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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phan Seo Mar 17. 2020

스타트업에서의 자율 (autonomy)

그것이 지속적이기 위하여 필요한 것 - 매니징 시스템



“우리 회사는 일하고 싶은 때에 자유롭게 일해요.” 많은 스타트업들이 내세우는 그들의 기업 문화 중 단연 손꼽히는 가치는 “자율(autonomy)”이다. 모두가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수동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알아서 본인의 맡은 바 업무를 원하는 방식으로 실행한다는 것인데, 자칫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그림일 수 있는 이것이 잘 실현되고 있는 기업들의 특징이 있다. 바로 목표 기반의 매니징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직원 개개인의 책임감과 성실함, 주인의식(ownership) 등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그러한 것들이 결여된 인적 구성을 가정하고서도 “자율”적인 문화를 유지할 수 있게끔 적정 수준의 매니징 프로세스를 구축해 놓는 것이다. 얼핏 들어보면 ‘모든 회사에 다 있는, 그런 프로세스 얘기하는거  아닌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으나, 엄연히 다른 이야기이다.  

상사를 통과하는 것이  목적인 매니징 프로세스는 이미 그 업무의 목적이 뒤바뀐 것이다.

먼저 큰 회사들의 경우 갖춰진 프로세스 중에 불필요한 (다소 형식적인) 프로세스들이 많고, 실상을 들여다 보면, 그 프로세스를 (통과하기) 위한 업무 수행이지 업무 본연의 목적 달성을 위한 업무 수행이 아닌 (주객이 전도된) 경우들이 많다. 결과적으로 성과에 대한 평가 자체도 이러한 프로세스들에 기반하여 객관적인 기여도를 산출하여 진행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정해진 연봉 테이블 하에서 ‘연차’에 의해 + ‘팀 성과’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크다보니, 직원 입장에서도 주객이 전도되어 주어진 보고체계 관련하여 미스가 없는 것을 더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조직이 워낙 크다보니 개개인의 기여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기가 어렵고, top-down 형식(‘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의 형태)으로 업무를 하달하고 수행시키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갖춰 놓은 프로세스”라 함은 직원들의 자율적인 업무 수행을 진작시키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주어진 투두를 상부에서 뜻하는대로 제 때에 실행하였는가를 확인하기 위함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스타트업의 경우 사업 모델을 안착시키는 것, 제품을 개발하는 것, 자금을 조달시키는 것이 사업 초반부의 가장 중요하다보니 직원 매니징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거나 또는 고민만 하고 구체적인 액션 수행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1-2년이 지난다고 하여도 (사업 모델이 어느 정도 안착하였다고 하여도) 항상 제품 라인업의 증대, 사업의 확장, 추가 투자 유치 등이 우선 순위에 놓이게 되고 매니징의 시스템화 내지는 프로세스화는 여전히 후순위에 놓이기 일수다. 물론 사업 초기에는 위의 주요 이슈들이 훨씬 중요하고, 회사의 존망을 결정짓는 부분들이다보니 그것들을 챙기는 것이 맞지만 - 자율에 기반한 효율적이면서 지속적인 업무 진행 또한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회사의 존망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선 순위도 반드시 높여나가야 한다.  

스타트업들의 업무 현장에 방문하면 (특히 사업성이 유망한 스타트업의 경우) 모두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각자가 알아서 본인의 업무를 수행하고 내부 미팅 프로세스는 최소화 한다. 마치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주변을 살필 틈없이 (각자 알아서) 전력질주를 하는 것이다. 회사가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야근의 개념도 희미하고 새벽, 주말까지 일하는 것도 일상적이다. 통상적으로 “자율” 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로 덮어놓지만 (우리는 자율적으로 일해요!) 우리 모두가 솔직해지자면 ‘방임’이 더 가까운 표현이다. 과연 서로의 업무를 매니징 (내지는 케어)하는 것을, 불필요한 참견과 불편함으로 느껴질까봐 구태여 이를 생략하는 걸까? 서로를 챙겨주고 피드백도 주고 싶지만 각자의 일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이 바쁜 것과 별개로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가끔은 좀 불안해도, ‘알아서들 잘하고 있겠지!’ 라는 행복 회로를 돌려주면서 본인의 넘쳐나는 영겁의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업 초기에 챙겨야 될 것이 정말 많고 여유가 없겠지만, 애석하게도 이러한 ‘신뢰’에 100% 의존하는 업무 체계는 굉장히 위험하다. 일단 단순하게, 조금이라도 주인의식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업무의 공백은 부지불식간에 커지고 일당백의 업무를 책임져야 될 사업 초기에 이는 큰 사업적 누수가 된다. 

