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의 중간 관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내가 몸담고 있는 B 사에는 중간 관리자라는 직급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양질의 중간 관리자로 양성하기 위한 워크샵이 주기적으로 진행된다.
이 2가지 요소는 '리더십 학습'이라는 경험 자산을 제공하는데, 매출을 뽑기에 급급한 타 스타트업에서는 찾기 힘든, 귀중한 성장 경험치를 얻을 수 있어 이는 B사만의 매력 중 하나로 꼽힌다.
단어 자체가 직관적으로 구성되어 있듯, 중간 관리자는 중간에서 관리를 하는 직급이다. 이를 일반 대기업에 대입하여 '부장', '차장' 등으로 설명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설명은 중간 관리자의 색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본다. 아무래도 전형적인 대기업의 '부장', '차장'이 갖고 있는 색깔과는 차이가 크기 때문에..
B사(스타트업) 기준으로 설명을 하자면, 중간 관리자는 실무와 매니징을 동시에 하는 포지션으로, 적게는 2명 많게는 5-6명 정도의 인원은 관리하면서 맡은 바 직무에 대한 수행을 다 함께 진행한다. 통상 해당 그룹 단위를 '파트' 로 묶기 때문에 '파트장'의 개념에 더 가깝겠다. 직무에 따라 상이할 수 있겠으나 5-6명 보다 인원이 많아지게 되면 중간 관리자로서의 직무 수행이 어려워진다. 이는 또 다른 중간 관리자를 두어 별도의 파트로 운영되거나, 그것이 애매할 경우 소속 팀의 팀장(관리자)이 직속으로 관리해야 한다.
중간 관리자와 관리자의 차이점을 꼽아 보면, 먼저 담당 직무 내에서 '실무'의 비중이 어느 정도 되느냐 이다.
이 또한 직무에 따라 상이하겠으나, 대체적으로 중간 관리자의 실무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매니징 업무의 비중은 절반 이하라는 것이다. 이는 관리하는 인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이며, 앞서 말했듯 인원 수가 많아지면 별도 파트로 분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간 관리자가 수행하는 '실무'는 중요하다. 이와 달리 관리자의 경우 당장의 실무보다는 중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거나, 중간 관리자 및 팀원들이 수행하는 실무들에 대한 피드백과 우선 순위 조정에 업무 리소스를 대부분 할애한다. 실무 비중이 그 이상 되게 되면 오히려 전반적인 팀 운영에 차질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중간 관리자는, 매니징 역량과 실무 역량이 일정 수준 이상 모두 요구되는 직급이다.
주로 실무 레벨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도를 보이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잠재적 리더십이 확인되면 중간관리자 직급이 부여된다. 그러다보니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그들의 고민은 아래와 같다.
A. 실무와 매니징의 리소스 배분
당장의 실무에 투입되고 있는 리소스를 어느 정도 덜어내어 매니징에 활용해야 한다. 여기서 실무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들 하기 때문에 - 실무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이 그 첫 번째 원인이고, 타인에게 양도하였을 때의 불안함이 그 두 번째 원인이다. - 기존의 업무 리소스가 조정되는 양상보다는, 매니징 업무가 추가되어 과부하가 발생하는 양상이 벌어진다. 본인의 실무 욕심을 덜고, 또 팀원들에게 실무를 할애한 후 적절한 교육과 매니징을 통해 파트가 유기적으로 기동되게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B. 관리자와 팀원 사이의 온도 차이 조정
관리자는 팀원들을 직접 매니징 하지 않고, 중간 관리자를 통해 매니징 한다. 또한 실질적인 실무 운영에 가담하지 않는다. 이 때 그들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고, 그들이 제시한 방향성에 입각하여 실무를 수행하는 것은 중간 관리자와 팀원들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팀장과 팀원 사이의 오차를 조정하는 것이 사실상 중간 관리자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데, 쉽게 조정되지 않으면서도 불러일으키는 나비효과가 어마무시하기 때문에 - 잘못된 방향성으로 인해 한 분기 이상을 통째로 무의미하게 날려버릴 수도 있다. -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대체로 스타트업의 관리자들은 중간 관리자들을 신뢰하고, 특히 실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top-down 으로 제시된 방향성을 관철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중간 관리자 또한 전사적인 시각에서의 모든 부서들을 아우르는 판단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관리자들의 시각을 존중하고 경청하려 한다. 그럼에도 모든 경우에 smooth 하게 의사결정들이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기에, 주기적인 싱크업 (Sync-up) 미팅을 통해 오차들을 최소화하면 좋겠지만, 부득이 일상 속 바쁨으로 인해 놓치는 부분들이 생기거나 전사적인 긴급한 의사결정으로 여러 싱크업 단계를 건너뛰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팀장들에게는 팀원들의 실무적인 애로사항을 지속 어필하며 실무자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해주게끔 노력하고, 동시에 팀원들에게는 전사적인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며 그들의 모티베이션이 꺾이지 않게끔 노력해야 한다. 일종의 완충재 역할인 것으로, "실무 절반 + 매니징 절반"의 직무적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상황에 따라 실무 비중을 늘려 팀원들을 돕거나, 매니징 비중을 늘려 팀장을 돕는 것이다.
