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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서 Oct 05. 2021

태초에 병든 독서가 있었나니.

인문학의 출발은 모두들 유년이겠지


폭력의 시작은 늘 인문학적이었다.

네가 한 잘못과 행동 그것이 바로 너라는 인간 그 자체는 요상한 인간행동론과 무적방패 유교 삼강오륜을 베이스로 깔고 기분에 따라 자기 스트레스와 짜증을 돌직구로 첨벙첨벙 던지며 내지르는 것이 그분의 스타일이었는데.

그 돌덩이에 개구리 대가리가 깨지건 말건 이 무거운 돌을 나에게 던지게  황이 나고 이 돌도 나쁘며 그중에 제일은 하필 내가 던진 돌에 굳이 대가리 깨진 리가 가장 질의 가해자이자, 본인은 늘 피해자셨다.

나는 돌 맞아 머리가 터내 머리가 터지는 바람에 엄마를 울부짖게 만 항상 나쁜 딸, 가해자로 길러졌다.


부모와 자식 간은 천륜이야. 천륜을 안따르는 넌 딸도 자식도 아니야. 천륜이 뭔지 아니. 응? 너는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지. 엄마 말을 말로 안 듣는 너는 귀머거리. 왜 대답을 안 하니.  벙어리니. 왜 말을 안 하니. 

정도로 늘 잔소리는 시작했다. 어떤 나쁜 짓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천륜이라는 단어를 자주 들었다. 그 단어가 내 죄를 명명백백 증명하는 선고 같이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그 천륜을 안 따르다니 세상에 그냥 내가 다 잘못했고 다 망친 것 같았다.

대답을 왜 안 냐. 말대답하는 그 순간 잔소리 더 길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바락바락 대들기에는 내가 많이 내성적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 보태어 너는 또 책 보니. 봤던 책을 왜 읽고 읽고 또 보니. 책 좀 그만 보고 밖에 좀 나가 놀아라. 하루 종일 책만 읽니. 만화책은 글자 잘 못 읽는 애들이나 그림이랑 같이 보는 거지 너는 왜 이런 걸 보니. 등은 내가 어느 정도 글을 뗀 이후 추가된  말들이다.


천륜을 거스르는 패륜아  못 읽는 습부진아, 언어 및 청각장애자 취급을 골고루 받았건만 모멸감이 크지 않았는지 모멸을 느낄 만큼의 나이가 차지 않아 이해를 못한 것이든지 간에 아이는 부모 앞에 무력하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항상 그냥 집구석에 처박혀 이미 읽은 책 또 읽고 또 읽고 그랬다.

자녀가 나가서 활동적으로 놀지 않고 책을 읽는 것을 용납 못 할 정도로 반지성적인 분이셨냐. 그렇지 않다.

일단 집에 엄마와 아빠의 책이 많았으며 두 분 모두 셨고 고등교육을 짧게 받으신 분들이 아니었다. 아빠는 금융업에 종사하셨고 엄마는 이후에 업이 되셨지만 서예와 수묵화를 하셨다. 리고 특히 엄마는 경박한 행동거지나 욕설, 비속어 사용을 하지 않는 자신을 아주 고고하게 여기는 분이셨다.


그런데 한 번은 그분께 망나니 소리들은 적이 있다.

언니와 내가 쓰던 방에는 책이 가득한 책장이 있었고 그 중 제목에 한자와 한글이 병용된 하드커버 양장본의 커다란 도록이 있었다. 가로와 세로가 거의 1:1 비율에 가까웠으며 상아색 바탕에 표지에는 시커먼 배경의 그림이 있었는다. 그 책 속에는 제목에 걸맞게 제각각 입 은 여러 여인들이 자 또는 무리 지어서  서거나 어딘가에 느른히 걸쳐져 있었다. 당시 두 살 많은 언니와 나는 가끔 동화책 삽화에다 볼펜으로 낙서를 하며 놀곤 했는데 예를 들어 밭매는 콩쥐 엉덩이에 뒤로 벌렁 누운 숫자 3을 부잉부잉 그리고 뿌직 뿌직 똥을 그려 넣는 식이었다. 둘이 낄낄 웃으며 모든 등장인물에게 숨겨진 엉덩이와 뿌직 똥, 콧구멍과 코딱지 등을 그려 넣다가 하루는 그 책을 펼친 모양이다. 각종 입고 벗은 여인들의 튼튼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살이 오른 허벅지가 기억난다.

