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광무제]이 사냥을 나간 적이 있었다. 어가가 밤에 돌아오게 됐는데, 상동문의 수문장 질운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상이 시종을 시켜 문틈으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게 했다. 운이 말했다. “불빛이 멀어 식별할 수가 없다.” 그리고는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상이 어쩔 수 없이 어가를 돌려 중동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음 날 운이 상서를 올려 간했다. “지난날 문왕은 감히 유람과 사냥을 즐기지 않고 백성들이 바르게 공양하는 것만 받았나이다. 그런데 이제 폐하께서는 먼 곳까지 사냥을 나가 밤늦게 돌아오시니 사직과 종묘를 무슨 낯으로 뵐 수 있겠나이까?” 상께서 상서를 보고 운에게 비단 백 필을 내렸고, 중동문 수문장은 참봉위로 강등시켰다.
세간에 화제가 된 김건희 여사— 에잇, 이 칭호 쓰기 싫지만, 내 글의 품격을 위해서 —의 비밀 경회루 경복궁 방문 사진을 보며 떠올린 옛이야기이다. 이 옛이야기를 떠올린 건 김건희 여사보다도 그 옆에 함께 있는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과 정용석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사장(당시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때문이었다. 김 여사의 올바르지 못한 행태를 바로잡지 못하고 비굴하게 처신하는 그들의 모습이 시간을 어겨 궁에 들어오려는 광무제의 어가를 막았던 수문장 질운의 행동과 대비됐기 때문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국가 문화재를 관람하고 또 관람을 하면서도 금도(슬리퍼 행보 및 어좌 착석)를 넘어서는 행동을 그들 중 아무도 제지하지 못한(않았던) 점이 너무 아쉬웠던 것이다.
당시 나라 전체가 비정상적인 기류에 휩싸여 공사(公私) 시비(是非)가 불분명했기에 그들 역시 그리 처신했을 거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니다. 역사학자요 명문 여대의 총장까지 지낸 이와 현재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사장이란 이가 그리 처신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넘어 분노까지 치민다(정 사장은 국감장에서 김건희 여사의 행태를 캐묻는 질문에 정말 보기 민망할 정도로 비굴하게 면피성 발언을 했다).
과거와 현재의 가치관은 분명히 다르지만 때로는 변하지 않아야 할 가치관도 있다. 공사 시비에 대한 분명한 판단이 그렇지 않은가 싶다. 세상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기에 공사 시비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면 세상이 혼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공직자들은 더더욱 이에 대한 가치관을 확고하게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앞으로 김 여사 관련 무슨 추태가 또 나올는지…. 왜 항상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