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무기를 뒤늦게 발견하다.
이미 분업화가 잘 되어 있던 B사는 2019년으로 접어들면서 개발 조직마저 미션팀 구조로 개편되며 더욱 더 세분화 되었다. 세분화 과정에서 일종의 과도기를 겪게 되는데, 업무 진행 간에 놓치는 업무 또는 겹치는 업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책임소재가 불명확한 업무들은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고, 미처 분기별 플래닝 시에 인입되지 못한 건들은 1분기 이상을 기다린 끝에 처리되곤 했다. 끊임없는 애자일에 대한 고민과 협업 프로세스 개선에 대한 노력 등을 거쳐 2021년을 맞이하는 지금에야 조직적/구조적으로 그러한 이슈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개개인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세분화된 조직 하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우선 순위에 대한 의사결정이었다. 나는 A 라는 과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하루 빨리 이를 해결해야 하는데,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은 개발팀 입장에서는 한참 후순위로 둔다. 분기 플래닝에 반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렇다고 분기별 플래닝 시에 미리 이야기하면 반영이 쉽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분기에 반드시 A 과제를 수행하여야 하는 이야기를 해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과제들이 여러 팀들에서 인입되기 때문에 개발 부서의 플래닝에 쉬이 반영이 되질 않는다. 심지어 개별적으로 미팅을 통해 해당 사안의 중요성에 대해 어필을 하여도 buying이 되질 않는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한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목표로 삼고 달리는 지점이 달랐던 것이다.
누군가는 "매출 증대"를 목표로 하고, 누군가는 "시스템 안정"을 목표로 하고, 누군가는 "직원들의 복지"를 우선시하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Company level 의 최종 목표는 "매출 증대"이기 때문에 거기서 발로한 분기 플래닝은 분명 매출 증대와 관련된 액션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부서별 Objective 와 Key Result 로 쪼개 내려오면서 상호간 gap 이 생기고, 점차 벌어지더니 아예 다른 목표를 바라보며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벌어진 거리를 좁히는 데에는 대단한 커뮤니케이션 cost 가 요구된다. 기본적으로 거리를 좁혀야 하는 팀 사이의 Sync-up 미팅을 주기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나 또한 그러했다. 기본적으로 업무의 밀접도에 따라 매주 또는 격주로 30분씩 Sync 를 맞추며 업무 진행 사항을 서로 공유했다. 그리고 놓치기 쉬운 부분은 한 번 공유에 그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재차 강조하며 공유하고 확인한다. 맞춘 Sync 내용들은 반드시 글로서 기록하였고, '과하다'고 느낄 정도의 Reminder를 곳곳에 날렸다. 가장 많이 쓰는 문구들은 아마도 아래와 같았을 것이다.
혹시, 진행 상황, 업데이트, 팔로업, a Kind reminder, 더블 체크, 확인 , 싱크업, align, 검토, 피드백, 공유, 리마인더, 타임라인, 예상 일정, ...
예전에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크게 의미부여 하지 않았다. 이는 마치 어릴 적 도덕 교과서의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된다."와 같이 숨쉬듯 당연하면서도 크게 어렵지 않은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허나 "커뮤니케이션"의 한글 의미가 "소통"(疏通;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이듯, 이는 비단 말을 서로 주고 받음에 그치지 않는다. 영어 표현으로 be on the same page 라 하듯, 말을 주고 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서로 머릿 속에 그리는 것들이 명확히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 일단 서로 이야기를 해야 하고 -
(2)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하고 -
(3) 서로의 이야기를 서로가 제대로 이해하였는지 확인까지 해야 한다.
(4) 그리고 해당 이해를 바탕으로 후속 액션 아이템들을 수행하는 것까지 해야 비로소 '소통'이 된다.
이 때 각 단계별 필요 역량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대화 자체에 대한 거리낌이 없게끔 외향적인 성향이면 좋고, 때론 끈기와 인내도 요구된다.
(2) 논리력에 기반한 "화술", "필력"이 필요하다. 때론 시각화, 데이터 가공 능력도 요구된다.
