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장 16절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이따금 패악한 사람에게 쏟아내는 질타이다. 여기 하늘은 초월적 심판자, 즉 신을 가리킨다. 신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이 질타가 얼마나 의미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 말이 전혀 황당하게만 들리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마도 우리 내면에 깃든 하늘(신)의 그림자를 자극하는 말이라서 그러지 않은가 싶다. 더 이상 하늘(신)을 믿지 않지만 그 하늘(신)의 그림자가 우리 내면에 깃들어 있기에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는 말을 들으면 공명을 일으키는 것 아닌가 싶은 것.
은나라 때, 우리가 말하는, 하늘(신)에 해당하는 존재는 상제(上帝)였다. 상제는 인간계의 모든 현상을 주재하는 존재로 사람들은 이 존재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점을 쳤다. 은나라의 유적지에서 나온 갑골문은 이 점사를 기록한 글씨이다. 은 · 주 교체기에 상제는 천(天)이란 존재로 바뀐다. 아울러 인간계의 모든 현상을 주재하는 존재에서 유덕한 자에게는 행운을, 부덕한 자에게는 재앙을 내리는 선한 의지를 가진 인격신으로 이해된다.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러선 이런 경향이 강화됨과 동시에 정반대의 경향도 나타나 인격적 천을 배제한 자연의 이법으로 천을 보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한대에도 이런 두 경향이 이어지고, 위진 남북조 시대에는 후자의 경향 - 천을 자연의 이법으로 보는 - 이 강해진다.
수 · 당대에 이르면 천과 인간을 관통하는 이치에 관심을 두게 되고, 이는 송대로 이어져 천리(天理) 개념이 형성된다. 송대 성리학의 종지가 '성즉리(性卽理)'인데 여기 성은 곧 천이다. 성리학은 천리를 파악하고 거기에 따를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명대에 들어와선 순연한 이치라는 천리에 인간의 욕망이 더해진다. '천리인정(天理人情)'이 그것. 생존욕을 천이 부여한 것으로 긍정하는 사고는 청대에도 계승된다. 근대에 들어와 천은 더 이상 인간적 가치와 관계를 맺지 않는 단순히 적자생존 혹은 우승열패라는 무정(無情)한 이치로 받아들여진다. 천연(天演)이 그것.
사진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한문으로 쓴 것이다. '개상제애세지 이독생자사지 사범신지자 면침륜이득영생 왈당신주야소기독 즉이여이가필득구의(蓋上帝愛世至 以獨生子賜之 使凡信之者 免沈淪而得永生 曰當信主耶蘇基督 則爾與爾家必得救矣)'라고 읽는다. "상제가 세상을 사랑함이 지극하여 독생자(獨生子)를 내려 그를 믿는 자로 하여금 고통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길이 행복한 생을 얻도록 하였다. 말하노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너와 네 집이 반드시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풀이한다. 한글판 성경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되어 있다. 김용옥은 이 3장 16절의 기술(記述)이 모호하다며 경전(經典) 기술(記述) 치고는 수준 높지 않은 기술이라고 비판한다. 문구의 내용은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하는 말인데, 예수가 한 말이라기보다는 기자가 예수를 홍보하는 것처럼 기술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과 기자(記者)의 생각을 뒤섞어 놓은 기술이라는 것. 공감되는 의견이다. 영어 성경의 해당 부분은 이렇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성경의 한문 번역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상제'이다. 하나님(God)을 번역한 말인데, 은나라 때의 하늘(신) 개념을 가져와 번역한 것이다. 일종의 격의(格義) 번역이다. 격의는 외래 개념을 외래 개념 자체로 인식하기 전 기존의 전통 개념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불교 유입 초기 중국에서 '공(空)'을 도가의 '무(無)'로 이해한 것이 그 한 예이다. 이런 격의 이해는 타 문화의 유입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하나님(God)을 상제로 이해하여 번역한 것이 중국인에 의해 이뤄진 게 아니라 서구인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성경의 한문 번역은 선교사들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생긴다. "선교사들은 과연 상제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을 상제로 번역한 성경을 대하며 당시 지식인들은 성경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선교사들이 상제의 의미를 중국인들이 인식하는 것처럼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주재자라는 점에서 일치점을 보이니 차용한 것뿐일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성경을 그다지 높게 취급하지 않았을 것 같다. 성경이 번역될 당시 - 원대 이후 - 중국에서 상제는 이미 시효 지난 존재였기 때문이다. 시효 지난 존재를 다룬 경전이 높게 취급되긴 어렵지 않겠는가.
