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는 좋겠다. 매일 (박카스를) 먹을 수 있어서."
어렸을 때 친구 동생은 거의 매일 박카스를 먹었다. 할아버지가 약국을 운영하셨기 때문. 달콤 쌉싸름한 박카스를 매일 먹는 그 아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훗날 들으니, 친구 동생은 박카스 중독이 되어 하루라도 박카스를 안 먹으면 잠을 못 자는 금단 증상이 생겼다고 한다.)
박카스만큼이나 맛있는 약이 '까스 명수' 아닌가 한다. 한동안 소화가 안돼 까스 명수를 박스로 사다 놓고 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예의 그 맛 때문에 특별히 소화에 문제가 없을 때도 음료수처럼 무시로 먹었다. 아내가 "애들처럼 뭐하는 짓이냐"며 혀를 끌끌 찼다. 어릴 적 부러움을 보상받고 싶은 심리에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사진의 한자는 '활명수(活命水)'라고 읽는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란 뜻이다. 익히 알려진 국민 소화제이다. '소화제=까스 명수'란 인식이 강해 까스 명수가 원조이고 활명수는 아류인 줄 알았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반대였다. 활명수는 동화제약에서 1897년에 것이고(우리나라 최초의 양약), 까스 명수는 1965년에 삼성제약에서 만든 것이다. 활명수는 까스 명수의 등장으로 판매 타격을 받아 이후에 그 명칭을 '까스 활명수'로 바꿨다.
까스 명수는 2011년 의약외품으로 선정되어 편의점 등에서 판매가 가능해 졌는데 '까스 활명수'는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약국에서만 판매하게 되었다. 이후 동화제약은 까스 명수에 대항하기 위해 편의점 등에서 판매가 가능한 '까스 활(活)'이란 제품을 내놓게 된다. 가스가 잘 생기고 배에서 꾸루륵 소리가 날 때는 '까스 활명수'가, 배가 아프고 더부룩한 증상에는 까스 명수가 더 좋다고 한다.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活은 氵(물 수)와 舌(혀 설)의 합자이다. 물이 흘러갈 때 나는 소리라는 의미이다. 氵로 뜻을 표현했고, 舌로 음(설→활)을 표현했다. '살다'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흐르는 물소리의 힘찬 생명력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살 활. 活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活動(활동), 活力(활력)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命은 口(입구)와 令(명령할 령)의 합자이다. 입으로 명령한다는 의미이다. 옛날에 명령하는 자는 명령받는 자의 목숨줄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명령할(목숨) 명. 命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命令(명령), 壽命(수명) 등을 들 수 있겠다.
'까스 명수'든 '활명수'든 '까스 활'이든 모두 외부에서 공급되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다. 그런데 우리 내부에는 이미 이 '생명을 살리는 물'이 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생명을 살리는 물'인지는 자명하다. 문제는 자명한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 더구나 사회가 점점 더 고속화(高速化)되다 보니 이 사용 또한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마트에서 손쉽게 외부의 '생명을 살리는 물'을 구입하고 또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깊이 반성(反省)해봐야 할 사안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