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이 월요일이었다면 정말 힘들었을거야
새해가 다가오니 마음이 무겁다. 연말의 몽글거림, 내적 편안함은 한해를 마무리 했다는 데에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자연스러운 크레딧과도 같았다. 주 단위 시간 개념에 비유하면 마치 금요일 저녁과 같은 마음인 것이다. 또 미진했던 부분에 대한 회고를 하다보면 무의식 중에, '내년에 더 잘하면 되지' 내지는 '내년으로 넘겨서 마무리 해봐야지' 와 같이 미래의 나에게 맡기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다보니 1월 1일이 다가오면 지난 주에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 심적 부담을 느끼는 일요일 저녁 시간의 내 모습이 되어 버린다. 마치 월요병을 느끼듯 새해병을 강하게 느끼는 나날이다.
이전 글(시간의 단위를 활용한 동기부여)에서 잘 담아냈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심적 상태가 어떠하든 - 그것이 설렘이든 걱정이든, 모두"1년"이라는 단위로 시간이 쪼개져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동기부여 감정이다. 올 연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지긋지긋한 2020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코로나 때문인지 얼른 2020 지나갔으면 좋겠다." 와 같이 코로나 이슈를 2020년과 함께 보내버리고 싶는 염원을 담은 말들이다. 또 올해 여름에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는 뜬금없이 'Year-end promotion'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이 또한 2020년을 여름에라도 끝내어 코로나를 종식시키고 싶은 바람이 담긴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어지간히들 시간 단위에 의존하며 동기부여를 자처하는 모습이다. 자체적으로 2021년 이라는 새로운 1년을 시작하려들 하니 말이다.
하루하루, 한주한주, 한달한달 알게 모르게 우리는 회고를 하고 플래닝을 한다. 와중에 월요병과 같은 스트레스 현상은, 플래닝 내용 자체가 굉장히 가시적이고 (당장 출근하여 해야 할 것들이므로), 구체적인 것이 큰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새해병의 원인은 정 반대이다. 오히려 비가시적이고, 모호하여 막막하고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이 큰 원인일 것이다. 물론 '비가시적임'과, '모호함'은 반드시 '막막함'과 '불안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대부분이 새해를 맞이하며 스스로에게 활력을 불어넣으려 하기 때문에 지나간 해보다는 훨씬 더 나은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설렘'과 '기대' 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러했다. 매년 새해를 맞이하며 부푼 마음으로 새해 다짐을 했던 나였다. 새해에 대한 그림이 비가시적이고 모호하여도, 그것들을 가시화하여 확실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올해만큼은 1월 1일이 그렇게 달갑지 않은, 새해병을 앓고 있는 걸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호르몬 변화도 영향이 있을 수 있겠다. 서른이 되면서 많은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자신감 레벨이 떨어졌다. ( 상세 내용 : 소화가 잘 안되네 ) 코로나 블루도 한 축을 담당한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어느 정도 코로나가 함께 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썩 달갑지 않다. 외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나의 인생의 재미요소 절반 정도가 없을거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는거니까.
어쩌면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개인 역량만으로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는 과제들은 이미 다 달성했기 때문일 수 있다. 단순한 시험부터 대학 입학, 대외활동,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 나름 보편적인 인생의 챕터를 무난히 클리어 해왔고 각각에 대한 자신감만큼은 확실했기에 새해가 설렜었던 것이다. 인생이 재밌는 것은 과제 달성으로 인한 만족감의 지속은 짧고, 이미 만족시킨 과제는 이제 다음 관심사가 아니게 된다. 마치 레고를 조립할 때는 재미를 느끼더라도, 만들고 나면 관심이 떨어지게 되는 것처럼. 이제 쉬운 레고는 찾지 않고, 더 어려운 레고를 찾아나서게 된다. 그런데 이제 내가 직면한 다음 챕터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불안함이 더 크고 걱정이 더 큰 것이리라.
비록 서른이지만, 인생의 한 단계 큰 도약을 꾀하여만 하는 단계를 마주하고 있다. 결혼을 하면서 그간 어렸던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인생의 '찐' 미션이 무엇인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나 혼자서는 거스를 수 없는 거시적인 경제 구조와 정부의 제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 또 커리어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7년차에 접어드는 나에게 주어지는 역할과 책임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챕터에 접어든 인생의 수많은 선배들은, 이러한 무거운 마음을 짊어지고 살고 있는걸까. 아니면 욕심을 버리고 현재의 챕터를 최종 챕터로서 받아들이는 것일까.
경제학의 가장 얄미운 법칙인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예외없이 새해에의 '설렘과 기대'에도 적용되는가보다.
너무 조바심 내지말고, 오히려 지난 날들의 무탈히 해내온 수많은 과업들을 돌아보며 그 때 그 순간순간의 만족감과 성취감을 곱씹어보자. 확실한 것은, 인생이라는 연속선 위에서 지난 챕터에서의 결과물들만큼은 다음 챕터 수행을 위한 동력원으로 기능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