중국의 하늘 개념 변천사로 봤을 때 성경의 하늘(하나님)은 그리 진화하지 못한 하늘이다. 그러나 진화하지 못한 하늘이라 하여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이들이 성경의 하늘을 믿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을 우매하다고 봐야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효의 가치가 중시되지 않는 시대라고 하여 효를 행하는 이를 우습게 여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진화하지 못한 하늘이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는 말이 공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하늘(신)의 그림자가 드러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고는 이 문화지체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사진은 예산에 있는 한국서예비림박물관에서 찍었다. 중국의 비림(碑林)을 모방해 조성했다는데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 그런지 성근 티가 역력했다.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蓋는 艹(풀 초)와 盍(덮을 합)의 합자이다. 풀을 엮어 덮는다는 의미이다. 덮을 개. '대개'라는 발어사(發語詞)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동음을 빌미로 차용된 것이다. 대개 개. 위 사진의 내용에서는 발어사의 의미로 사용됐다. 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覆蓋(부개, 많은 이들이 '복개'라고 읽는데 잘못 읽는 것이다. 覆은 엎어지다는 뜻일 때는 '복'으로, 덮는다는 뜻일 때는 '부'로 읽어야 한다), 蓋草(개초, 이엉) 등을 들 수 있겠다.
賜는 貝(조개 패)와 易(바꿀 역)의 합자이다. 재화를 타인에게 준다는 의미이다. 貝로 의미를 표현했다. 易은 음(역→사)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재화를 타인에게 주면 그 재화의 소유관계가 바뀌게 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줄 사. 賜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下賜(하사), 厚賜(후사) 등을 들 수 있겠다.
沈은 물에 잠겼다는 의미이다. 氵(물 수)로 의미를 표현했고, 冘로 음을 나타냈다. 잠길 침. 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浮沈 (부침), 擊沈(격침) 등을 들 수 있겠다.
淪은 잔잔한 물결이란 의미이다. 氵(물 수)로 의미를 표현했고, 侖으로 음을 나타냈다. 잔물결 륜. '빠지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빠질 륜. 淪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淪缺(윤결, 쇠하여 없어짐), 淪埋(윤매, 파묻혀 없어짐) 등을 들 수 있겠다.
耶는 고을 이름이다. 阝(邑의 변형, 고을 읍)으로 뜻을 표현했다. 耳는 음(이→야)을 담당한다. 고을 이름 야. 어조사의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차용된 것이다. 어조사 야. 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琅耶(낭야, 지역 이름. 琅邪로도 표기), 是耶非耶(시야비야, 옳을 가 그른 가) 등을 들 수 있겠다.
救는 금지시키다란 의미이다. 攵(칠 복)으로 의미를 표현했다. 강제 수단을 사용하여 못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求(裘의 약자, 갖옷 구)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갖옷이 몸을 보호하듯이 상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못하게 하는 것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금할 구. '구원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구원할 구. 救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救援(구원), 救出(구출) 등을 들 수 있겠다.
중국 철학사의 하늘(신) 변천 개념으로 우리 내면에 깃든 하늘(신)의 그림자 연원사를 언급한 것에 불만이 많을 것 같다. 우리 철학사의 하늘(신) 변천 개념으로 우리 내면에 깃든 하늘(신)의 그림자 연원사를 언급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의 범범(泛泛)한 개념으로 설명했다 치부해 주시기를! 개인적으로 동양철학 하늘(신) 변천 개념의 끝판왕은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없어 언급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