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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phan Seo Jun 12. 2023

살아있어서 감사해

#1. 타고 있던 택시 앞 바퀴가 갑자기 터져버렸다

"와이라노?! 와이라노?!"


나이 70이 넘으신 택시 기사님의 외침이 들릴 땐 이미 택시가 좌우로 부딪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기사님의 외침은, 뭔가 뜻대로 핸들이 동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같았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바로 멈출 것 같진 않았고 이 정도 부딪힘이 몇 번 더 지속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속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었기에 뒤쪽에서 오는 추돌만 없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와이프와 기사님을 진정시키며 차 뒤쪽을 돌아보았다.


"(쾅!... 끼이이이잉 쾅...!!) 윤아 괜찮아? 윤아 괜찮아? 기사님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다행히 바로 뒤쪽 차들과의 간격은 넓었고 추가 추돌 없이 택시는 우측 갓길에 멈춰섰다.


"와씨... 이게 무슨일이고.. 아이고 승객님들 괜찮습니까... 아이고..."




우측 앞 바퀴 펑크가 원인이었다. 원인을 알고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이어졌다.


부산역에서 택시를 잡을 때, 두 택시 중 하나의 택시를 우리는 골랐다. 그 택시의 우측 앞 바퀴는 몇 km 내에 펑크가 날 운명이었다. 어디서 어떤 속도로 달리다가 펑크가 날 지 그 때는 모르던 때이다.


부산역에서 해운대로 가기 위해, 광안대로 쪽을 향해 한참 달리던 참이었다. '역시 부산 택시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씽씽 달리는 화물차들 사이를 추월해가며 달리던 때였다. 나는 매우 빠른 차량에 몸을 싣고 있을 때 간혹 오싹함이 들곤 하는데, 그날도 그러했다. 바깥 풍경들마저도 제 자리에 있지 않고, 빠르게 뒤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오싹함도 잠시, 이 정도 속도면 예상 시간보다 10분은 일찍 체크인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이내 파워 J답게 숙소의 체크인을 몇 층에서 진행하면 되는지, 전자 레인지는 있는지 등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씽씽 달리던, 밤 10시 49분 부산시 우암동 부두 사진




"콰쾅! 쾅! 쾅..!!"

 

사고는 그렇게 한 순간에 일어났다.


와이프는 허리 통증을 호소했지만, 우리 둘다 신체적 고통 보다도 정신적인 충격이 더 컸다.

가장 먼저 든 생각, 그리고 여러 잡다한 생각 와중에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였다.


택시에서 내려 서로를 부둥껴 안으며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도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리던 택시는 공교롭게도 사고가 나기 직전에 빨간 신호등에 정지하게 되었다.

녹색 불로 바뀌자 좌측 커브 길로 진입하던 찰나에 펑크가 났다.

만약 그 신호등의 정지 신호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시속 100km 와 커브길, 우측 가드레일에 부딪히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전복되어 갓길로 몇 바퀴 굴러가지 않았을까?



생각은 일파만파 퍼졌지만 (가령 다른 기차 시간대에 내려왔으면 어땠을까, 택시가 아니라 버스를 탔더라면 어땠을까 등) 그것들은 어차피 우리가 제법 강한 의지를 갖고 '선택'한 영역이기에 무의미한 What if 였다. 하지만 신호등의 신호 색상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던 변수이기에,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빨간 불이 없었으면, 우리는 정말 큰일 났을 거야.. 살아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터진 우측 앞바퀴. 밤 10시 59분 용당동 사진. 허리 높이 정도까지 찌그러짐을 확인할 수 있다.
택시에서 내려 돌아본 사고 현장. 왼쪽에서 순서대로 가로등에 한번 받고, 가운데 중앙 화단에 한번 받고 끝났다.




어안이 벙벙했던 우리는 다음 택시를 잡아 호텔로 다시 향했으나, 해당 택시 기사님의 시크하면서도 친절한 안내에 따라 근처 병원 (부민 병원) 응급실에 내렸다. 로비에서 대기하는 와중에도, 바람을 쏘이러 나온 여러 환자들의 모습에 우리 모습이 투영되어 보였다. 아찔했다. 응급실 진료 비용이 얼마가 나오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제발 아무런 다친 데 없이, 무탈히 살아서 진료가 끝나길.


엑스레이를 찍고 근육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 받았다. 다른 특이 사항은 없다는 소견이다. 와이프의 허리 통증은 서울로 복귀하면 다시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우린 오늘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편안 옷으로 갈아입자, 그제서야 불현듯 공포감이 밀려왔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고, 멈춰있던 '만약에 이랬다면' 류의 아찔한 생각들이 물밀듯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날 밤은, 살아있음에 대한 기쁨과 안도감이 컸던 만큼, 그 이면에 놓인 죽음에 대한 공포감도 컸다.


삶에 미련이 이렇게나 있었던 것일까. 세상에 내려앉은 어두운 밤이 무서웠고, 텅빈 호텔 복도가 무서웠다.

순간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기도 했고, 울컥울컥 알 수 없는 공포감에 눈물이 솟구치기도 했다.


숙소에 늦게 도착하고, 체크인 늦게 하면 어떠랴.

아아 우리 둘다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있어서 참 감사하다.



다음 글 : 살아있어서 감사해 #2. 택시 기사님도 피해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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