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께서 황실 동물원의 현황에 대해 물었다. 책임자가 머뭇거리며 즉답을 못하자, 옆에 있던 실무 관리가 매우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에 상께서 ‘어이, 책임자가 이리 무능하단 말인가!’라며 즉답했던 실무 관리를 책임자로 삼도록 명했다. 그러나 장석지가 간언 했다. ‘주발과 장상여는 훌륭한 인물로 평가받았으나 언변은 좋지 않았습니다. 실무 관리가 언변이 좋다 하여 승진시킨다면, 천하가 이를 본받아 구변만 능사로 여기고 실상은 없는 공허한 기풍이 형성될까 두렵습니다.’ 상께서는 이를 옳다 여겨 명령을 철회했다.”
한나라를 건국한 이들이 반면교사 삼은 것은 진(秦)의 가혹한 법치였다. 대륙 통일의 위업이 2대 만에 무너진 것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나라는 매사를 관후(寬厚)하게 처리했으며, 관리를 임용할 때도 실무에 능한 것보다 중후한 인품을 우선시했다. 당연히 응구첩대(應口捷對), 즉 입에서 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대답하는 능력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장석지의 간언은, 지도자의 공개적인 질책이 ‘즉답’이라는 구변을 능력의 최우선 기준으로 만들어 조직 전체에 ‘실속 없는 공허함’을 퍼뜨릴 수 있다는 깊은 경계심을 보여준다.
최근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대통령의 질문에 즉답을 못 해 공개적으로 힐난받은 사건이 있었다. 대통령은 “3년씩이나 됐는데, 그 업무 파악을 그렇게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라고 말했다. TV로 생중계된 자리에서 던진 이 말은 책임자에 대한 대단한 힐난이었다.
물론 대통령의 질책은 전임 정권이 만들어낸 해이해진 기풍을 일신하려는 적극적 의지에서 나왔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공개석상에서 ‘즉답 불가 = 무능’이라는 단순한 등식을 적용하며 질책하는 것은 장석지가 경계했던 ‘공허한 기풍’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공사 사장이 나중에 해명했듯이, 대통령의 질문 자체가 책갈피 외화 밀반출 수법을 묻는 것이었기에, 즉답이 어려웠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업무 파악 부족이 아니라, 현장 경험상 검색의 불가능성을 알거나, 보안상 민감한 내용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곤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신중한 침묵이나 모호한 답변이 오히려 책임감 있는 태도였을 수 있다.
대통령의 공개적인 힐난은 사안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고 ‘빠른 말’, ‘즉각적인 응답’을 유능함의 증거로 보라는 무언의 압박이 된다. 이는 당장 눈앞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 ‘실속 없이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관료 문화를 조장할 수 있다.
왕조시대가 아니기에 대통령의 언행이 과거보다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 언행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막대하다. 공개적인 힐난은 일개 국회의원이 국감장에서 할 법한 말투이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조직 전체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택할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대통령 본인도 “자리가 바뀌면 전에 하던 말과 행동을 똑같이 할 수 없다”고 말했듯, 가급적 공개석상에서 하는 말은 좀 더 순화하고 절제될 필요가 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분이니 조금만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