(3) 얼렁뚱땅 마무리 하지 않는 꼼꼼함, 철두철미함, 치밀함 등이 필요하다.
(4) 도출된 액션 아이템까지 이행할 수 있는 책임감과 오너십이 필요하다.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사람들과 부단히 접촉하며 대화를 시도하고, 적절한 논리, 데이터에 기반하여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전달코자 하는 메세지가 온전히 되게끔 노력하며 그것이 잘 전달되었는지 더블 체크까지 한 후에 상호 진행하기로 한 액션 아이템까지 완수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포맷
어떠한 '사실'을 공유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이지만, 보통 어떻게 '생각' 하는지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말 또는 글로서 소통하는 것으로는 '소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적절한 포맷을 찾아 별도로 발표 자료를 만들어 피칭(Presentation)을 하거나 데이터 기반의 프로젝션(Projection)을 하기도 하고, 제대로 된 맥락 공유를 위해 히스토리를 요점 정리하여 공유하거나 선행 과제를 수행했던 사람의 목소리를 미리 준비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목적은, 소통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이 나의 메세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 필요한 모든 일련의 노력들이 소통의 일부인 셈인 것이다.
채널
간단한 커뮤니케이션 - 속도가 가장 중요한 경우에는 사내 메신저가 주된 채널이지만, 여러 맥락에 기반한 네러티브가 필요한 것이 흔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미팅이 가장 흔한 방식이다. 오프라인 미팅은 구두로 진행되지만, 요즘 미팅 노트 작성이 필수이기 때문에 보다 정돈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만약 상대방의 견해를 즉각 듣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메일을 작성하여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 agenda의 경우 대체로 가벼운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적합한 채널일 수 있다. 그 외에 업무 외적으로 갖는 점심 식사나, 커피챗, 동아리 활동, 탕비실 대화 등을 통해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주고 받는 대화들도 업무적 협업의 큰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은연 중에 쌓여가는 맥락들이 아찔한 미싱 링크를 방지해주기도 하며, 상세한 배경 설명 등의 커뮤니케이션 cost를 절감시켜주기도 한다.
대상
경우에 따라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상사나 유관 부서에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이는 보통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하였을 때에 원하는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이거나, 또는 당사자의 의사결정 권한이 제한적일 때에 유용하다. 또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유관 부서를 함께 미팅에 초대하거나, 당사자가 소속되어 있는 팀 전체를 초대하거나 - 더 많은 공감대를 한꺼번에 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여러명과 함께 싱크를 맞추는 것이 (물론 그만큼 그들의 시간을 뺏는 것이지만) 오히려 더 빠르고 효과적일 수 있다.
그간 인지하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나에게는 유독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큰 강점이 있었다. 그 사실을, B사에서 녹록지 않은 조건 (맡은 직무의 낮은 우선 순위, 부족한 인적 자원, 복잡한 운영/개발 legacy..) 하에 고군분투하며 미싱 링크들을 맞춰가는 와중에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강점의 중요성과 희소함에 대해서도 몸소 느끼게 되었는데, 이는 나로 하여금 큰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나아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고장난명), 나와 죽이 잘맞는 B사의 동료들에게도 큰 감사함을 갖게 되었다.
커뮤니케이션은 분명 고급 노동이다. 가장 쉬워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노동 중 하나이다. 본 글에서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변수는 결국 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느냐가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중앙집권적인 절대 왕권 조직에서는 그 중요성이 크게 감소하겠지만, 어느 정도 민주적이고 분권화된 조직을 상정하였을 때..)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는가?"
앞으로 내가 어느 조직에 몸을 담을지 선택할 때에,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가끔 나도 커뮤니케이션에 지칠 때가 있다. '이 모든 간극들은 나의 조악한 노력으로 좁혀지기나 하는 것인가'
그럴 때면,
극도의 외향적인 성향의 나조차도 이러한 지침과 부침을 겪는데,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얼마나 고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이 안쓰러움을 견디지 못해 이내 힘내어 다시 커뮤니케이션에 힘쓰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