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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촌노(村老)의 글

by 찔레꽃
20250724_152150.jpg 친구 아버님의 글




修道男兒處世明 수도남아처세명 도를 닦으면 남아가 처세를 분명히 할 수 있고

身健謹行心自安 신건근행심자안 몸을 바르게 해 행실 삼가면 마음 절로 편안하다

齊楚鄧國偏一擇 제초등국편일택 강한 나라 틈새서 약한 나라는 한 나라를 택할 수밖에 없나니

家庭和睦百行源 가정화목백행원 가정 화목한 것이 모든 행실의 근원이다

治山治水國政事 치산치수구정사 치산치수는 국가의 중대사니

國利民福不變遷 국리민복불변천 국민민복은 정치가 변함없이 추구해야 할 일이다

平和統一誰不願 평화통일수불원 평화통일을 뉘라서 원치 않으랴

天人共怒暴力戰 천인공노폭력전 무력통일은 천인공노할 일이다

我從勤儉安且樂 아종근검안차락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따르니 편안하고 즐거워

心身安定無忌憚 심신안정무기탄 심신이 안정되니 거리낄 것 없도다

無情歲月不待人 무정세월부대인 무정한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나니

愧不貧困非親怨 괴불빈곤비치원 부끄러운 건 가난한 것 아니니 부모를 원망치 말지어다

安貧樂道守分數 안빈낙도수분수 안빈낙도하며 분수를 지킬 것이요

居鄕耕讀廢一難 거향경독폐일난 고향 살며 농사짓고 글 읽기 어느 하나 폐하지 말지어다

思想一到何不成 사상일도하불성 생각을 하나로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

危地圖生亦莫恨 위지도생역막한 어려운 처지서 산다고 한스럽게 여길 것 없도다

一九九二年 壬申 元旦 1992년 임신 원단

枳隱 書 지은 쓰다



지난주 한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액자(사진)에 담긴 친구 아버님의 유품 글을 보게 되었다. 시멘트 포장지 같은 허접한 종이에 소박한 글씨로 쓴 평범한 내용의 어느 부분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곳도 있는 글이었지만, 과거 친구 집에서 뵀던 친구 아버님의 모습과 겹치면서 글자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어떤 작가가 자신은 자기의 피를 찍어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저 글도 그 못지않게 친구 아버님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온 정성을 모아 압축해 써 내려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 친구 집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다. 한 겨울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방을 나설 때 친구 아버님이 햇살 비치는 툇마루에 앉으셔서 중얼중얼 글 읽고 계신 것을 봤다. 평범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내겐 특별하게 다가와 얼마간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삶에 대한 어떤 투철한 가치관을 가진 분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촌노가 겨울날 햇살 비치는 툇마루에 앉아 투박한 손으로 책자를 붙들고 웅얼웅얼 글을 읽는 모습은 결코 보기 쉬운 장면이 아니다. 목례를 하고 다시 방안에 들어와 친구에게 방금 본 장면을 말했더니, 늘 하시는 일이라고 말했다.


친구 아버님은 이북 출신이시다. 해방 후 한국 전쟁 전 10대의 나이로 단신 월남하여 자수성가한 분으로, 농사를 지으며 독학으로 한문을 익히시고 지방 유림회에서도 활동하셨다. 10대의 나이에 혈현단신 월남하여 자수성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까? 그때 이 분이 삶이란 전쟁터를 헤쳐 나오는 무기로 택한 것은 저 글귀에 등장하는 근검(勤儉)과 가정의 화목(和睦)이었다. 더불어 자신에게 주어졌던 가난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러한 운명을 직면하게 한 부모도 원망하지 않았다는 낙천적이기까지 한 가치관이었다. 공자께서는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신산한 삶을 사셨지만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친구 아버님은 어쩌면 공자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지 않으셨을까 싶다.


세상에는 온갖 미사여구가 넘쳐나며, 말을 잘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것이 일시적인 호감은 주지만 우리 삶에 깊은 자양분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은 그 말과 글을 내놓은 이들이 그같이 실천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닐는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에는 이상하리만치 말 잘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내용들이 빈번히 나온다. 일례로, 자공이란 제자가 "군자란 어떠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공자께서는 "먼저 그 말을 실천하고 말은 뒤에 하여라."란 답변을 한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 중 언어에 발군의 실력을 보였던 사람인데, 그에게 그의 장점을 앞세우기보다는 외려 조심하라는 투로 경계하고 있다. 군자는 모름지기 말보다 실천을 앞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존숭을 받은 것은 그가 자공에게 한 말처럼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만일 그가 자신이 한 말과 달리 행동했거나 말만 앞세웠다면 제자들의 존숭을 받지 못했을 터이고, 제자들도 굳이 그의 말을 기록으로 남기려 하지 않았을 터이다.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말 잘하는 것을 약간 터부시 하는 정서가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간 경계의 마음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저 말처럼 행동할까?' 하는 의구심을 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친구 아버님의 저 글이 한결 더 감동 깊게 와닿는다. 그분은 저 말처럼 자신의 삶을 살았고, 공자의 말씀처럼, 실천을 먼저 하고 말은 뒤에 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우스개로 자신은 저 액자를 '국보'로 여긴다고 했는데, 나는 한술 더 떠 말했다. "우주보라고 해도 될 것 같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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