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먼 이야기일 줄 알았던 결혼, 출산이 이제는 가까운 친구들의 ‘찐’ 삶이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혼인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덧 절반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고, 몇 명은 벌써 아이 엄마가 됐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산다. 막연하게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달라진 우리의 삶이 낯설고 어색하다.
올해 8월이면 절친 P의 아들 J의 돌잔치가 열린다. 태어난 지 100일 남짓 됐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J를 처음 안았을 때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J의 묵직함이 느껴지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적잖이 당황했다.
갓난아기를 안아본 게 처음이라 그랬을까. 그냥 그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정확히 왜 눈물이 그렇게 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P의 임신 과정을 다 지켜봐 와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J가 '호두'(태명)였을 때부터 이모가 된다는 생각에 엄청 들뜨고 설렜다.
나는 P를 만날 때마다 P의 불룩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호두야, 호두야 이모가 기다리고 있어”, “호두야 이모가 많이 보고 싶어”, “호두야 이모가 태어나면 정말 잘해줄게”, “호두야 사랑해”라고 말했다.
평소 나보다는 말수가 적고 다소 무뚝뚝한 P는 그런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아니, 무슨 너는 엄마인 나보다 호두한테 더 말을 많이 거냐?”라고 말하곤 했다.
P와 함께 있는 친구들 단톡방 이름에도 '+호두'를 추가해서 항상 호두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고도 했다. (단톡방에 호두 이름을 추가하자 신기하게도 바른말 고운 말을 쓰게 됐다는 TMI. P의 태교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욕쟁이'인 나에게는 엄청난 노력이다.)
우리는 P와 함께 태교 우정 여행도 다녀왔다. P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베트남으로 훌쩍 떠났다. 그 여행에서 나는 명예 남편 역할을 자처했고, P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예비 아빠(?) 역할을 잘 수행하려고 애썼다.
태교 여행의 여파인지 나는 J를 보면 요즘도 울컥한다. 최근에도 영상 통화를 하다가 안 본 사이 훌쩍 커버린 J를 보곤 기특하고, 막 갑자기 벅차올라서 눈물이 났다. 처음 J를 안았을 때 이후 내가 또 이렇게 울컥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랜선 이모'인 나도 이렇게 벅차오르는데, 엄마인 P의 마음은 어떨까. 아무리 상상하려고 해도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비혼인 나는 아마 평생 느끼지 못할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몸집이 한참 작은 P가 요즘은 마동석같이 커 보인다. 어릴 때 상상했던 '찐' 어른 같다. P는 요즘 어떤 세계에 살고 있을까. 나는 아직 P와 함께 학교 복도에서 뛰어다니고 장난쳤던 때에 머물러 있는데, P는 훌쩍 다른 세계로 떠나 버린 기분이 든다.
올해 J에 이어서 또 한 명의 조카가 생긴다. 올해 가을, 절친 S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S의 딸 '쵸파'(태명)를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쵸파'를 처음 만날 때도 눈물이 확 터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름 경력직(?) 이모라서 좀 더 씩씩하고 능숙하게 '쵸파'를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P와 S의 또 다른 세계가 열리면서 나에게도 또 다른 문이 열렸다. '이모라는 세계.' 친구들 덕분에 나에게도 펼쳐진 새로운 세계. 요즘 그 세계가 제일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