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교실에는 우리 반만을 위한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인 반의 특권이랄까. K 선생님의 취향이 반영된 책들과 고등학생을 위한 필독서 같은 것들이 책장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 책장에서 내 눈에 띈 책은 표지가 검붉은 책이었다. 온다 리쿠 작가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 그 책이 시작이었다.
'청춘 미스터리의 대가' 온다 리쿠 작가에게 푹 빠지게 된 나는 '밤의 피크닉', '보리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황혼녘 백합의 뼈' 등을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
그 이후 나는 일명 '온다 리쿠 병'을 심하게 앓았고, 학교에서 글을 써야 하는 숙제를 내주면, 온다 리쿠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서 글을 쓰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글을 본 선생님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싶다. 다행히 책장의 주인 K 선생님은 서툰 나의 글을 좋아해 주셨다. 생활기록부에 ‘글쓰기에 소질이 있음’이라고 써주셨으니까. (최근에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를 열람하고 새삼 알게 됐다.)
어쩌면 K 선생님 덕분에 지금 내가 밥벌이를 하면서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다 보니 진짜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지게 됐으니 말이다.
K 선생님은 그 책장이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아직까지도 그 영향이 내 삶에 계속되고 있는지 아마 모를 거다.
“선생님, 어떻게 그런 책장을 만들어주실 생각을 하셨어요?”
언젠가 K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다.
아무튼, K 선생님이 나에게 선물한 온다 리쿠 작가책 영향으로 일본 추리 소설에도 손을 뻗었다. 그때 읽었던 일본 소설 중에서 30대가 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책들이 몇 권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13 계단',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붉은 손가락' 등등등. 자율학습시간에 책을 읽다가 온몸에 소름이 끼쳐서 혼자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모른다.
책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뭔지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마치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에 나오는 무아(경지)의 존에 있는 사람처럼 빨려 들어갔으니.
그런 느낌이 좋아서 자꾸만 추리 소설을 찾아 읽었던 게 아닐까. 학업에 지쳤을 때 쉽고 빠르게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일본 소설은 꾸준히 좋아했지만 사실 추리 소설을 잘 읽지 않았다. 지금도 추리 소설은 잘 안 끌린다. 아마 그때 추리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에너지들을 다 써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더 겁쟁이가 되어서 그런 걸 지도. 살인, 피, 미스터리, 복수…그런 것들을 몸이 거부한다.
젊음을 만끽하던 대학생 때 읽은 책들은 말랑말랑하고 달큼하다. 공지영,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이치카와 다쿠지의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호텔 선인장' 등.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문체들을 좋아하게 됐고, '사랑'과 '운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지금의 감성들은 이런 책들과 그 당시 들었던 인디 음악들이 만들어준 게 아닐까 간혹 생각하곤 한다.
20대 중반에는 취업 준비를 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소설을 더 이상 읽지 않게 됐다.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책을 보는 시간들이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삶이 퍽퍽했다. 그래도 간간히 책을 읽긴 했는데 막 몰입해서 보지 않아도 되는, 하지만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들 위주로 읽었다.
그러다 다시 책을 '선택'과 '집중'해서 봤던 시기는 20대 후반 때다.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 집회를 직접 목도한 이후부터다.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득했다. 말하고 싶은 게 많은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감이 몰려왔을 때 몸과 마음이 원하는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이민경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김진아의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등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K 선생님만큼이나 독서에 나를 빠져들게 만든 K작가가 있다. 바로 김하나 작가다.
김하나가 작가가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했을 당시 추천했던 책들의 영향으로 책을 다시 구매하고, 모으고, 읽기 시작했다.
특히, '아무튼' 시리즈를 소개받고 에세이에 푹 빠졌다. '아무튼' 시리즈를 시작으로 나만의 책장이 조금씩 완성되기 시작했다.
김하나 작가와 그의 동반자인 황선우 작가의 '여자 둘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는 온다 리쿠 작가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 만큼 나의 책 세계에 파급력 있는 책이 됐다.
김하나 작가와 황선우 작가를 팔로잉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된 에세이스트는 김혼비 작가. '아무튼' 시리즈 중 '아무튼, 술'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중 한 명이다.
김혼비 작가의 '우이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체육 세포'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5년 차 축구인으로 활동 중이다.
김혼비 작가, 황선우 작가가 함께 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최근 읽은 에세이 중 단연 최고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합작은 언제나 옳다.(김하나 작가, 황선우 작가, 김혼비 작가를 한 자리에서 만났던 2023년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북토 크는 그 해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에세이를 마구마구 읽었다. 그 시기에 재밌게 읽었던 에세이는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 그리고 김다혜의 '출근길의 주문'이다.
그중 '어린이라는 세계'는 누군가가 나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제일 많이 추천하는 에세이다. 이 책은 나에게 또 다른 문을 열게 해 줬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도 그런 문을 활짝 열어줄 거라 믿는다.
에세이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행동력 부스터 같은. 숨어있는 행동력이 두려움과 귀찮음을 뚫고 나와 요동치게 만든다.
김혼비 작가의 '우이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가 나를 축구의 세계로 이끌었다면, '어린이라는 세계'는 갇혀있던 나의 비좁고 편협한 시선들을 확 트이게 한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어린이들에게 절대 하지 않는 표현과 행동들이 생겼다.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더 옳은 방향으로 살고 싶게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여성 작가들의 SF 소설에 미쳐있었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시작으로 '목소리를 드릴게요', '지구에서 한아뿐', '피프티 피플', '시선으로부터',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을 미친 듯이 읽었다.
그리고 대망의 한강 작가를 만났다.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모두가 들썩였다. 한강 작가의 책을 무성한 소문으로만 들었던 나는 그 흐름에 탑승해 다시 소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한강 작가의 '흰'을 시작으로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를 연달아 읽었다.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는 오랜만에 무아 존에 빨려 들어갔다.
그때그때마다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책이 있다. '왜 이때 이 책에 빠졌을까?'라고 생각해 보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몸과 마음이 그 책이 분명히 필요로 했던 것 같다.
그 책이 하필 그 시기에 나에게 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손이 닿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끌리는 대로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조금은 선명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