좀 더 나아가, 스타트업의 특성상 대체로 사업의 비전과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보고 조인했거나, 자율적인 문화를 선호하는 직원들이 조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을 하여도 상황은 여전히 위험하다. 사업이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규모 있는 수익 모델이 지속적으로 동작하게끔 유지 보수 발전시키는 것인데, 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조화롭게 협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즉, 항상 모두가 같은 페이지에 놓여있어야 계획된 track 위에서 다함께 전력 질주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큰 회사와 달리 제한된 소규모의 리소스로, 몇 번 없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큰 한 방을 노려야 하는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개개인의 전력질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목표로 하고 있는 지점으로, 짜놓은 루트에 맞게 다함께 달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누락된 채 달리고 있는 스타트업들에서 빈번하게 문제 제기가 되는 것이 ‘필요한 업무의 누락’, ‘불필요한 업무의 수행’, ‘동일 업무의 중복 수행’ 등 리소스의 낭비이고, 이로 인해 사업 안착/확장에 시간이 배로 들게 되는 것이다.  


사족을 하나 덧붙여 본다. 목표 기반의 매니징 프로세스가 누락됨으로 인해 스타트업들이 겪게 되는 위험 중 하나를 매우 현실적으로 짚어보면 바로 주니어 직원들의 동기부여 저하이다. 스타트업들의 주된 채용 연령대는 대학생 인턴, 취업준비생, 중고신입 등 젊은 20대를 타겟으로 많이들 채용을 한다. 물론 시니어들도 채용하긴 하겠지만, 조직내 다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20대 또는 30대 초반일 것이다. 이 때 대부분의 주니어들은 실무 경험 쌓으면서 빠르게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니즈가 강하고, 그것이 스타트업 입사 이유에 반드시 꼽힌다. 그들은 ‘개인의 성장’을 기대하고 입사한 이후 초기 6개월까지는 ‘큰 도움없이 스스로 정글에서 살아남기’라는 챌린지 속에서 수차례 멘탈의 부숴짐을 겪어가며 급격한 성장을 겪고 ‘다소 힘들긴 했으나 엄청난 경험이었다!”라는 생각으로 모티베이션이 절정에 이른다. (그 전에 지쳐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다른 업계로 몸을 옮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실무를 바탕으로 본인 업무의 뎁스를 넓히거나, 이것저것 사내에서 본인이 더 해볼 수 있는 것들로 업무 범위를 넓혀간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본인의 성장 그래프의 기울기가 급격하게 완만해졌음을 깨닫고 크게 동기부여가 저하된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니어 수로 인해 나에게 피드백을 해줄 사람이 부족한데다가, 그 소수의 시니어들 마저 늘 바빠서 사무실에 부재하거나 통화 중이다. 나는 내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건지 불안하고,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인지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지금까지는 잘 해온 것 같은데, 요즘의 내가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어떤 큰 그림을 위해 오늘을 달리고 있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어 급 에너지 레벨이 급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표 기반의 매니징 프로세스를 잘 수행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매니징 프로세스 기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다음 글에서는 좋은 스타트업들이 이행하고 있는 업무 프로세스들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것을 프로세스화 하여 지속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많은 노력들을 필요로 하는지 이야기 해보려 한다. 그 많던 나의 업무들을 해당 프로세스들 '덕에' organize 하며 목표들을 달성해올 수 있었는데, 지난 2년 여의 시간을 돌이켜보며 각 프로세스들에 대한 솔직한 회고를 담아보려 한다.

Quarterly OKR 과 Weekly 3P (+ Priorities)  
    Bi-weekly all-hands meeting 과 Regular Sync-up m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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