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단상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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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아, 아빠 생전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모실 테니 그리 알렴. 아빠 엄마 죽고 난 다음엔 제사 안 모셔도 된다. 엄마 아빠 제사도.”


지난 월요일 아버지 제사에 아들 한결이가 참석 못 해 죄송하다는 전화를 했다. “괜찮여. 슬날 뵈면 되잖여~” 하면서, 말 나온 김에 평소 갖고 있던 제사에 관한 생각을 말했다. 결은 “네, 네” 하면서 그저 제사에 참석 못 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애비의 말에 반대 없이 긍정해 준 것은 고마웠지만, 솔직히 애비 말의 무게를 체감하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그런대로 좀 먹었지만 아직 학생이고 본격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는 대답이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요즘 제사를 안 지내는 집이 많다고 한다. 시대가 많이 변한 것이다. ‘예’라는 것이 사회의 산물이라고 보면 사회가 변함에 따라 ‘예’도 변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터이다. 대표적 의례인 ‘관혼상제’에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혼상제’인데 이 중 ‘제’는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이고 ‘상’도 약간 그런 추세를 보인다. ‘혼’은 현재까지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글쎄다, 이도 앞으로 꼭 그러리라고 확신하긴 어렵다. 이혼율이 급증하는 걸 보면 ‘혼’ 의식도 점점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예’ 하면 떠오는 인물, 공자이다. 공자가 살던 당시는(흔히 말하는 춘추전국시대의 춘추 시기) 기존의 강고했던 ‘주례’가 허물어져 가던 시기였다. 공자는 이를 복구하고자 했다. 그것이 당대의 혼란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공자를 온건 개혁주의자 때로는 진보주의자로 색다르게 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 공자는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인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가 보수주의자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들은 논어 곳곳에 보이는데, 제사와 관련한 대목만 보아도 그가 분명한 보수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자공이 초하루마다 신명께 바치는 제물[양]이 아까워, 이 의식을 폐하면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사(자공의 본명)야, 너는 그 양을 쓰는 비용이 아까우냐? 나는 그로 인해 없어질 ‘예’가 아깝구나.”


재여가 3년 상이 너무 길다며 1년 상으로도 충분하지 않냐고 불만을 토로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 돌아가시고 1년 만에 기름진 음식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면 너는 편안하겠느냐?” 재여는 망설이지 않고 직답했다. “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하거라. 무릇 군자는 상중에는 음악을 들어도 기쁘지 않고 좋은 거처에 살아도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네가 편안하다고 여기니 그렇게 하려무나.” 공자는 재여가 나간 뒤 이런 말을 덧붙인다. “여는 인하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 3년은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무릇 부모를 위해 3년 상을 치르는 것이 천하의 공통된 상례인 것이다. 여도 태어나서 3년 동안 그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았을 텐데….”


공자와 그의 제자가 나눈 대화를 보면 당시 그간 지켜오던 예가 허물어져 가던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다. 공자는 이런 시대 변화에서 강력하게 전통을 고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것을 강제하기보다는 양심과 순리에 의거해 그것을 지키려 했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아마도 이런 면모가 그를 온건 개혁주의자나 진보주의자로 평가하려는 단초를 제공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이는 다소 견강부회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는 분명히 보수주의자였다(보수주의가 꼭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해 없으시길).


제사가 점차 사라져 가는 요즘 추세에 어긋나게 제사를 고집한다면 분명히 보수주의자라 평할 만하다. 나는 보수주의자이다. 하하. 내가 제사를 적어도 내 당대에 고집하려는 이유는 극히 단순하다. 공자의 말대로 이런 형식마저 없어지면 제사가 가지는 의미[부모 추모]도 사라질 것 같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그러면 제사를 안 지내는 이들은 다 불효자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면서도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남[처]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점과 얼마간의 준비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처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 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지만 아들아이가 결혼을 하여 나나 처가 늙어 제사 준비가 어려워 이 아이들에게 위임을 부탁할 때는 새로운 어려움이 있을 터이다. 그래서 아들아이에게 적어도 내 당대만큼은 내 뜻대로 해주되 이후는 아니 지내도 괜찮다고 말한 것이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이런 나의 태도를 괜찮게 평가해 줄 이도 있겠지만 현 추세에 비춰볼 때 과한 욕심이라고 평가할 이도 있을 듯싶다.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사를 아니 지내고 해외여행을 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로 보면 설 제사를 지내며 이 의식을 지속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이들이 꽤 될 것 같다. 시대의 추세이니 이에 따라 제사를 아니 지내고 설을 쇠는 것도 꼭 나쁘다고 할 것은 아닌 것 같고(‘예’라는 것이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마음이 불편해 나처럼 제사를 고집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을 것 같다. 다만 어떤 경우이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사가 가졌던 의미일 터인데, 이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형식이 사라지면 의미도 사라질 수밖에 없기에 쉽진 않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글을 마치려니, 분명한 주견이 없어 보인다. 시대가 유동적이라 내 의견도 그런 듯싶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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