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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서 Nov 02. 2021

구김살 없이 밝은 인성의 비용

그때는 몰랐었어 압구정 현대가 뭔지(지름의 열 두 방향 3.)

대학교 졸업반이던 해 서울의 한 직장에 입사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동기 여럿과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수시간의 시험을 치르고 그날은 바로 부산으로 다시 내려갔다. 얼마 후 동기 한 명과 나만 면접을 보게 되었고 이제는 정장도 차려입어야 하고 머리도 좀 만지고 해야 하니 하루 전날 서울에 올라와 있기로 했다. 두 살 위의 언니와 서울 강변 터미널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수 시간을 달려와 언니의 막역한 친구 B언니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게 되었다.


B언니는 마찬가지로 대학생인 오빠와 단 둘이 압구정동의 현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보통 부부의 안방이 될 가장 큰 방이 B언니의 방인 것보다, 그 방 중앙에 있는 거대한 침대보다, 그 침대 옆에 놓여 있는 책상에 당당하게 널부러져 있는 온갖 팬픽 소설보다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이것이다.


B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을 때 B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줌마가 여자는 생리할 때꼭 미역국을 먹어야 된다고 하면서 한 솥 끓여 놓고 갔어'

엄마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엄마 내 생리 주기를 모를 것 같은데 그리고 생리를 한다고 해서 밥반찬이나 국이 달라진 경험이 없는데. 아. 가정부나 파출부는 집안일이나 집안에서 발생하는 허드렛일만 해주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 집 딸의 생리 주기에 맞춰서 마치 진짜 부모가 자식을 챙기듯 돌봐주기도 하나보다 했다. 깊이 생각하기에는 다음날의 면접 때문에 너무 긴장하여 오히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B언니는 본인의 방과 큰 침대를 나와 우리 언니에게 내어주고 다른 방으로 갔다. 언니들이 밀린 이야기로 밤을 새울 동안 긴장으로 밤을 거의 지새웠다. 새벽에 겨우 눈을 붙였다가 몇 번이고 일어날 때 침대 높이가 어색하여 몇 번 발 밑이 휘청였다.  


B언니네는 부산 근교에서 단일과로 이루어진 큰 병원을 했다. 아버지가 의사셨고 B언니와 언니의 오빠도 몇 번의 재수를 했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의대를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때는 의전원이 생기기 전이기도 했다. 2살 위의 언니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기에 B언니와 나는 학교에서 간간이 마주치기도 했고 워낙에 우리 언니랑 친한 친구라서 그 둘의 이야기는 내 친구처럼 익숙했다. B언니의 아버지는 는 술을 먹으면 골프채를 휘두르는데 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궜더니 문을 내리쳐서 머리 만한 구멍이 생겼다던가. 오빠는 계속 재수를 하는데 여전히 의대 합격을 못하고 있다던가.  


나는 그 면접에 합격하여 졸업한 이듬해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누구든 상관없으니 타지에 올라와있는 나를 좀 챙겨주고 생리주기에 따라 바뀌는 밥상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돌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구체적으로 바란 적은 없으나, 간혹 그냥 B언니가 생각났다.  


우리 언니와 B언니도 고등학교 이후 내가 내 친구들과 서서히 멀어지듯 시간이 흐르며 점점 거리가 생기는 듯했고 간간이 내가 건너 건너 아는 의사가 B언니와 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언니와 오빠가 만약 공부를 잘해서 부모가 바라듯 의사가 되었다면 골프채를 휘두르던 아버지는 해당 과를 전공한 의사 사위를 찾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내가 만약 그 윤택한 가정의 자녀였다면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아버지가 의사 사위를 찾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슨 짓이 든 했을 텐데 라며 넘보지도 못할 정도로 빛나고 어여쁜 여자 아이돌의 자살 소식 보도 기사에 마치 제 수중의 것이 사라진 양 징그러운 덧글을 다는 인간들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에.. 그 예쁜 몸을 두고 죽으면 어쩌누. 아무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런 덧글처럼

B언니는 서울에서 결혼했으니 이제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을까. 마치 TV 육아 예능에 나오는 집처럼.


사실은 고등학생 때도 면접 전날 B언니의 높은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설칠 때도 그리고 지금도 부러운 것이다. 큰 병원의 병원장인 부유한 부모보다 골프채를 휘두르며 겁박할 정도로 자녀의 진로에 역정 내는 부모인 것이 부러웠다.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 유/무형의 서비스를 받아 누리는 일상이 부러웠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따라 진로를 정하겠다며 모 대학 연극영화과로 진학하여 부모가 원하는 진로와는 하등 상관없는 전공과 학과를 선택해도 결국은 모든 것을 지원받았고 마침내 특별한 성과 없이 부모가 주선한 결혼을 하는 것까지도 완벽하게 부러웠다. 과거에는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구김살 하나 없이 밝고 이리저리 사람을 간보거나 재보지 않으며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인 것이 몹시도 부럽다. 솔직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으며 이제는 그러한 사람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밝고 긍정적이기 위해 필요한 자원은 돈 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큰 비용이며 지속적인 성과를 위한 유지 보수 비용도 만만찮음을 알고 있다. 앞으로 내가 구김살 없이 밝고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솔직하고 긍정적인 사람이고자 애쓰는 것은 할 수 있다. 이제와서 내가 이런 비용을 치뤄야 하나 싶더라도 하고 싶은 것, 갖고싶은 것을 가지려면 마음가짐이 아니라 실제 비용을 치뤄어야 하는 것이다. 자. 오늘 하루도 나를 잘 키워서 괜찮은 사람으로 한걸음 더 나가보자.가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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