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Growth)
유난히 고되었던 2020년이 저물어 간다.
Covid19 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했던 2020.
똑같은 크기의 고됨이라 할지라도, '코로나'라는 양념이 더해져 2020년에는 유독 더 힘겨웠다.
'성장(Growth)' 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며 시작했던 올 한해를 회고해보자.
성장 (Growth)
2020년의 단연 1순위 이벤트는 결혼식이었다. 19년 3월의 프로포즈를 기점으로 1년 여의 시간을 달려오던 때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여러 스트레스를 겪었다. 청첩장은 어떻게 나눠줘야 할까. 식수 인원을 줄여야 할까. 하객들에게 답례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할까. 당시에는 아찔했던 순간들이었지만 돌아보면 운이 좋았다. 가장 중요한 신혼집을 그 전에 미리 구해두었고, 상견례도 너무 늦지 않게 (신천지 이슈 전에) 진행하였다. 또 수도권 확진자 수는 적을 때라 실질적인 위험도 지금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고, 막 코로나 위기감이 팽배했던 3-4월을 지나 어느 정도 여론이 잠잠해지던 5월 말에 진행하였으니. 정부의 단계별 지침도 딱히 없던 시기에 운 좋게 초대하고 싶은 모든 하객을 부지런히 초대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스트레스가 극심했지만 ...
웨딩 플래너 없이 직접 진행했던 고됨 속에서 극단의 커뮤니케이션 난이도, 금전적인 난항,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했던 멘탈리티 등 다각도로 성장을 경험했다. (관련 글 : 29살 동갑내기의 결혼 준비) 와중에 애프터 파티까지 기획을 하고 진행을 했는데, 돌아보면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별도의 초대장을 마련하고, 인원 수를 관리하며 음식과 술을 준비하고, 발표 PPT 를 제작하고 lucky draw 선물을 준비하고 ... 그렇게 준비된 모든 것을 결혼식 전날 직접 해당 장소로 날라서 세팅을 하고... 무거울 수 있는 '결혼'이라는 이벤트가, 코로나로 인해 더욱 무거워질 뻔했으나 오히려 더 '짜릿하게', '재밌게', '즐겁게' 진행될 수 있었다. 내 생에 또 언제 500명이 넘는 인원을 나에 대한 축하를 위해 초대를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리딩을 해볼 수 있겠는가 ! 그것도 이렇게 녹록지 않은 조건 속에서 .. !
결혼식과 결혼 생활은 엄연히 다르다. 인생 일대의 이벤트를 기획, 준비, 진행하며 느낀 성장과 인생 자체의 변화 속에서 느낀 성장은 차원이 다르다.
'다름'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필요에 따른 '조율' - 일련의 정-반-합 프로세스의 총체가 결혼생활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나이도 같고, 사회 생활 연차도 같기에 벌이도 비슷하다. 역할을 나눔에 있어서 심리적인 첨예함이 더해지기 쉽다. 아직 만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기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신혼 생활에 대한 실질적인 사례를 접하기도 어렵다. 나 스스로도 이성과 마음의 내적 갈등으로 제법 어려움을 겪었다. 머리로는 잘 되는 '이해, 양보, 배려'가 생각보다 감정으로 잘 이어지지 못했다. 서로가 서운함과 섭섭함에 여러 다툼이 있었으나 돌아보니 이 또한 신혼의 통과의례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새 '합'의 단계에 이르렀는지 이러한 다툼이 없어진지도 오래됐다. 이제는 웃으며 신혼 초기의 옹졸했던, 치기어린 다툼을 추억한다. 물론 여전히 우리는 신혼이기에 또 앞으로 겪지 못한 사건 사고를 겪으며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어떠한 성장통이 있을지 모를 앞날을 기대해본다.
여기서 코로나는 은근 순기능을 수행하였는데, 주 5회 약속이 기본이었던 나로 하여금 외출을 삼가게끔 함으로써 시나브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들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 우리 결혼 생활을 정비하는 시간도 넉넉하여, 결혼 생활에 요구되는 성장치를 여유있게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몸담고 있는 B사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손꼽는 것은 단연 '문화'이다. 회사 동료들과 막역한 친구처럼 지내면서도 업무 시에는 프로페셔널함을 잃지 않는 - 그런 이상적인 문화. 이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맡은 바 직무를 책임지고 수행할 수 있는 역량과 오너십을 갖춘 인력이 기반이 되어야 하겠지만, 각종 제도들의 뒷받침 없이는 명맥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 시국에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각종 '스터디 활동', '동아리 활동, 월별로 진행되는 액티비티 기반의 '회식들' - 이 모든 것이 코로나로 인해 금지되었다. 연중 행사에 해당되는 '글로벌 워크샵', '체육 대회', '할로윈 파티' 도 물론이다. 자연스레 사적인 모임들도 줄어들게 되었고, 협업 지점이 없는 부서간 교류도 거의 끊기게 되었다. 타 부서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낮아지고, 회사를 다니는 '재미', '즐거움' 또한 반감되어 버렸다. 회사 생활의 여러 부침을 견뎌내던 힘 중 하나가 B사의 문화적 힘이었는데, 그러한 것들이 사라져가니 매출의 반등도 괜시리 잘 안되는 것 같았다.