구리고 쉰내 나는 설명을 갈겨보자면 아래의 글 정도 될 것이다.

- 두툼한 허벅지는 당대 남성에게는 양 손 한가득 끌어안고 싶은 탐스러운 육체였을 것이다. 흐벅진 엉덩이와 포동포동한 살결의 향내에 코를 묻고 싶었을 것이다. 통통한 두 뺨에 어린 수줍은 홍조에서 시작된 관능의 초대장은 길고 우아한 목선을 따라 살집이 올라 동그랗고 완만한 어깨까지의 곡선으로 나를 쉼 없이 이끈다. 목, 손목, 발목은 가느다란 것이 마치 비육하고 나태한 현대인의 비만이나...... 여기서 슬랜더한 현대 여성의 미를 하찮게 까내리는 문장을 대비되게 더 쓰되 결국은 여러 시대에 걸친 여성의 외형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논조를 유지한다면 구리고 쉰내 나는 문단이 완성되는데. 기까지만 하겠다. 이걸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니까.

 여하튼 그들 중 내 기억에 아름다운 이는 [옷을 벗은 마야]였다. 늘씬하고 아름다웠다. 언니와 나는 옷을 벗은 마야의 나신에 볼펜으로 가슴과 유두를 덧그려 놓고 르네상스 여인들의 히프에 숫자 3자를 빠잉빠잉 덧그렸으며 그 3자는 콩쥐 히프의 3자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얼마 뒤 엄마는 언니와 나를 앉혀두고 한참을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이게 딸들이 하는 짓이니. 빠가 이걸 보고 이런 짓은 망나니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어! 너희는 망나니야. 망나니!'


그런데 나는 미취학 아동이라 천륜 뭔지 모르듯 망나니가 뭔지 몰랐다. 울산 살던 시절로 기억하는데 그곳에서 언니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고 곧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으니 나는 많아도 6살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망나니가 죄인의 목을 칼로 치는 덩실덩실 춤꾼임을 알았을 때 저 사람들은 저렇게 춤추다 죄인 목도 치고 여자들의 그림에 나쁜 희롱도 하는가 보다 생각했 그 생각을 할 때도 사실 어렸다. 목을 치는  순간은 보통 TV에 직접적으로 광경이 나오지 않고 물 뿌린 칼 휘두르며 얼쑤절쑤 댄스는 한참 추지 않나. 그래서 흉한 몰골에다 넝마를 대충 걸친 망나니의 본업은 춤이라고 생각했다. 지만 내가 한 행동은 망나니가 춤추다 남의 목숨을 빼앗는 일처럼 잘못이기에 비난받을만하다고 생각했으며 게다가 우리가 덧그린 가슴과 유두, 엉덩이를 보고 아빠가 그렇게 화를 냈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이제 와서 확인할 수 없지만 사실 아빠가 그렇게 화냈다는 것은 엄마의 MSG였던 것 같다. 엄마는 딸들이 한  행동에 아빠의 시선을 투영하여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하셨던 것이 아닐까? 아빠는 딸들이 명화 속 여인들의 나신에 낙서 좀 그렸다고 화를 낼 정도로 우리한테 관심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이 기억을 유일하게 아빠에게 혼났던 기억으로 떠올리곤 했는데 사실 아빠한테 혼난 기억이 아닌 것이다.  아빠는 나를 훈육하거나 억울하게 혼내거나 비난하거나 칭찬하거나 예뻐하거나 아고 관심 가져 주심을 내가 알 수 있을 정도로 표현한 적이 없다. 사실 나는 저 기억을 엄마를 통해 단 한번 우리를 엄하게 혼냈던 아빠의 사랑이라 포장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아마도 비쌌을 그 책의 제목 한자를 내가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도 사진 앨범들과 함께 책장 하단에 차곡차곡 겹쳐져 있었고, 나는 그 책장을 다시는 펼쳐보지 않았다. 그 책의 존재 자체가 무서웠다. 죄가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아주 어릴 때 들었던 모르는 단어의 무서움과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개념에 관한 비난은 그런 류의 명화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게 만들었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술책에 있는 삽화 중 그 여인들의 그림이라도 나올라치면 누가 당장이라도 야 이 망나니야!라고 욕할 것만 같이 무서웠다.


