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점(文點)의「도강(渡江)」
“한 고을의 선한 선비는 그 고을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고, 한 나라의 선한 선비는 그 나라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으며, 천하의 선한 선비는 천하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는다. 천하의 선한 선비를 벗으로 삼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면 위로 올라가 옛사람에 관해 논하게 된다. 그런데 옛사람이 지은 시를 외우고 옛사람이 지은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에 대해 모른다면 그 시와 내용이 요해(了解) 되겠는가. 이 때문에 그가 살던 시대를 논하게 된다.”
맹자가 한 말이다. 현실에서 만족스러운 사람을 만날 수 없기에 옛사람을 찾는 것이며,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 시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문학 연구 방법 중에 작가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는 방법이 있는데, 맹자의 이 언급은 그런 문학 연구 방법론의 선구적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맹자의 언급에서 중요한 사항은 사람과 시대의 관계를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현실에서 만족스러운 사람을 만날 수 없을 때 옛사람을 찾게 된다는 점이다. 시대의 고찰은 옛사람을 잘 만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된 내용일 뿐이다.
현실에서 만족스러운 사람을 만날 수 없을 때 옛사람을 찾게 된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인간 사회에 살면서 이 이상의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옛사람에게서도 만족스러운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사진은 ‘청산여고인 강수사미주 금일중상봉 파주대양우(靑山如故人 江水似美酒 今日重相逢 把酒對良友) 석정(石井)’이라고 읽는다. 이런 뜻이다. ‘청산은 오랜 친구와 같고 / 강물은 미주(美酒)와 같아라 / 오늘 서로 다시 만나니 / 술잔 들고 양우(良友)를 대한 격이로다 / 석정 쓰다.’ 시인에게 청산은 오래되어도 늘 한결같은 좋은 친구와 같고, 강물은 깊은 풍미를 전해주는 좋은 술과 같다. 세속의 잡사에 시달리던 시인은 어느 날 이 둘을 함께 마주했고, 그 기쁨은 오랜 지기(知己)와 모처럼 나누는 대작에 비견할 만하다는 내용이다.
이 시를 읽으며 문득 위 물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자답(自答)을 했다. “옛사람에게서도 만족스러운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사람의 범위를 넘어서서 찾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바로 자연 아니겠는가! 시인은 이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옛사람을 넘어 자연을 만족스러운 벗으로 찾은 시인이라니! 갑자기 이 시를 지은이가 범상치 않게 여겨졌다. 물론 이 시의 작자를 현실에서 상처 받아 자연에서 위안을 찾은 이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 전체에서 풍기는 온화한 느낌은 그렇게 보기보다는 옛사람을 벗 삼는 단계를 넘어 그 이상의 경지에 다다른 것으로 보게 만든다. 지은이는 명말 청초의 시인 문점(文點, 1633-1704)이고, 시제는 「도강(渡江)」이다(글씨를 쓴 분이 시인의 이름과 제목을 빼놓았다).
두어 자 자세히 살펴보자.
似는 亻(사람 인)과 以(써 이)의 합자이다. 사람의 모습은 피차 비슷하다는 의미이다. 亻으로 뜻을 삼았다. 以는 음(이→사)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以에는 ‘∼부터’라는 의미가 있는데, 사람의 모습이 비슷한 것은 그 출생부터라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다. 비슷할 사. 似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類似(유사), 似而非(사이비) 등을 들 수 있겠다.
逢은 辶(걸을 착)과 夆(거스를 봉)의 합자이다. 양쪽에서 걸어와 만나다란 의미이다. 만날 봉. 逢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相逢(상봉), 逢着(봉착) 등을 들 수 있겠다.
把는 扌(손 수)와 巴(땅이름 파)의 합자이다. 손으로 꽉 잡는다는 의미이다. 扌로 뜻을 표현했다. 巴는 음을 담당한다. 잡을 파. 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把握(파악), 把持(파지) 등을 들 수 있겠다.
처음에는 이 시를 엉뚱하게 봤다. 1 · 2구를 시의 배경으로 보고, 3 · 4구를 시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실제 친구를 만난 것으로 본 것. 그런데 의미가 확연히 와 닿지 않았다. 그래서 1 · 2구의 청산과 강수를 시의 배경이 아닌 실체로 보고, 3 · 4구를 이들을 만난 기쁨을 표현한 것으로 보니 의미가 확연히 와 닿았다. 시를 읽을 때 선입견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선경후정(先景後情)이라는 공식으로 이 시를 읽었더니 오해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