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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 같은 집이 되고 싶다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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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텔레비전이 없어요?"


상대방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저희 집엔 텔레비전이 없어요"라고 하면 대부분 이상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꼭 이 질문을 한다. 그러면서 추가 질문도 한다. "심심하지 않아요?"


집에서 텔레비전을 몰아낸 지가 근 20년이 넘어가는 것 같다. 흔히 말하듯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텔레비전을 없앤 것은 아니고, 단지 시끄러워서 없앴을 뿐이다. 텔레비전을 없앤 얼마간은 좀 이상했다. 늘 거실에서 무슨 소린가 들렸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니 왠지 허전하고 때론 불안하기도 했던 것. '텔레비전을 다시 들여놓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게으른 성미 탓에 생각만 하고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어느새 텔레비전 없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텔레비전을 없앤 대신에 특별히 무슨 일을 더 하게― 독서를 한다든가 혹은 운동을 한다든가 ―되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해진 것뿐. 그리고 '조용한 것'에 덜 허전하고 덜 불안해졌다. 지금은, 더없이 편안하다.


사진은 지인과 음식점에 들렸다가 찍은 것이다. "산정송성원 추청천기향(山靜松聲遠 秋淸泉氣香)"이라고 읽는다. "산 고요하니 솔바람 소리 멀리까지 들리고, 가을 기운 청명하니 샘물 맛 향기롭네"라고 풀이한다. 고요하고 청명한 가을 날을 그린 내용이다. 단순한 서경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서경을 빌린 서정시라고도 볼 수 있다. 고요한 산과 맑은 가을 기운은 수양된 인격을, 솔바람 소리와 향기로운 샘물 맛은 그 사람의 언행을, 멀리까지 들린다와 향기롭다는 그 영향을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 텔레비전이 없어 조용한 우리 집에 어울릴만한 시란 생각이 들었다. 인격까지 이 같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는 한참 멀었다.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靜은 靑(푸를 청)과 爭(다툴 쟁)의 합자이다. '분명하게 살펴본다'란 뜻이다. 靑은 초목이 싹을 틔울 때의 색으로, 그 빛깔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글자로 '분명하게 살펴본다'란 의미를 표현했다. 爭은 음(쟁→정)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爭에는 '이끌어 들인다'는 의미가 있는데, 분명하게 살펴보려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이끌어 들여야 하기에 이 글자로 본뜻을 보충했다. '고요하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것이다. 분명하게 살펴보려면 요란해서는 안되고 고요해야 한다는 의미로 연역된 것. 고요할 정. 靜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靜寂(정적). 精肅(정숙) 등을 들 수 있겠다.


聲은 耳(귀이)와 殸(磬의 초기 형태, 경쇠경. 옛 악기 중의 하나)의 합자이다. 귀로 인식하는 대상, 즉 '소리'란 의미이다. 耳로 뜻을 표현했다. 殸은 음(경→성)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경쇠에서 나는 것처럼 분명하게 귀로 인지되는 그 무엇이 소리라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소리 성. 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聲量(성량), 音聲(음성) 등을 들 수 있다.


遠은 辶(걸을 착)과 袁(옷 길 원)의 합자이다. 서로 간의 왕래 거리가 멀다란 의미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袁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옷의 길이가 긴 것처럼 거리가 멀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멀 원. 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遠近(원근), 望遠鏡(망원경) 등을 들 수 있겠다.


泉은 수원지(水源地)를 그린 것이다. 白은 수원지 구멍을, 水는 물이 흘러나오는 모양을 그린 것. '샘'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것이다. 수원지의 물처럼 형태와 양이 미미한 작은 물이 샘이란 의미로 연역된 것이다. 샘 천. 泉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源泉(원천), 溫泉(온천) 등을 들 수 있겠다.


香은 禾(黍의 약자, 기장 서)와 曰(甘의 약자, 달 감)의 합자이다. 향기롭다란 의미이다. 초목 중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것은 오곡(五穀)이며, 이 오곡 중에서 가장 좋은 향기를 가진 것이 기장이기에 禾로 뜻을 표현했다. 그리고 달콤하다란 의미의 甘으로 본뜻을 보충했다. 향기 향. 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香水(향수), 芳香劑(방향제) 등을 들 수 있겠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이 해주는 말 중에 가장 듣기 좋은 말은 '절 간같다'는 말이다. 요즘엔 실제 절 간 같은 흉내도 낸다. 이따금 명상을 해보는 것. 외부의 소리는 죽였으나, 내면의 소리는 아직도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면의 소리도 죽였을 때 우리 집은 진짜 절 간이 될 것이고, 그때는 저 목각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집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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