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은 ‘오기(吳起)’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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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재미난 기사 하나가 떠서 한동안 넋을 놓고 관련 내용을 훑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이혜훈 전 의원이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현직 야당 당협위원장에게 새 정부의 곳간 열쇠를 통째로 넘겨주다니 말이다.


옛날이야기를 즐겨 읽어서 그런지,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문득 전국시대의 풍운아 ‘오기(吳起)’가 떠올랐다. 오기는 노, 위, 초나라를 거치며 부국강병을 일궈냈던 법가 계열의 천재적 병법가다. 가는 곳마다 부국강병을 일궈냈으니 군주들에게는 탐나는 인재였으나, 그에게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다. 바로 ‘지조’의 부재였다. 위나라 군주가 그의 능력을 알면서도 등용을 망설였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참모는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니, 오직 능력만을 보십시오”라고 진언했고, 그 조언은 적중했다. 오기는 칼로써 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오기는 결국 위나라를 떠나야 했다. 자신과 재상 자리를 놓고 다퉜던 전문(田文)과의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연히 자신이 재상이 될 거라 믿었던 오기는 결과가 뒤집히자 전문을 찾아가 업적을 비교해 보자고 제안했다. 오기가 자신의 공적을 하나하나 댈 때마다 전문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 점은 당신이 나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전문은 뼈아픈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지금 나라에 새 임금이 들어서서 조정이 흔들리고 민심도 안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과연 대권을 당신에게 넘길까요, 아니면 나에게 넘길까요?” 오기는 즉답하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그 짧은 정적 속에서 그는 자신의 비범한 능력이 ‘신뢰’라는 성벽 없이는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결국 그는 “당신에게 넘길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대중은 위기의 순간 능력 있는 자를 빌려 쓰기도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끝내 일관된 길을 걷는 자에게 내어준다는 권력의 속성을 오기도 인정한 것이다. 이후 그는 위해가 닥칠 것을 직감하고 위나라를 떠났다. 출중한 실력은 가졌으되 민심의 지지가 부족하고 덕이 없었던 그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혜훈 전 의원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재정 전문가다. 오기가 칼로 나라를 세웠다면, 그는 숫자로 나라를 세울 만한 역량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윤어게인’을 외치며 탄핵 반대 입장에 섰던 그가 현 정부의 핵심으로 합류하는 것은, 어떤 논리를 내세우더라도 정치적 지조나 일관성에서는 어긋나는 일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파적 색채보다 실리를 택한 인사니 잘한 일이라 평하겠으나, 등용된 당사자의 처지에서 보면 그리 멋진 처신은 아니다. 정치는 실용으로 성과를 내지만, 정치인은 결국 명분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전 의원이 기왕에 능력을 발휘하기로 한 이상, 오기와 같은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오기는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에서 다시 대단한 성과를 냈지만, 자신을 지켜주던 왕이 죽자마자 반대파들의 화살에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 전 의원 역시 뒷배인 대통령이 권좌에 있을 때는 상관없겠지만, 그 방패가 사라진 뒤에 날아올 난폭한 말들과 공격들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권력에만 기댄 능력은 그 권력이 다하는 순간 가장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곤 하지 않던가.


그 불행을 피할 방법은 단순하다. 소임을 다했다면 다시는 경제계나 관가 언저리에 기웃거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선은 대통령의 임기 말년쯤, 권력의 노을이 지기 전에 스스로 공직에서 물러나 박수 칠 때 떠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만이 오기가 끝내 얻지 못했던 ‘민심의 면죄부’를 얻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이 전 의원을 걱정하는지 묻는다면 이유는 싱겁고도 절실하다. 프로필을 보니 64년생, 나와 동갑이었다. 아무런 이해관계는 없지만, 치열했던 시대를 함께 건너와 이제 인생의 황혼을 준비하는 동시대인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씀벅해서 그렇다. 그러고 보니 이재명 대통령도 64년생 아닌가. 같은 해에 태어나 저마다의 길을 걸어온 세 사람이, 한 명은 나라의 수장으로, 한 명은 곳간지기로, 한 명은 그들을 지켜보는 시민으로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내가 이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그렇게 바랐던가 싶어 혼자 웃어본다. 농담이다. 하여간 진심으로, 이혜훈은 ‘오기’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세대가 역사 속에서 성공한 세대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디 그 끝이 실력만큼이나 단정하고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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