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篇多寫洞庭君山景物,讀之超然神馳於彼矣。見敎作詩,旣才思拙陋,又多難畏人,不作一字者,
已三年矣。所居臨大江,望武昌諸山咫尺,時復葉舟縱遊其間,風雨雲月,陰晴早暮,態狀千萬,
恨無一語略寫其彷彿耳。會面未由,惟千萬以時珍重。何時得美解,當一過我耶?
[蘇軾, 答上官長官二首]
보내주신 시편에 동정호 군산의 풍경을 묘사하신 것이 많더군요. 읽으면서 홀연 그곳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이 일었습니다. 작시의 가르침을 주셨으나 재주가 불민하고 사람들을 어려워하는 터라 한 글자도 짓지 못한 채 3년을 보냈습니다. 사는 곳이 대강에 임한지라 무창의 제(諸) 산들이 지척에 보입니다. 때로 조각배를 띄우고 그 사이를 노닙니다만 바람과 비 그리고 구름과 달 흐린 날과 개인 날 이른 아침과 저물녘 그 천변만화의 모습들을 핍진하게 그릴 단 한 마디도 얻지 못한 것이 너무도 한스럽습니다. 뵈올 길이 없군요. 부디 몸조심하시옵소서. 언제 아름다운 해후를 할 날이 있을는지요? 한 번 찾아 주시지 않을는지요?
[소식, '상관 장관에게 답하다']
사진은 이따금 들르는 칼국수 집 벽지를 찍은 것이다. 서체(書體)에 익숙지 않아 무슨 내용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소동파의 편지였다. 그런데 나의 무지도 무지지만 벽지의 내용 또한 소동파의 편지를 여기저기 짜깁기하여 내용을 알기 어렵게 만든 점도 있었다. 서체를 알고 읽었다 해도 내용 파악이 곤란할 수 있었던 것. 위 한문에서 진하게 표시한 부분이 벽지에 쓰여 있는 글씨 부분이다.
소동파의 산문은 섬세하면서도 유장(悠長)한 것이 특징이다. 위 짧은 편지로는 그런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지만 약간은 느낄 수 있다. 소동파는 이 편지에서 시(글)를(을)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저간의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단순히 표현력이 부족하여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편지 말미에 상대가 자신을 방문해주길 기대한다는 데서 그런 기미가 느껴진다. 단순한 마무리 인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왠지 간절히 방문을 바라는 것 같기 때문. 방문을 바라는 것은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 답답한 처지가 소동파로 하여금 붓을 들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애둘러 표현하는 섬세한 글에서 그의 산문이 갖는 특징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臨은 臥(엎드릴 와)와 品(물건 품)의 합자이다. 몸을 숙여 여러 사물을 살펴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모습을 '임하다'라고 한다. 임할 임. 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枉臨(왕림), 再臨(재림) 등을 들 수 있겠다.
望은 亡(도망할 망)과 朢(보름 망)의 약자가 합쳐진 것이다. 도망한 사람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朢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보름달이 이지러짐 없이 온전하듯 도망한 사람이 제자리에 돌아와 온전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바랄 망. 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希望(희망), 野望(야망) 등을 들 수 있겠다.
武는 戈(창 과)와 止(그칠 지)의 합자이다. 무력[戈]으로 무력을 그치게[止] 한다란 뜻이다. 전쟁을 한다는 의미이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 전쟁을 하는 자기부정적인 행위가 바로 전쟁이다. 일반적으로 '굳세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굳셀 무. 武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武器(무기), 武力(무력) 등을 들 수 있겠다.
咫는 尺(자 척)과 只(다만 지)의 합자이다. 보통 여인의 손 길이인 팔촌(八寸)을 의미한다. 주나라 때는 팔촌을 한 자[一尺]로 삼았었기에 尺으로 뜻으로 표현했다(지금은 십촌을 한 자로 취급한다). 只는 음만 담당한다. 길이 지. 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咫尺(지척, 가까운 거리), 咫步(지보, 얼마 안 되는 걸음) 등을 들 수 있겠다.
縱은 糸(실 사)와 從(좇을 종)의 합자이다. 느슨하게 풀어놓았다란 의미이다. 실을 잡아당기지 않고 느슨하게 내버려 둔 것으로 그 의미를 나타냈다. 從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거스르지 않고 따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놓을 종. 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放縱(방종), 縱擒(종금, 놓아 줌과 사로 잡음) 등을 들 수 있겠다.
遊는 辶(걸을 착)과 斿(깃발 유)의 합자이다. 깃발이 바람 따라 휘날리듯 특별한 목적 없이 한가로이 여기저기 거닌다는 의미이다. 놀 유. 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遊覽(유람), 遊戱(유희) 등을 들 수 있겠다.
소동파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당시 정권을 쥐고 있던 이들은 혁신 세력. 이 때문에 그는 외직으로 많이 떠돌았다. 정치적으로는 불우했던 것. 그러나 이런 불우한 처지가 그의 문학을 섬세하게 다듬는 벼리가 됐으니― 그의 명작 '적벽부'도 이런 배경 하에서 나왔다 ― 확실히 세상사는 어느 일면 만으로 행 · 불행을 따질 수 없는 것 같다(위 편지도, 내용으로 보건대, 그의 외직 시절과 유관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