HR 부서는 부단히 방법을 강구했다. 회사 동료들 또한 다방면으로 노력을 했다.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덕분에 이제 코로나와 함께하는 회사생활이 어느 정도 정착한 것 같다. 온라인 행아웃을 통한 미팅 프로세스가 익숙하다. 100명이 넘는 인원의 전사 미팅부터, 1:1 (원오원) 미팅까지 - 오프라인 만큼은 못하지만 협업에 무리는 아니다. 나아가 회식과 스터디도 이러한 행아웃을 통해 진행한다. 처음엔 '온라인 랜선 회식?' 어색하고 이상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회식 뿐 아니라 사적인 술자리도 랜선으로 진행한다. 생각보다 자연스럽고 재미있다. 그간 단절되었던 소통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있었기 때문인지, 시간 가는줄 모르고 4시간, 5시간 수다를 떤다. 사내 행사들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engagement를 끌어내고 있다. 모두가 '키보드 워리어'로서의 면모를 뽐내며 댓글로서 참여하면서, 자칫 무미건조할 수 있는 온라인 행사를 더욱 액티브하고 다이나믹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 연말 행사의 말미에, 지난 1년의 B사를 담아낸 4분 남짓의 영상을 시청했다. 별거 아닐 수 있는 이 영상으로 제법 많은 이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겉으로는 하하호호 여전히 즐겁고 밝은 동료들이지만, 그 밝음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과 노력들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야속한 코로나 덕에 새삼 동료들에 대한 감사와 뜨거운 연대의식을 느끼며 더욱 포근했던 연말 행사였다. 어쩌면 우리 모두 코로나가 있었기에 더 큰 협업 능력치를 얻게 된 것일지도.
언론은 늘 자극적인 소재를 보도하기 바쁘다. 코로나로 인해 기회를 엿보고 떡상한 회사들, 또는 그 반대로 정부지원금이 없으면 존속이 어려운 회사들. 내가 몸담고 있는 B사는 어떠했는가? 확실한 건 호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큰 악재도 아니었음에 감사해야겠지만, 분명 고민이 많았을 2020년이었을 것이다. 전대미문의 사태를 마주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다달이 따박따박 월급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재택 근무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러한 시국이 연봉 협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음에도 감사했다. 코로나 시국에 대한 대처 자체가 만족스러운지 여부를 떠나서 여러 대처들을 하려는 노력들에도 감사했다. 그러한 감사함 속에서 나는 커리어 패스상 세 가지 큰 변화들을 단계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먼저 내가 담당하는 파트가 확장되는 변화를 겪는다. 직접 실무를 해본 적이 없어 전문성이 없는 직무까지 매니징을 하게 된다. 해당 실무에 대한 이해도 쌓아야 하고, 그에 대한 디렉팅까지 해야 하다보니 제법 챌린징한 과제였다. 돌아보면 그 시기에 이로 인한 실질적인 야근도 많았고, 부족한 개연성으로 인한 고민도 많았다. '내가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흔쾌히 임했다. '감사함'에 대한 보답의 마음이 컸다. 조금이라도 회사에 도움이 더 되어야 할 것 같던 책임감으로... 물론 현재 그로 인해 내가 얻은 경험치와 추억들도 소중해졌지만!
4분기를 맞이하며 또 다른 변화를 겪는다. 2년 여의 시간동안 함께 했던 나의 팀장이 퇴사를 했다. 대표 직속으로 관리되었고, 덩달아 나의 책임과 권한도 커졌다. 팀장이라는 그늘 아래에서 내가 얼마나 속 편하게 일을 했는지 부끄러움을 마주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마냥 실무적인 성장감과 성취감에 달려온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 이제는 조금은 감당하기 힘든 '냉철한 조직 인사관리', '사업적인 의사결정'과 같은 '책임'을 져야 할 연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책임감이 커지니 마음이 바빠졌다. 내가 스타트업을 택한 이유가 단순히, '낮은 연차에 실질적인 실무 수행을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폭발적인 성장을 겪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제 연차가 어느 정도 찬 상태에서 그 이유가 여전히 유효한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낮은 연차에, 전사적인 레벨의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도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가?
깊은 번뇌와 고민의 끝에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올해의 마지막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비즈니스 조직에서 프로덕트 조직으로 옮기며 B사의 매출을 책임지는 PO (Product Owner) 가 되었다. 실무상 난이도도 급상승했고, 막중한 책임감으로 인한 멘탈적 스트레스도 아마 상승할 것이다. 매니징을 해야할 인력도 기존 3명에서 9명으로 3배 늘게 되었다. 아, 아무리 본인 팔자는 본인이 꼰다고 했고, 실제로 나의 팔자를 나 스스로가 수없이 꼬아 왔다만, 이번의 변화는 나 또한 장담을 못하겠다. 이번에는 나에 대한 믿음 보다도 회사의 선택을 믿어보려한다. 어련히 올바른 판단을 하여 나에게 이런 변화를 제안한 것이겠거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절실히 느끼게 된 회사에 대한 감사함이 나로 하여금 단계적으로 직무 변화를 받아들이게 만들더니, 어느새 나는 커리어패스상 너무 큰 변화를 나는 마주하게 되었다. 이것이 가져올 2021년의 성장치는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이미 2020년 내가 겪은 성장은 상당하였다.
절정대미이론 (Peak-End Theory)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은 그 경험을 하는 동안 가장 강렬했던 감각과 그 경험의 마지막 부분에서 느낀 감각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긍정 심리학의 한 이론
어쩔 수 없이 나의 성장 회고 또한 올해 가장 강렬했던 결혼으로 인한 성장과, 최근에 있었던 사내 조직 변화로 인한 성장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서른이 되며 기억력이 안 좋아지면서 더욱이 많은 기억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하나 확실한건 2019년 12월 26일의 나보다는, 2020년 12월 26일 지금의 내 모습이 더 만족스럽다는 것.
다가오는 2021년은 어떤 키워드로 한 해를 보낼지 고민해봐야겠다.
기억에 감정이 묻으면 추억이 된다고 한다.
세세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희노애락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있음이 틀림없기에
좋은 추억, 좋지 않은 추억이 가득했을 2020년을 보내려니 시원섭섭하다.
숫자 구성이 이뻐서 더욱 얄미운 '2020'.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