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짐.
20171101 pm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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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방일기.
사실 그전에도 책방일기를 가끔씩 썼지만, 내 성에 차지 않아 올리지를 못했다. 대부분의 글들이 쓰다 만 것들이라서. 이 일기도 과연 끝을 낼 수 있을지. 아니면 내 컴퓨터 폴더에 그대로 잠들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끝을 내기 전까지는. 아마 문을 닫기 전인 오후 9시까지 손님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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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을 끝내고 집에 가서 쓰거나, 쉬는 날(쉬는 날이 생겼다! 야호!)에 책방일기를 쓰면 될 일이지만, 고백하겠다. 나는 게으르다. 써놓고 나니 부끄러워지지만, 어쩔 수 없다. 게으르다. 집에 가면 일 생각을 하지 않고 싶어 한다. 퇴근을 하면 늦은 시간에 밥을 먹거나, 누워서 핸드폰만 만지거나, 아니면 들고 간 책을 겨우 읽는 일이 대부분이다. 매일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책방을 준비한 8월부터는 다이어리를 들춰보지도 않았다. 대신에 책방에 두고 쓰는 달력과 스케줄러에 to-do 리스트만 열심히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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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이 게으른 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은 게으르면서도 욕심이 많은 것이다. 하고 싶은 것들은 많으면서, 벌려놓은 일들은 많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정말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러나 매일 달력을 펼치고, 리스트만 적기 바쁘다. 12월에 우리 책방에서 공연하는 공연 포스터도 만들기로 했고, 책방일기도 꾸준히 올려야 하고, 손님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끔 책꼬리와 홍보도 해야 하는데, 머릿속으로만 분주하다. 모임도 빨리 만들어서 저녁 시간을 재밌게 보내고 싶고, 손님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역시 뭉그적 뭉그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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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변명을 하자면 매일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출근하면 12시 전까지 책 주문과 bar 세팅, 컵홀더에 문구 적기, 책방 청소를 한다. 오후 4시까지는 손님들을 응대하기 바쁘다. 그러다 보면 어언 저녁시간. 6시가 되면 손님이 없기 때문에 한 시간 동안은 화선지에 글씨 연습을 한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도 몇 페이지 읽고, 손님이 오면 응대하고, 마감시간이 되어 마감을 한다. 또 틈틈이 플리 마켓 준비도 하고, 새로운 위스키 모임 준비도 하고, 독립 출판물 작가님들과 이메일로 연락도 하고, 책 위치도 주기적으로 바꿔주고, 정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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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그렇지만 바쁜 것이 좋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는 것도, 우리의 내일을 고민하는 것도. 모두 다 우리 책방을 찾는 손님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얼마 전에 용윤선님의 ‘13월에 만나요’를 읽었는데, 마음에 와닿은 글이 있었다.
“삼 년 만이시죠?”
“…….”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두 번째 오시는 손님은 제게 특별해요.”
“예. 말씀하세요.”
“다음에 또 찾아주세요.”
숙소 주인과 나는 크게 웃었다.
“예. 또 와야죠. 또 오고 싶을 것 같아요.”
“방 책상 서랍에 방명록이 있어요. 두 번째 오셨으니 잘 아시겠지만…….
두 번째 오시는 손님,에 대해서 한동안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우리 책방에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그 이상 오신 손님들의 얼굴을 한 분, 한 분 떠올렸다. 그 수가 꽤 되었다. 아직 연 지 얼마밖에 되지 않은 책방이지만 감사하게도 그 수가 적지 않았다. 우리 책방이 시청과 가까이에 있어 시청 분들이 자주 오기도 하고, 이 동네에서 일하시는 분들, 이 근처에 사는 동네 사람들도 자주 들른다. 집도, 학교도, 이곳과 멀지만 한 번 오고 너무 좋다고 매번 다른 친구와 함께 오는 분도 있다. 일요일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일요일만 오는 손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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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오시는 손님은 그래서 더 반갑다. 한 번 더 찾아와주신 그 마음이 정말 감사하다. 저마다 우리 공간을 다시 찾아와주시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모두 좋아서 찾아와주셨다고 믿고 싶다. 작은 공간이고, 많이 부족하고, 아직 문을 연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힘이 나고,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 정말 책방을 하기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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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 문을 연지, 40일쯤 되었다. 한 달이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셔서 걱정했던 것만큼 운영하는데 큰 걱정은 없다. 감사한 일이다. 기쁜 일들도 많다. 내 글씨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기쁘다. 한 번 봤던 손님을 두 번, 세 번 마주하는 것도 정말 기쁜 일이다. 내가 고른 책들을 내 손을 거쳤다가 다른 이에게 건네주는 일은 세상 가장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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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잘해야겠다. 더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큰 만큼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찾아오시는 발길이 아쉬움이 되지 않도록. 오시는 손님들이 더 이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그리하여 오래 이 공간을 유지하여, 몇 년이 지나도 손님과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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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늘의 책방일기는 반성과 결심으로 끝맺는다.
다행이다. 오늘의 책방일기는 아마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블로그 글을 봤다고 하고, 이웃 신청을 했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이 간혹 있다. 사실 조금 쑥스럽다. 능숙한 글이 아니라서, 재미난 글이 아니라서.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함이니까. 빛나는 순간들을 이렇게나마 잊지 않기 위함이니까. 서툰 날들을 기록하기 위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