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식은 향기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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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져서 그런 거지.”


무뚝뚝한 장인어른이 한 마디 하셨다.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장모님이 장인어른에게 뭐라 타박했던 것은 분명하다. 두 분은 늦게 재혼하셨다. 사이가 좋았다. 특히 장모님이 장인어른을 잘 보살피셨다. 무심하고 무뚝뚝한 장인어른이 처가 식구들에게 새어머니가 잘한다고 칭찬까지 하실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장모님의 타박이 많아졌다. 장인어른은 자신이 잘못한다기보다 장모님한테 문제가 생겼다고 보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저 말씀인 것 같다. 왠지 수긍이 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문 닫고 있어요!”


마나님이 밖에서 들어오며 큰 소리로 말한다. 무슨 뜻인지 잘 안다. 거실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니 환기시키려는 거다. 그리고 그 냄새의 주범은 나이고. 나는 별 냄새 못 맡겠는데, 마나님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별거 아닌 일인데 괜히 서운하다. 마치 내가 죄인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나, 이래 봬도 은근 깔끔을 떠는 사람인데 무슨 냄새가 난다고 저리 호들갑에 가까운 말을.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어쩌면 마나님의 저 타박(?)은 장인어른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냄새를 핑계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 방도 제대로 청소 안 하는 분께서 무슨 깔끔을 떤다고 환기를 시킨다 호들갑을 떠는 것인지. 나, 참.


그런데 사실 내게 냄새가 나긴 난다. 드물게 내가 내 방을 들어갈 때 흔히 말하는 ‘노인 냄새’를 맡을 때가 있다. 아무리 깔끔을 떨어도 노화로 인한 냄새 그 자체를 없애기는 힘든 것이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노인 냄새를 완벽히 없애는 것은 어렵고, 생활 관리로 완화시킬 수는 있다고 나온다. 팁을 보니, 통풍이 잘되는 천연 섬유 의복 착용, 자극적 음식 섭취 줄이기, 규칙적 샤워, 보습 유지, 스트레스 및 수면 관리, 약물 복용 시 의사 상담 등이다. 그런데 이 팁 말미에 이런 말이 덧붙어있었다. “체취는 ‘노화의 낙인’이 아닌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 말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결론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냄새난다고 타박하는 것은 이해가, 좀 더 우아한 말로 다듬으면 ‘사랑’이 식어서 그런 것이다.


그래, 당신은 마나님한테 지금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거요? 이런 질문이 들린다. 글쎄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당신 장인어른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시오? 장인어른의 모습이 곧 당신 모습일 것 같은데. 장인어른이라… 내 보기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지내시는 것 같다. 그럼, 나도? 으으, 끔찍한데… 그건 아닌데….


냄새는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날 터이다. 아무리 깔끔을 떤다 해도. 냄새를 없애는 것이 상책이 아니라, 저 인터넷 기사의 말미 말처럼, 우선은 냄새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꽤 오랫동안 아버지와 한 방에서 지냈는데 아버지의 냄새 특히 담배 냄새가 방 안에 절어 붙어 있었고, 그 냄새는 요즘말로 ‘쩔었다’. 그러나 방 안 냄새를 싫어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건 어쩌면 권위주의 시대를 산 자식으로서 감히 아버지의 체취를 터부시 하는 것이 불경하다고 은연중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알게 모르게 강제로 이해하게 된 셈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노인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지금 노인의 체취는 터부의 대상이 되었다. 가까운 마나님마저 이러니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떨어진 권위는 본인이 세울 수도 있지만 타인이 세워줄 수도 있다. 권위주의 시대를 자식으로서 살아온 우리 세대에게 냄새난다고 부디 타박만 하지 말고 이해와 사랑의 관심으로 너그럽게 대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어떻게 하다 보니 내 신세타령에서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발언으로까지 치달았네. 아무래도 마음속에 서운함이 많았었나 보다. 하하. 노인 냄새 많이 사랑… 은 아니고, 이해들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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