각을 해봤어요. 덕분에 저희들에게 씌워졌던 오명을 좀 덜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지요.”

“그러셨겠어요. 오늘 비가 많이 온다는데, 또 허탕치실 것 같아 안타깝네요.”

“뭐, 그런 적이 한두 번인가요? 그러려니 생각해야죠.”

“참, 마음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란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너무 띄워주셔서 어지럽네요. 그러잖아요 공중에 있어 어지러운데. 호호.”

“좋은 하루 되세요~”

“네, 귀하께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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