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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추와 나눈 이야기

by 찔레꽃
20250716_055735.jpg 비비추



"떠나는 길에 네가 내게 말했지 /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 잠깐이라도 널 안 바라보면 머리에 불이 나버린다니까 (...)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어, 그거 비비의 밤양갱인데... 늙다리 아저씨가 그런 노래도 알아요?"

"허허, 너무 무시하지 말어! 근데, 사실, 우연히 알게 된 거야. 한 달 임시 강사로 학교에 수업을 나간 적이 있는데, 수업을 의뢰했던 선생님이 미리 만들어 놓은 수업 자료에 이 노래가 있더구나. 학생들에게 수업 흥미를 북돋기 위해 그때 한참 유행하던 비비의 밤양갱 가사를 활용해 한자에 대해 친밀도랄까 뭐 그런 것을 높여주려 했던 것 같아. '잠깐' '개' '양갱'은 한자어거든. 익숙한 말들이긴 하지만 원래의 한자 뜻을 알면 좀 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어 한자에 호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

"아하, 그러셨구나. 그나저나 그 자료 보여주실 때 애들이 속으로 '와아, 저 흰머리 샘도 저런 노랠 다 알아?' 했을 것 같은데요? 누가 만들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면요."

"하하, 그랬을지도 모르지. 누가 만들었다고 말을 했나 안 했나는 잘 생각나지 않네. 여하튼 그 선생님이 만든 수업 자료는 나도 재미있게 봤어. 요즘 선생님들은 재주도 좋으셔, 하는 생각도 했지."

"그런데 제 앞에서 왜 갑자기 비비의 노래는?"

"하하, 니 이름 비비추의 비비와 음이 같아서 그냥 한 번 불러본 겨."

"아, 그래~요? 제 이름 비비추의 비비와 음은 같지만 뜻은 다르겠죠?"

"맞어. 니 이름 비비는 어릴 적 잎새가 비비 꼬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지만, 가수 비비는 베이비의 빠른 발음에서 연유됐다고 하더구나. 순수, 이런 정도의 의미로 사용된 거라 하더구나. 날다는 뜻의 한자 비(飛)의 의미도 추가됐다지 아마. 발음은 똑같다만 서로 간 의미 차이는 크구나. 너, 좀 기분이 그렇겠구나?"

"아녜요. 외래어로 범벅된 비비의 '비비'보다는 소박한 뜻의 제이름 '비비'가 더 마음에 들어요. '추'가 '나물, 식물'이란 뜻이란 걸 아시죠?"

"그럼, 알고 있지."

"근데 말이지, 내가 그 임시 강사를 끝내던 날, 학생 한 명이 내게 밤양갱 하나를 선물했어. 얼마나 고맙고 기쁘던지, 울컥하기까지 했단다."

"아, 그러셨어요? 참 좋으셨겠어요."

"그래. 역시 선물은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이 담겼을 때 가치가 있다는 걸 새삼 느꼈지."

"선생님은 뭐 답례 안 하셨어요?"

"부끄럽게도 답례는 못하고, 그냥 웃고 고맙다는 말만 했단다."

"하긴, 어쩌면 그 학생도 굳이 답례를 바라진 않았을 것 같네요."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나도 뭔가 작은 선물을 줬을 텐데, 강사를 끝내는 마지막 날이라 그럴 여유가 없었어. 좀 아쉽긴 하지."

"최근에 사회 문제화된 대통령 부인의 고급 선물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르네요. 그런 선물엔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보다 잇속을 탐하는 검은 마음이 담겨 있었겠죠?"

"그렇지! 혹시 아나 모르겠는데, 선물은 한자로 膳物이라고 쓰는데, 膳은 귀한 고기 음식이란 의미로 쓰인 거야. 선물은 본래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로 대접하는 귀한 고기 음식이란 의미였지. 당연히 여기에는 잇속을 탐하는 검은 마음보다는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이 담겨있었다고 볼 수 있지. 잇속을 바라는 검은 마음으로 주는 것은 膳物이라기보다는 대가를 얻기 전에 먼저 들이미는 先物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구나."

"그러네요. 저나 비비는 그런 선물은 안 할 것 같아요. 이름값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그래야지. 좋은 자세야. 근데 너는 그럴 것 같은데, 비비는 어떨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계속 비비(飛飛) 하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연예계라는 데가 워낙 요지경이라. 비비가 너를 가까이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으면 좋겠구나. 네 꽃이름이 '좋은 소식' '신비한 사랑' '조용한 즐거움'이던데 이런 것은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과 관련이 있어 비비에게 무언의 교훈을 줄 것 같구나."

"오우, 그렇게 까지? 멋지세요!"

"고~래? 하하하. 모쪼록 비비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순수한 마음 잃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비비의 밤양갱 불러줄까?"

"아녜요. 한 번이면 족해요. 음치 노래는 두 번 듣기에는... 애고, 죄송."

"하하, 괜찮아. 세상이 다 아는데, 뭐. 그럼, 조용한 아침을 즐기고, 나는 이만...."

"네. 내일 아침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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