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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Jan 01. 2017

서로가 지붕과 공간인 삶

사진 출처는 이은주

지붕과 공간이 없는 삶은 어떠할까. 최소한의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삶은 어떠할까. 나의 모든 생활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어 있는 삶. 가진 것도, 지킬 것도 많지 않은 삶은 어떠할까. 원하는 것도, 원치 않는 것도, 의지도, 책임도 없는 삶. 사실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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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지나가는 길이 집인, 지붕도 공간도 없는 할아버지의 삶은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저 매일 지나가는 길마다 기웃거리는 것일 뿐. 그러나 며칠 전부터 그의 옷가지와 가방과 담요와 늘 모자를 쓰고 있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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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에는 노숙자들이 여럿 있다. 나의 고향이었던 곳엔 길이 집인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커다란 도시를 갔을 경우에만 볼 수 있었다. 살기 좋은 나라로 전 세계에서 1위로 뽑힌 나라에도 노숙자는 있었다. 대개의 노숙자들은 동전이 든 통을 소리 내며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앉아있거나, 서서 구걸을 한다. 내가 그들에게 가지는 생각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저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들의 곁을 지나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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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집에서 나와 걸어야 하는 길에 있는 할아버지는 달랐다. 그 할아버지는 구걸을 하지 않고,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두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누워 있곤 했다. 다른 노숙자들과는 다르게 매일 지나치는 그를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다른 노숙자들과 같이 내가 보지 않으면 그만인데, 늘 그를 지나치기 전에 그에게 시선을 두고야 만다.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뭔가가 내 마음을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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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어느 날은 지나가다가 어떤 여자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네자 할아버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빠르게 그녀의 시선은 아래로 향했고, 내가 짓는 표정과 같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빠르게 그를 지나쳤다. 종종 그의 자리에는 누군가가 건넨 여러 포장 음식들이 있었고, 때로는 동전이나 지폐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그곳엔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누구의 삶도 머물지 않았다는 듯 깨끗한 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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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누군가가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은 그에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과, 삶에 대한 의욕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니. 그는 일어서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하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니 두려울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닌 지키고 싶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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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있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다. 나락에 떨어질 때에도 손을 잡아 줄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쩌면 지붕과 공간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서로가 있기 때문이라. 건네는 손과 건네는 마음이 지붕이 되고,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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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는 지붕과 공간이 있는 삶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책임져야 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무엇보다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 삶으로 돌아갔을지 모른다. 그랬기를 소망한다. 엄청난 용기를 냈을 것이다. 누군가가 그에게 지붕과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길 위의 삶에서보다 더 많이 따뜻한 날들을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그 또한 누군가에게 지붕과 공간이 되어주었을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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