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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묘용 운수반시(神通妙用 運水搬柴)

by 찔레꽃
pimg_7232191431784746.jpg 신통묘용 운수반시(神通妙用 運水搬柴). 방온거사(龐蘊居士, ? - 808)의 시 일부.



소아성애(小兒性愛)를 바탕으로 한 액션 활극에서 '삶과 행복'을 읽는다면 다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웃기네!" 하지만 어린아이가 무심코 내뱉는 말에도 이따금 보석 같은 말이 있듯 -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말했겠지만 - 그런 영화에서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놓치기 아까운 장면이나 말이 있을 것이다.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원래 그래."


영화 '레옹'에 나오는 마틸다와 레옹의 대화이다. 집에서 얻어맞아 입가에 피멍이 든 마틸다. 아파트 계단 베란다에 앉아 건들거리다 지나가는 레옹에게 무심코 건넨 말에 레옹이 감정 없이 대꾸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나는 삶의 진상(眞相)을 읽었다. 삶은 결코 장미꽃을 뿌려놓은 탄탄대로가 아니라 가시 덩굴이 뒤엉킨 골목길이라는 것. 종교, 중에서도 불교의 그럴싸한 외피를 빌자면 '고(苦)' 그것이 바로 삶의 진상인 것이다.


이런 삶에서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의 동생을 죽인 마약 단속 반장 스탠스의 뒤를 쫓다 되려 스텐스에게 죽을 처지에 놓인 마틸다. 약에 취한 스탠스가 총을 어루만지며 으스스한 저음으로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지. 죽기 직전에야 삶이 고마운 걸 느끼는 거야."


스탠스의 대사에서 나는 행복의 진상을 읽었다. 행복은 살아있음 그 자체를 느끼는 것이지 그 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이란 바로 이 행복을 각성하는 것 일 뿐이다.


사진은 '신통묘용 운수반시(神通妙用 運水搬柴)'라고 읽는다. '신비롭고 오묘한 일은 바로 물 긷고 나무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한다. 살아 움직이는 일상의 평범함이 바로 신비롭고 오묘한 일이지 그 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란 의미. 통념을 뒤집는 이 언급은 저 영화 '레옹'의 대사와 일맥상통한다. 고(苦)인 삶에서 살아있음 그 자체가 행복이듯 신비롭고 오묘한 일은 바로 이 몸이 살아 움직인다는 평범한 일이라는 것, 이 둘은 표현만 다르지 기본 인식은 같다. 행복이나 신비는 먼데 있지 않다. 바로 여기에 있다!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神은 示(보일 시)와 申(번개 신)의 합자이다. 만물의 시원(始原)이 되는 자, 곧 만물을 지어내는 자란 뜻이다. 만물이 형상을 드러냈다는 의미의 示를 가지고 뜻을 표현했다. 申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이 자는 번개처럼 두렵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귀신 신. 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鬼神(귀신), 神秘(신비) 등을 들 수 있겠다.


通은 辶(걸을 착)과 甬(湧의 약자, 샘솟을 용)의 합자이다. 막힘없이 솟아 나오는 샘처럼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다닌다는 뜻이다. 통할 통. 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通行(통행), 通路(통로) 등을 들 수 있겠다.


妙는 女(여자 녀)와 少(적을 소)의 합자이다. 나 어린 소녀는 순진하고 귀여워 다들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묘하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확장된 의미이다. 묘할 묘. 妙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妙技(묘기), 妙數(묘수) 등을 들 수 있겠다.


運은 辶(걸을 착)과 軍(군사 군)의 합자이다. 군사들을 위한 각종 병기와 보급품을 이동시킨다는 의미이다. 운전할 운. 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運轉(운전), 幸運(행운) 등을 들 수 있겠다.


搬은 扌(手의 변형, 손 수)와 般(돌릴 반)의 합자이다. 물건을 옮긴다는 뜻이다. 扌로 뜻을 표현했다. 般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돌리는 것은 곧 옮긴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옮길 반. 搬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搬出(반출), 반입(搬入) 등을 들 수 있겠다.


柴는 木(나무 목)과 此(이 차)의 합자이다. 땔 감이란 뜻이다. 木으로 뜻을 표현했다. 此는 음(차→시)을 담당한다. 땔감 시. 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柴扉(시비, 사립문), 柴奴(시노, 땔 나무 하던 머슴) 등을 들 수 있겠다.


'레옹'에는 이 외에도 괜찮은 대사들이 꽤 있다.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해요." 도 그중의 하나이다. 화분을 갖고 다니는 레옹에게 마틸다가 하는 말로, 상대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하여 나로 인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란 의미이다. 상대나 내가 아파서 흔들린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고통이다. 사랑의 이름을 가장한 고통. 이런 점에서 진정한 사랑은 결혼 이후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진은 지인의 작품이다. 방온거사(龐蘊居士, ? - 808)의 시 일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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