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에 독경 소리 그치자(琳宮梵語罷)
하늘빛은 맑기가 유리와 같네(天色淨琉璃)
김부식과 정지상은 정치적 견해차가 심한 사이였다. 결국 김부식은 정지상을 죽이는데, 명분은 그가 묘청의 난에 연루됐다는 거였다. 그런데 세간에는 이와 다른 이야기가 전한다. 김부식이 정지상을 죽인 건 과거 정지상이 그의 요구를 묵살한데 대한 앙갚음이라는 것이다. 그 요구는 다름 아닌 저 시구를 자신에게 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정지상은 매몰차게 거절했고, 김부식은 이에 앙심을 품었다가 후일 그를 묘청과 관련지어 죽였다는 것이다. 시화집 『백운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시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시에 있어선 정지상이 김부식보다 한 수 위였다는 것.
김부식이 탐했던 정지상의 시구는 산사의 고요하고 맑은 풍경을 청각과 시각을 빌어 표현했다. 고요한 풍경은 독경 소리가 멈춘 순간을 통해, 맑은 풍경은 유리를 통해 표현한 것. 고요하고 맑다는 말 한마디 없지만 고요하고 맑은 풍경을 더없이 잘 표현했다. 김부식이 탐할만한 시구이다.
정지상의 시구에서 유리는 '맑음'의 상징으로 사용됐다(보다 정확하게는 '푸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유리는 맑음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유리가 맑음의 상징뿐 아니라 '강함'의 상징도 된다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유리 섬유의 가장 놀라운 속성은 무척 강하다는 것이다. 같은 굵기의 강철 가닥에 버금갈 정도로 강하다 … 유리에서 뽑아낸 경이로운 신물질인 유리 섬유는 가정용 단열재, 옷, 서핑보드와 호화요트, 헬멧, 컴퓨터 칩을 연결하는 회로판 등 온갖 곳에서 사용된다." (스티브 존슨,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런 설명이 없다 해도 방탄유리 등을 생각하면 유리가 강함의 상징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유리를 맑음의 상징으로만 쓰는 것은 확실히 시정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의 한 장면으로, 주인공 에단 헌트(톰 쿠르즈 분)가 인도 뭄바이에 있는 무기 중개상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에단은 일부러 무기 중개상에게 정보를 흘려 러시아 정보 당국자들이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고, 자신이, 러시아 정보당국과 마찬가지로, 핵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코발트를 막으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무기 중개상과 만나는 장면의 소품에 한글 '유리'와 같은 의미의 한자 '파리(玻璃)'가 등장한다. 파리는 유리의 이칭(異稱)이다.
왜 유리와 파리란 명칭의 소품이 등장한 건지 궁금하다. 무기 거래가 불법적인 일이니 그 무기를 운반하는 상자를 위장하기 위해 이런 명칭을 붙인 상자를 쓴 거라고 간단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장면은 에단이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에서 유리 벽면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과 관련지어 등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빌딩을 지은 것이 한국 업체(삼성물산)이니 거기에 사용된 유리도 한국 제품일 가능성이 농후하여 그 연계성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한글 '유리'라는 이름의 소품이 등장한 것 아닌 가 싶은 것이다(이 소품을 한국 영화 팬들에 대한 서비스라고만 보기엔 왠지 부족한 감이 있어 추측을 해봤다). 그런데 한자 '파리'는 중국에 대한 단순 서비스로 등장한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별다른 연관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에서는 유리가 맑음보다 강함의 상징으로 나온다. 에단이 부르즈 할리파 유리 벽면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그렇고, 이동 뒤 중앙 서버 장치가 있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 특수 총으로 유리 벽면에 흠집을 내고 온 몸을 부딪혀 유리를 깨려 하나 쉽사리 깨지지 않아 애먹는 장면이 그렇다.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에서 유리의 또 다른 면모를 읽는 것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한 포인트라 할 것이다.
유리는 이산화규소가 500도를 넘는 고열에서 용해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유리의 맑음과 강함은 상상 이상의 고열을 통해 만들어진 것. 맹자는 하늘이 훌륭한 인물을 낼 때는 반드시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질이나 사람이나 탁월한 존재가 되려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