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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Jan 08. 2017

신을 대하는 방식

지금 이 순간을 살아요

사진 출처: 이은주

누군가 내게 묻는다. 

종교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무교예요. 

본인을 너무 믿나 보다, 교회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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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다. 종교가 없다고 본인을 너무 믿는다니. 종교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신은 꼭 있고, 신을 믿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신을 믿는 것이 교회를 다닌다는 것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설령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를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을 믿으면 안 될 것은 또 무엇인가. 내게는 종교가 아이러니이다. 신이 있으면 있는 것이고, 나는 나로서 독립된 존재라고 생각한다. 신은 과연 인간이 자신에게 의지하고, 기도하기만을 원하셨을까. 그렇다면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까닭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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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에는 교회를 다녔기에, 예수를 믿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는 구절에 가장 끌렸던 것 같다. 나는 늘 약했고, 혼자였으며, 기댈 곳이 없었으므로.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기대라고 하니 어떻게 그 자그마한 아이가 끌리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그가 나를 사랑했다고 한 것만큼 나도 그를 사랑했다. 그의 심성이 좋았다.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 모든 이를 용서하는 마음. 모두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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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밤을 기도로 물들였다. 특히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더욱더. 내 환경은 너무도 힘들고 버거웠으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꿈꾸는 것들을 기도했다. 엄마 아빠를 만나게 해주세요.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눈을 뜨면 어김없이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그렇게 십몇 년이 지났다. 그때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지만, 여전히 신은 가장 간절히 원한 기도에는 응답을 하지 않았다. 예전이었으면 신은 없어, 라며 그저 외면했겠지만 이제는 안다. 나의 생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의 기도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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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내가 처한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대신에 나를 변화하게 했다. 내게 자존감을 형성시켰고, 용서와 이해를 깨닫게 했고,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했고,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도록 힘을 길러주었다. 


사실은 나의 변화가 모든 변화의 시작이었다. 


아마 그때 약하고, 상처 많은 나 자신이 아닌, 환경만을 바뀌게 해주었다면 나는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시련을 이기는 법도, 분노를 가라앉히는 법도, 내 삶을 내 의지대로 만드는 법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법까지도. 

사진 출처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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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또 내게 다른 방식으로 나의 삶을 응원했다. 내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했고, 나쁜 일들을 스쳐 지나가게 했으며, 술이나 담배, 폭력과 같은 해로운 것들과 멀리 있게 했다. 내 삶 자체가 운이 정말 좋다, 고 생각했던 적도 몇 번인지. 그 운은 신이 내게 준 선물이자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했던 나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과 나를 응원하는 누군가의 기도의 대한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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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신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의 삶을 응원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교다. 종교가 없다. 그런 내가 신을 대하는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교회를 가고, 뭔가를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날들에 후회를 하고, 환경이나 사람을 탓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시간을 모두 쏟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런 시간은 지나왔으므로.

나는 그저 나의 오늘을 살아간다. 밥을 먹고, 하늘과 바다를 보고, 생각을 하고, 일을 하고, 글을 쓰고, 많이 웃는다. 책을 읽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고민을 하고, 힘이 들 땐 눈물을 흘린다. 예쁜 것에 아, 예쁘다- 감탄을 하고, 행복할 땐 아-행복하다 미소 짓고, 순간순간 감사합니다,라고 속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도, 전지전능한 신을 믿지 않는다. 나는 그저 지금을 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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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살아내었다. 일어나서 밥을 챙겨 먹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봤고, 하늘과 바다를 보았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일을 했고, 커피를 마셨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었고, 누군가 챙겨준 밥을 먹었다.

만일 신이 있고, 나의 오늘을 엿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네.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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