C. 리더십의 어려움
반장, 조장, 회장 등 학생 시절의 리더 역할 경험은 분명 그 가치가 있다. 하지만 고과에 대한 분명한 성과 평가가 존재하는 회사에서의 리더 역할은 그 범주가 확연히 다르다. '좋은게 좋은거지' 라는 마음으로 임하거나,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충실했다가는 리더 역할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팀으로서 업무적인 퍼포먼스를 내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잘 진행되지 않는 업무를 어떻게 이끌고 갈까.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에는 어떻게 딜리버리 하는게 효과적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기에는 아직 중간 관리자들의 경험이 부족하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 연차가 낮거나 나이가 어림에도 숙련된 실무적 퍼포먼스로 인해 중간 관리자가 되는 경우가 있고, 잠재적 리더십 역량을 높이 평가하여 실무적 경험이 부족한 영역으로 매니징의 범주가 확장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팀장들을 겪어 보면서 나름 좋은 리더에 대한 페르소나는 그릴 수도 있고, 직접 매니징 경험을 쌓아보면서 이를 구체화 해볼 수도 있지만 - 이러한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교육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많은 회사와, 또 그 안의 팀들이 실무와 관련된 교육이라도 있으면 다행인 현실에, 리더십에 대한 교육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다행히 B사에서는 이러한 중간 관리자들의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고 있다. 단순히 중간 관리자들끼리 모여 각 파트별 고충과 고민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팁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큰 힐링과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그저 티타임 속성의 모임의 장이었다면, 힐링과 동기부여에 그치고 각 중간관리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실질적인 해결까지 이어지지는 못하였겠지만 본 모임의 장은 오히려 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속성이 더 강하다. 수학 문제 풀이처럼 각 문제 상황별 정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어도, 여러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정답임직한 답들을 각자가 찾아나갈 수 있게 해준다. 필요에 따라 도움이 되는 영상 자료와 도서 자료를 제공받기도 한다.
본 교육 프로그램이 특히 재밌는 부분은, 다루는 여러 케이스들에 감정 이입 (또는 상황 이입)이 저절로 된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매일 매일 직면하는 상황과,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 케이스 스터디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보니 쉽게 몰입이 되는 것이다. 또한 각 케이스에서 제시되는 대응 방안이
1) 뻔한 대응책이지만 미처 나는 시행해보지 못했던 것들
2) 전혀 뻔하지 않아서 과연 이런 방식을 취해도 되는걸까 스러운 것들
3) 전혀 뻔하지 않으면서도 직관적으로 효용이 있으리라 판단되는 것들
로 나뉘면서 내가 당면한 각 케이스들에 대해 '어떤 대응책들을 적용해볼까'라는 동기부여로 이어진다.
매일매일의 어려움들에 대해 바로 적용해봄직한 실질적 대응책들을, 그러한 힘든 감정이 몰입된 상태에서 제시받게 되니 절로 에너지가 솟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케이스들에 100%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의 내용들을 주입하지 않고, 훨씬 능동적으로 '나에게 맞는 케이스'를 발라내어 관련한 내용들을 비판적으로 소화하는 노력들 -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 을 하게 되는데 - 그러한 프로세스 덕에 보다 공허하지 않은, 알찬 동기부여로 거듭나게 된다.
일전에 어린 나이에 10명 이상의 팀원들을 매니징만 하면서 허덕이던 경험은 나로 하여금 매니징 포지션에 대해 매우 강한 거부감을 갖게 만들었다. 실무에 대한 목마름으로 리더 포지션을 거부하기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메세지는 다음과 같았다.
'평생 실무자로서 일할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나중에 리더가 될 것이기 때문에 리더십에 대한 경험은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가치관 차이였을 수 있겠으나, 이제와 돌아보면 나는 그러한 리더십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실무에 대한 내공이 튼튼하여 어떠한 문제 상황에서도 실질적인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는 리더,
충분한 리더십 학습을 통해 나만의 건강한 리더십을 적정 속도로 정립해 나가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B사에서의 '중간 관리자'라는 직급과 교육제도는 나의 그간의 목마름을 원없이 채워주는 단비와 같다. (가끔 단비인지 폭풍우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관련된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 나만의 케이스 스터디북을 만들어 봐야겠다.
이러한 중간관리자 경험을 함께 쌓아가며 동고동락하는 동료들과의 추억들.. 못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