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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phan Seo Nov 09. 2020

내부 감시자로부터의 자유

범인은 이 안에 있어

나이 서른을 맞이하고 제법 자주 지난 날들에 대한 짙은 회의감에 젖곤 한다. 

'이렇게 30년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그렇게 열심히만 살 필요가 있었나'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주는 고통이 있었는데도, 그것은 더 큰 고통을 사라지게 할 작은 고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작은 고통에 이어지는 것은 끝없는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다. 대체 이 고통을 주는 범인은 누구인가.




웰빙에서 힐링으로 (From Well-being to Healing)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10년 전부터 등장한 핫한 키워드는 '웰빙'이었다. 과거 기성 세대들이 좇던 '가성비'로부터 벗어나 조금더 제 값을 치르더라도 양질의 것을 소비하여 우리 몸에 장기적으로 득이 되는 소비를 하자는 트렌드로 기억한다. 유기농, 무농약, 비건(채식주의자) 등이 대두된 것도 그러한 트렌드의 연장선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보다 윤택해진 것 같다. '절약', '저축' 보다는 '소비'를 일삼으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 싸구려 커피보다는 직접 원두를 골라가며 취향에 맞는 커피를 소비하고, 소주 맥주에 안주하지 않고 와인, 위스키 등 다양한 맛과 도수의 주종을 두루 소비한다. '웰빙'은 요컨대 그간 신체적 건강을 소홀히 해왔던 현대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육체 건강을 다시 챙기게끔 해주는 사회 문화적 변화였다. 웰빙으로 인해 현재의 소확행을 맛본 현대인들은 건강을 되찾아가며, 이러한 웰빙 문화를 더욱 가속화 하였다.


그렇게 10여년이 흐르고 새롭게 등장한 키워드는 '힐링'이다. 웰빙이 신체적 건강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힐링은 정신적 건강에 대한 회복을 의미한다. 여기서 특이한 건, '웰빙'은 그래도 Well-Being - 더 잘 존재함 (안녕함) 의 의미인데, '힐링'은 Healing 치유 (아픈 것으로부터 회복) 의 의미라는 것. 애석하게도 몸의 안녕함을 되찾으면서 정신 건강을 되찾진 못한 것이다. (또는 몸의 안녕함을 되찾고 보니, 이제 정신 건강에까지 관심이 미친 것일지도) 신체적인 생명 부지에 필수적인 '의식주'의 웰빙 소비에서 나아가 정신적인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각종 '컨텐트'의 힐링 소비하기 시작했다. 


'힐링 컨텐트' 라 함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체로 속세와의 단절이 핵심이다. 단절을 꾀하고 그 단절 속에서 '재충전'을 하는 구조이다. 여행, 지역 축제 등과 같은 물리적인 이동에 의한 '단절'을 추구하거나, 유튜브/넷플릭스와 같은 가상 공간에서의 이동에 의한 '단절'을 추구한다. 번뇌가 극심하여 혼자 힘으로 '단절' 을 꾀하기 어려운 이들은 '요가', '명상' 등의 테라피를 받거나 극단적인 경우 약물을 처방받아 극복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왜 현대인들이 그토록 정신적으로 힘든 고통을 겪는 것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한국 사회의 살인적인 경쟁체계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라고 하는 단일 노선을 전력질주하게 만들었고, 한 줄로 줄세워진 대학 입시에서부터 순위가 매겨졌다. 이어지는 취업 전선도 '전선'이라 불릴 정도로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렇게 가시적으로 주어지는 경쟁들의 강도가 거세고, 또 그것들이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삶 자체를 경쟁으로 인지하게 된다. '힐링'을 하고 싶어서 주말 하루를 푹 쉬어도, 오히려 찝찝한 기분이 든다. 

'오늘 하루 쉬어버려서 내가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재밌는 것은, 어릴 적 학업 레이스에서 우리들을 채찍질 했던 것이 외부의 감시자인 줄로만 알았다. 학교, 학원의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의 감시가 있었기에 다들 쉬지 않고 뛰어야만 했던 것이리라. 우리 사회 내에서의 레이스 또한 외부의 감시자로 인해 지쳐가는 줄만 알았다. 사내의 사수 내지는 인사 고과 시스템으로 인해 열심히 해야만 하고 고통이 배가 되는 것이라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모여 '힐링'을 자처하며 흔히 담임 선생님을 욕하거나 부장님들을 욕하지 않는가.


허나 이미 다들 알겠지만 (그러면서도 모른척 하겠지만) 우리들을 채찍질 하는 진짜 범인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내부 감시자가, 우리들을 맘편히 쉬지 못하게 만든다. 휴식은 곧 게으름이고, 게으름은 곧 부덕한 것이라는 공식은 어릴 적 한번쯤 읽었을 동화책, '소가 된 게으름뱅이' 에서부터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았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스스로를 착취하는 자기 착취 사회이다.

'근면', '성실'은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기 보다, 오히려 기본적인 덕목으로 꼽힌다. 

마땅히 사람이라면 부지런히 쉼없이 살아야 한다. 

학업, 취업 뿐 아니라 취미도 열심히 해야 하고, 이제는 힐링마저도 열심히 해야 할 것만 같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힐링'을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외부의 그 어떤 것보다도 나의 내면의 감시자로부터 자유를 먼저 얻어내야 한다.

외부의 그 어떤 것에 대한 불평 이전에,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휴식과 힐링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를 살펴얄 것이다.


웰빙과 힐링, 몸과 마음이 건강한 날들을 꿈꾸며 

힐링하러 제주에 와서는 이따끔씩 회사 일, 커리어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나를 돌아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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