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by 찔레꽃
주부씨 사진.jpg



서산 진 씨가 말했다. “이것은 무공(武公)이 자신을 경계한 시이다. 사람은 여럿이 함께 있을 때는 조심하는 법인데, 이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는 마음을 단속하기가 쉽지 않아 공력을 들여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사께서 『중용』을 지으실 적에 이러한 점을 확장시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은미한 것일수록 더 분명히 드러나나니, 성(誠, 진실)이란 감출 수 없는 법이다.’ 아아, 이렇게 보면 무공은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대과 없을 것 같다.”


날이 흐려 컨디션이 난조다. 고산병이라도 걸린 듯 귀가 멍멍하다. 증상을 해소하려 쉼 없이 코를 훌쩍인다. 이런 날은 책을 붙들고 씨름하기가 힘들다. 즐거운 일에 몰입해야 난조를 극복할 수 있다.


마침 이름도 특이한 페이스북 친구 주부 씨께서 흥미로운 일감을 올려 주셨다. 판본을 구별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올린 사진. 나는 판본 구별 단서보다 사진 속 글 내용이 더 흥미로왔다. 해독이 가능한 내용이었기 때문. 해독 가능한 한문 문서를 만나면 마치 탐정이 결정적 단서를 얻었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하하. 한 대목을 해석해 보았다(위 번역문).


그런데 해석하고 보니 내용이 시사와 연관되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통일교 측으로부터 금품 수수 의혹을 받고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전재수 씨와 재판을 받고 있는 권성동 씨가 떠올랐던 것. 이들은 금품을 수수할 때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누가 이 은밀한 거래를 알겠는가?’ 그러나 “은미한 것일수록 더 밝게 드러난다”는 자사의 말처럼, 안 드러날 것이라 확신했을 일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부정한 청탁을 한 통일교야 당연히 지탄받아야 하겠지만, 그런 청탁을 은밀히 받아들인 두 사람 역시 비난의 화살을 비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시민 씨가 최근 김남국 의원의 인사 청탁 문자 논란에 대해 공직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문제가 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어디에나 도청 장치가 있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과거에는 이러한 경계(警戒)를 주로 개인의 양심에 기대어 바로잡으려 했으나, 현대는 기술적·법적 장치를 통해 바로잡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와 와서 이러한 경계를 기술적·법적 장치의 영역으로 옮긴 것은 홀로 있을 때 마음을 단속하기 어려운 인간의 근본적인 나약함과 경계의 힘든 점을 솔직히 인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위 번역문에서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현대의 기술적·법적 장치가 아무리 강화된다 해도 성찰(省察)은 여전히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마음에 간직한 존재이니 말이다. 어쩌면 유시민 씨도 이런 점을 바탕에 깔고 저 말을 한 것은 아니었을지?


허름한 종이의 오래된 문구 한 구절이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한다.


주부 씨 덕분에 글쓰기에 몰입하게 되어 컨디션이 좀 나아진 것 같다. 코가 덜 훌쩍거려진다. 언제 주부 씨를 뵙게 되면 감사의 표시로 ‘컨디션’ 한 병 대접해야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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