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히 Jan 06. 2017

서로가 위로가 되지 못하는 밤

당신의 오늘밤이 안녕하기를

*

당신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당신의 축 쳐진 목소리를 이길 수가 없네요. 이럴 때면 내가 가장 쓸모없게 느껴진다는 것을 당신은 아나요. 당신의 일상과 당신의 삶의 무게를 같이 지탱해주지 못할 때, 내가 당신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때 나는 한없이 작아져요. 당신은 그런 내게 또 실망할 테고, 나도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가 나요. 나도 오늘은 친구의 전화 통화처럼 실컷 웃으면서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는데, 오늘의 당신은 그런 기분이 아니네요. 나의 서툰 개그는 당신의 기분을 풀어주기에는 한참 역부족이네요. 그만 끊을게,라고 먼저 말하는 나의 마음도 좋지가 않아요. 오늘 유난히 피곤해서 그래, 라며 변명의 말을 꼬리처럼 내뱉는 당신의 기분도 그리 썩 좋지 않을 테죠. 그래요.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서로가 서로로 남겨있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내가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한발 짝 떨어져 있는 것이 더 나을 테죠. 

-

당신의 밤이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밤이 죄책감으로 물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위로가 되지는 못했지만, 다른 무언가가 당신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래요. 따뜻한 목욕이나,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혹은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라도. 물론, 당신은 내 생각을 할 여유가 없겠지만, 난 괜찮을게요. 난 나대로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이 밤을 보낼 테죠. 아마 괜찮을 거예요. 잠을 자기 전에 괜스레 서글픈 마음에 눈물 한 방울 흘릴지도 모르겠지만 엄청난 슬픔은 아니니 내 걱정은 말아요. 나는 괜찮을 거예요. 언젠가 나도 당신에게 제대로 된 위로를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참 불공평해요. 나는 당신의 장난 섞인 말 한마디면 금방 기분이 풀리는데, 당신은 그렇지가 않으니까요. 

-

당신의 슬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우면, 당신의 우울이 얼마나 짙으면 내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걸까요. 

아니면 내가 많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요. 

-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요. 가끔은요. 

가끔은요, 기대고 싶어요. 나도. 가끔은 기댈 곳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더 서글퍼져요. 누군가의 부축임 없이 혼자서 일어서는 일은 너무도 힘이 들어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는 것이, 너무도 버거울 때. 기대고 싶은데 나보다 더 힘든 이들만 있을 때, 서글퍼져요. 한참을 주저앉을 수도 없죠. 함께 눈물 흘려주는 이도 없죠. 힘들다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게 돼요. 

-

내게 기대 울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다면 나는 정말 펑펑 울 것만 같아요. 나의 눈물을 허락하고, 이해하고, 안아주려는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이 내게는 필요해요. 왜 울어,라고 묻지 않고 그저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 난 정말 그런 사람이 필요해요. 어쩌면 그 사람에게 나의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할지도 몰라요. 사랑에 빠질지도 몰라요. 내게 그런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 내가 늘 누군가의 어깨가 되었으니.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받고 싶네요. 특히 오늘 같은 날은요.

-

오늘은 내가 당신에게, 당신도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 날이니 우리 각자의 슬픔과 우울은 각자 풀기로 해요. 어쩌면 언젠가는 내가 당신에게 위로가 되고, 당신도 내게 위로가 되는 날이 올 때도 있겠죠. 오늘은 아닌 것 같으니 우리 각자 오늘 밤을 잘 보내기로 해요. 당신의 밤이 너무 힘이 들지 않기를. 버겁다고 느끼지 않기를. 언제든지 연락해요. 서툰 위로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의 마음을 위로할 테니. 슬픔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도 있으니. 부디 당신의 오늘 밤이 안녕하기를. 편안하기를.

작가의 이전글 발끝의 당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