내가 밖에 나가 열심히 활기차게 놀았으면 그런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내가 하루 종일 책을 읽는 것이 잘못이었을까. 적당히 나가 놀기도 했고 친구도 있었다고 기억하지만 확실히 집에만 있기는 했다. 울산에서 김해를 거쳐 다시 부산으로 이사오며 언니와 내 방이 나뉘게 되었다. 같은 침대와 책상이 각각, 그리고 옷장은 언니의 방으로 책장은 내방으로 들어왔다. 차차 쓰겠지만 가족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나는 그 책장에 있던 엄마와 아빠의 책을 아주 열심히 몰래 읽었다.




나는 이제 천륜이 무엇인지도 이해할 정도로 나이 먹고 다방면의 독서 통해 침내 망나니가 무엇인지도 또 그 직업적 특성과 해당 단어의 각종 비하적 쓰임새도 알게 되었다. 리고 그다지 몰랐 될 만한 것들도 함께 알게 었다.

열 살도 안 먹은 딸들에게 퍼부을 말이 둘 다 아닌 것

런 단어를 일방적으로 퍼붓는 관계가 과연 가족인가 라는 고민은 이제와 소용이 없는 것

그리고 그 망나니가 나이를 먹어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 볼모로 잡아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 가족이라면 제 아무리 천륜 자신이라도 그 가족 천륜으로 품어주지 않으리라는 깨음까지도


이제 와서 그때 나를 안아주고 싶다느니 내가 나이 들어 보니 부모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겠다느니 아 아버지의 그 모습은 아아.. 어쩌고셨군요. 표현하지 못한 저에 대한 저쩌고 가 있었군요.  따위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추호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 뿐이다. 굳이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을 두고 한 천륜이니 뭐니 망나니 같은 소리를 듣지 않고 자랐다면 나는 조금 달라졌을까 이런 가정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지나간 일 하나하나 짜내어 의미 부여하며 징징거릴 시간은 나지 않는다. 다행히도 아집 강한 사람들이 그토록 관심 있어하는 '진정한 나 자신'에도 그다지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 그럴 시간이 난다 해도 '나 자신의 내면'을 곱씹으며 끝없는 도피행각을 펼치고 있을것 같지도 않다.


 이 와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이것 하나.

이렇게 쓰다 보면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던가 누군가가 조금 더 이해가 된다던가 그런 것 상관없이 여전히

독서는 너무나,

지극한 즐거움이고 날이 갈수록 흥미로워 지기만 하여 이 짜릿함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다.

때때로 고달픈 일이 있어 수년씩 책을 가까이할 여유가 없었을 때도 있었으나 읽고 읽고 또 곱씹을 시간이 부족했을 뿐 항상 이어진 독서가 있었다.

게다가 이제 나이까지 좀 먹었더니 각각의 책들이 스스로 재구성되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도 있어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다. 다행히 그 복잡한 생각을 더듬어 올라가 그 출발이 어디인가를 곱씹을 시간이 어쩌다 나기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대략 이렇게 생겼다.




병든 독서의 시작


1. 名畵 속의 여인들


 책에 대해 씁니다. 그러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이야기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인간 중에 가장 긍정적인 사람이 쓰는 독서여행. 희위고.







다음 글 예고

내가 어릴때 가장 반복해서 읽은 책이 뭔 줄 알아?

- 차가운 엔진 뜨거운 낭만.쥘 베른











생각해보니 아비의 처녀들에도 가슴을 그렸다. 

아무리 봐도 엉덩이 없었는지 3자는 못 그렸.

오른쪽 위 검은 얼굴은 사자라고 생각했고 오른쪽 아래 얼굴은 가면을 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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