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하루에 4끼씩 거뜬히 먹었는데
일정 시기가 되면 발현되는 2차 성징, 학교에서 교과서 속 텍스트로 접할 때에도 신기했고 직접 겪을 때에도 신기했다. 어떻게 태어난지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여러 신체적인 변화가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걸까. 신체적인 변화와 더불어 '질풍 노도의 시기', '중2병' 라 불릴 정도의 정신적인 변화까지, 여러 기계들의 '예약 기능'과 같이 대체로 오차없이 제 때에 발현된다. 매우 급격한 변화이기도 하거니와, 교과목 '기술 가정' 수업 시수와 더불어 그 즈음 진행 되는 수많은 '성교육'들로 큰 당혹스러움 없이 해당 시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신체적/정신적 변화는 2차 성징에서 끝인 줄만 알았다. 교과서에서는 그 이상의 내용을 다뤄주지 않았고 우리가 '어른'으로 인지하는 부모님 세대와 조금 낮게는 '삼촌, 이모 세대'들로부터도 2차 성징 이후의 또 다른 '변화'에 대해 가르침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올해 서른 살을 맞이하며 몇 가지 큰 변화들을 겪게 되었는데, 이 변화 자체가 낯설고 당혹스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변화이기에 찬찬히 글로써 남겨보려 한다. 정확하게는 '노화의 초기 증상' 정도로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자고로 '노화'라 함은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가 나는, 조금은 우리 또래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증상(멀었으면 하는 증상)이기에 최대한 그 거리감을 유지하고자 '중년화' 라 일컫고 싶다.
일단 소화가 잘 안된다. 이것이 거의 늘상 잘 안되다보니 아무리 배고프고 식욕이 돋더라도, 소화 불량이 걱정되어 맘껏 먹지를 못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겠거니 싶어 계속 먹다보면 며칠을 고생한다. 가끔은 적당히 공복감을 느낄 때에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때도 있다. 이제는 이것이 중년화의 대표 증상임을 받아들이고 식사량을 조절하며, 밤늦은 시각의 야식도 먼저 고사한다. 먹거리 자체도 튀김, 고기와 같이 헤비한 것들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일부러 야채, 두부와 같이 라이트한 것들을 찾아 먹게 된다. 저작 운동 단계에서부터 느껴지는 소화의 easy함에 마음의 안도를 느낀다.
또 너무 쉽게 살이 붙는다. 이런 걸 '나잇살'이라 부르며 다들 쉽게 받아들이지만, 갖가지 생활 속 운동과 부지런한 라이프 사이클 내에서 한평생 살 찌는 걱정이 덜했던 나로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뭐랄까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의해 살이 찌는 느낌이랄까. 섭취량 내에서 영양분 흡수 기제가 말썽인건지, 동일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만약을 대비한 에너지분을 일부러 축적해두는 기제가 생긴건지.. 얼굴에도 살이 오르고 배와 옆구리에도 살이 찬다. 소화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는데, 그걸로 살까지 찐다니 야속하기 짝이 없다.
와중에 피로감은 또 쉽게 쌓이고 잘 회복되지 않는다. 다이나믹듀오의 노래 가사 '하루를 밤새면 이틀은 죽어'가 '오 나의 늦은 20대 고백'에 딱 걸맞는 내용이라는 걸 몸소 체감하고 있다. 굳이 밤샘까지 갈 필요 없이 새벽 1시만 넘겨도 다음 날 업무에 타격이 있다. 늘상 새벽 2시는 되어야 잠들던 청년 시절이 무색하게, 약간의 패배감에 젖어 밤 11시면 침대로 향하는 스스로에게 이제는 적응이 되었다.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모여 수다를 떨며 놀다보면 자정이 되기 전에 '귀가'라는 옵션을 떠올린다. 예전엔 택시비가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자 막차 시간을 살폈다면, 이제는 다음날 피로감이 걱정되어 막차 시간을 살핀다. 실제로 자정이 넘어 수다를 떠는 그 순간에도 체력과 텐션이 급격히 떨어져감을 느끼지만 모두가 '이 밤의 끝을 잡고' 억지로 1분이라도 더 함께 있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내 눈이 감기는 것을 외면 못하고 귀가길에 오르며 다음에는 좀 더 이른 시각에 만나서 일찍 파하자는 멘트로 마무리 한다. (술이 옛날보다 더 잘 취하고, 숙취도 더 심해지는 현상은 굳이 더하지 않겠다.)
몸이 쉽게 뻣뻣해지는 것 또한 피로감을 쉬이 증대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찌뿌둥함이 빈번해지고, 유연함이 떨어지면, 동일한 움직임을 취함에도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든다. 또래들의 '살기 위해' 헬스를 한다, '살기 위해' 호수 둘레길을 뛴다 등이 모두 진심이다. 조금만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파, 잠시 일어나 허리를 돌려줘야 한다. 허리 뿐 아니라 목, 어깨 등도 결린다. 왜 그 비싼 돈을 주고 마사지, 지압을 받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그리고 왜 고객 연령 분포가 유독 30대 이후가 많았는지도 이제 마음으로 이해가 된다.
피로감은 쉽게 쌓이고, 해소는 잘 안되고, 소화가 잘 안되니 맛난 것도 많이 못 먹고, 하지만 그럼에도 살은 찌고.
증상들의 조합은 대략 '건강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조합이다. 건강하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이 중년화 증상을 역행하기 위한, 내지는 늦추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 부단히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규칙적이면서 소화에 용이한 식습관과 적절한 유산소, 근력 운동 그리고 올바른 자세 유지와 적정 빈도의 스트레칭은 이제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것들에 대한 교육은 2차 성징과 다르게 제도권 교육 시스템에 부재한다. 몸으로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며 '중년화' 증상을 받아들이기까지도 '중년' 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 제법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별도의 교육이 있다고 한들, 직접 몸소 겪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부정할지도 모른다.
'나는 남들과 달라, 아직 젊다구.' 하지만 아직 마음만큼은 청년인데, 몸은 마음 같지 않다.
위 증상들 외에도 더 다양한 증상들이 있을 것이다. 기억력이 감퇴한다든지, 무기력증이 자주 도진다든지...
2차 성징의 "어떻게 태어난지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여러 신체적인 변화가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걸까." 와 같은 설렘 섞인 놀라움은 없다. 씁쓸한 놀라움일 뿐.
슬프지만,
예전과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지 말고 이를 경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다 오래 젊음을 유지하는 지름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