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카페에서의 소회
제주 한경면 근처 카페를 알아보다가 우연히 들르게 된 카페 '우호적 무관심'. 한경면 저지리 예술인 마을 미술관 근처에 위치하여 그런지 카페 자체가 무언가 '설치 예술'스러운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심미적인 멋들어짐 보다는 공간의 구성들이 눈에 띄었는데, 널직한 공간을 제법 비효율적으로 나누어 놓았다. 구역들이 서로 명확하게 '단절' 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무형의 막이 형성되어 있는듯 심리적으로 '단절'시켜 두었다. 모두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 구역의 독립적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카페의 이름인 '우호적 무관심'을 그대로 표현해둔 것만 같은 재미이다.
문득, 우호적 무관심을 아래와 같은 축을 기반으로 놓고 보면 2사분면 위에 놓인다.
음..각각의 조합에 대해 우리 현대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고 싶어졌다.
1) 적대적 관심
적대적 관심만큼 최악인 조합이 있을까. 끊임없이 나를 귀찮게 하는데, 그 기반이 악의적인 감정이라니. 대략 '언쟁', '시비' 정도로 표현되는 상황일 것이다. 현대인의 특성을 떠나서 인류의 등장 이래로 적대적 관심을 좋아하는 인류가 있을성 싶다. 아주 호전적인 '쌈닭'이 아니고서야... "제발 나에게 강한 시비를 걸어줘..." 요즘 시대의 사이코패스가 좋아할만한 조합일지도 모르겠다.
2) 적대적 무관심
직접적인 불편함을 야기하지는 않지만, 악의적인 감정이 만연한 상황 - 대략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하는 '뒷담화', '불평 불만' 정도가 아닐까. 예민함의 정도에 따라 상대가 나에게 무관심한 이유가 나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이라는 사실 자체는 인지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에게 무관심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대체로 괜히 기분이 나쁜 찝찝함을 지울 수 없기에, 썩 편하지 않다.
3) 우호적 관심
이 조합은 유독 현대인에게만 불편한 조합이 되겠다. 과거 대비 사적인 공간에 대한 '선'이 확실하고 엄격해진 현대인, 그 '공간'이라 함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 '심리적'인 공간까지 의미가 확대된다. 지하철이나, 엘레베이터와 같이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공간이면, 나만의 심적 공간을 찾아 '이어폰'을 착용한다. 이로써 바깥 공간과의 단절을 꾀하고, 혼자만의 '시공간'을 차지한다. 이를 깨부수는 과한 '관심'은 때로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한 이러한 관심에 대한 불편함을 내색함으로써 의도치 않은 기성 세대와의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얘는, 신경써서 챙겨줘도 싫다고 하네?" 그러한 신경써줌이 미덕이었던 세대와 다르다.
4) 우호적 무관심
이제는 '우호적인 무관심'이 미덕이다. 이는 각자의 공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출근 길에 우연히 지하철에서 회사 동료를 만나도 눈인사 정도로 예의를 차리고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다. 친구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에 대해서도 '칭찬'의 메세지 보다는 '아무말 안함'이 훨씬 편하고 좋다.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하고,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시대인 만큼, 말을 아끼는 것, 관심을 아끼는 것이 오히려 '우를 범하지 않음'에 가까운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성향을 '정 없다.' '야박하다' 라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우리 현대인들은 혼자만의 공간을 얻을 기회가 그만큼 희박하다. 나의 개성, 가치관과 일치하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맘편히 몸과 마음을 누일 공간 찾기도 어렵다. 극심한 '관심 종자'인 나조차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큼은 극도의 무관심 속에 살고 싶으니까.
우연히 찾은 카페의 이름과 공간 구성이, 이번 나의 제주 여행의 컨셉과 너무도 잘 들어맞아,
우호적 무관심 속에서 슥슥 글이 잘 적히는 것이 재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