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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Oct 07. 2017

20171003 서툰일기

베를린 일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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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작가님의 ‘베를린 일기’를 다 읽고 나니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이틀 동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낄낄대며 봤다. 어쩌면 나와 개그코드가 맞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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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석 연휴 4일째로 손님이 없다. 손님이 없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건만, 기분이 복잡 미묘하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데, 손님이 없으니 걱정이 슬그머니 얼굴을 내민다.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한가한 매장이 가장 좋은 듯한데, 이제껏 살아보니 그게 가장 어려운 것인 줄 조금은 알겠다. 뭐, 손님이 없으니 일단 일기라도 써야 할까 싶어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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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의 지속성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나는 회사에 들어가기도 싫고(스펙이나 학력조차 없어 들어갈 수 있을지 조차 모르겠다), 먹고살아야 하고, 글을 꾸준히 쓰려면 내겐 책방의 지속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하기 위해서 말이다. 문을 연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공간의 지속성을 생각한다. 지금 연휴 기간으로 손님이 없으니 이런저런 생각만 계속하고 있다. 생각은 많다. 모임을 만들고, 파티를 열고(응?), 이벤트를 생각하고, 책방 블로그도 꾸준히 할 생각이다. 얼른 행동으로 옮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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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휴에 손님은 가뭄 속 빗방울처럼 찾아오니 그 손님이 정말 반갑고, 감사하다. 오늘은 춘천에 여행을 왔다가 친히 이곳까지 걸어와 방문하여 책과 음료까지 사가는 손님이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말 한번 붙이는 것과 즐거운 여행 되라고 글씨를 써주는 것뿐. 부디 그녀의 여행이 즐겁기를, 연휴가 따뜻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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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드디어 쉰다. 야호. 가오픈 20일부터 하루도 쉬지 않았으니 약 2주 만의 휴무다. 너무 좋다. 그래서 일단, 오늘 밤부터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마침 추석 할인으로 둘이 해서 스위트박스가 12000원! 오랜만에 데이트고 영화다! 내일도 또 영화 보러 갈 것이다! 신난다!! 내일은 짝꿍 생일인데, 내가 더 신난 것 같다! 미식가 짝꿍(사실 오래된 집이면 다 좋아하는)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야지! 갑자기 너무 신나진다. 근래 손님이 없어 걱정했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일단 이틀 동안 신나게 놀고, 푹 쉬고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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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너무 없으니 졸리다. 9시에 마감하는데 1시간 20분이나 남았다. 오늘은 이 주 간의 판매 수익 중 역대 최저이다. 연휴가 끝나고 난 뒤에는 다시 괜찮아지겠지, 위안을 한다. 졸리다. 재즈를 들으니 더 졸리다. 검정치마의 노래가 듣고 싶지만, 짝꿍이 재즈를 고수한다. 흥. 다음엔 내가 듣고 싶은 노래로만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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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이 내가 추천한 책을 처음부터 잘 읽고 있다(짝꿍은 어떤 책이라도 아무 페이지를 펼치고 읽는다). 기분이 좋다. 짝꿍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내가 추천한 책을 좋아하면 좋겠다. 사실 책을 추천할 때엔 엄청난 고뇌가 따른다. 그 짧은 사이에 내 뇌는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내가 추천한 책이 그 사람에게는 별로면 어떡하지, 가 걱정인 것이다. 내가 얼른 책을 많이 읽어보고, 큐레이션과 추천의 능력이 높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연휴 내내 새로운 책을 읽어야지. 내겐 책은 정말 즐거움이다. 책을 고르는 일도, 읽는 일도(심지어 잘 읽히지 않는 책을 꾸역 구역 읽는 것도), 다 읽고 난 후의 여운도 내게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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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는 90일 동안의 베를린 생활이 잘 녹아져있는 일기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낄낄대면서 볼 수 있는 책이다. 음울하고, 우울한 상황조차 유머로 만든다. 정말 엄청나게 부러운 재능이다. 덕분에 베를린의 대한 환상이 생겼다. 아름답고 친절한 곳이 아닌, 우울하고, 춥고, 외롭고, 뜨거운 물도 잘 나오지 않고, 와이파이도 잘 되지 않는 베를린을 느끼고 싶어졌다. 만약 나중에 베를린을 가고, 그런 상황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낄낄, 나도 최민석 작가님이 느꼈던 베를린을 느끼고 있네.’하고 즐길 것만 같다. 어쨌든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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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닫을 시간이 50분 남았다. 아무래도 오늘도 조기 퇴근을 할 것만 같다. 손님이 없다. 힝. 그래도 매일 책은 팔린다. 책 팔리는 것이 가장 좋다. 오늘은 책 4권이 팔렸다. 딱 열 권씩만 팔려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이제 마감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가야겠다. 가을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고요한 책방이다. 책방을 연지 12일째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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