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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쟁탈전

난 꼭 먹고 말겠어

by 서울길

지하철 선릉역 근처에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한 순댓국집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하는 사무실이 선릉 근처에 있다고 소개하면 꽤 높은 확률로 이 순댓국집 이름도 같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곳, 유명한 만큼 맛있는 식당인 것은 잘 알지만 한번 그 식당에 가려고 하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왜냐면 식사하기까지 대기가 엄청난 곳이라 점심시간 훨씬 전에 빨리 가서 대기하던지 아니면 오후 늦점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가야 마음 편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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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색깔조차도 아름다운 순댓국 한상차림을 받기 위해서 거래처 손님들과 열심히 길을 나선다. 같이 가는 사람에게는 빨리 가야 되니까 국밥집 근처에서 10시 30분경 만나자고 한다. 그럼 처음 이곳을 오는 대부분의 거래처 사람들 반응이 이렇다.


거래처손님 : 점심을 너무 일찍 드시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이내 식당 앞에 다다르면 그 이유를 바로 알게 된다. 매일 팝업 이벤트를 연상케 하는 수많은 인파가 겹치고 겹쳐서 파도를 이루고 대기 순번은 A4 바닥을 순식간에 넘겨버린다. 보통의 점심시간의 대기를 생각하고 찾아온 첫 손님들은 상당한 컬처쇼크를 맛보게 된다. 물론 유명한 맛집들이 이렇게 대기가 길게 늘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있긴 하지만 이렇게 군집까지 이뤄져서 매일 오픈할 때마다 매번 장사진을 치는 식당은 정말 몇 안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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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순번에 성과 식사 인원수를 적고 무조건 기다린다


워낙 명성이 자자하니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지만 한편으로 오기가 생겨서 대기판에 본인의 성 (姓)과 대기인원수를 적고 기다리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불어난 대기 인원으로 인해 식당 앞은 식사시간만 되면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인구 과밀 지역이 되어버린다.


순댓국손님 : 이 사람들 봐봐 이거 계속 이런다. 사장님 이 사람들 제대로 적지도 않고 들어가려고 해요!!


어느 날인가 순댓국을 먹으려고 기다리는 와중에 한바탕 소동이 펼쳐진다. 어떤 손님들이 대기판에 자기 성을 적어놓고 나타나지 않자 그 순간을 이용해서 또 다른 손님들이 오래 대기하지 않고 먼저 식사를 하려는 얌체짓을 했다가 걸린 것이다. 가게 직원들도 대기자들이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진실을 알 수가 없고 오래 대기했던 사람들만 얌체족들한테 언성을 높인다. 결국 여론에 못 이긴 얌체들은 조용히 자리를 피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겨우 1.1만, 1.3만짜리 순댓국 먼저 먹겠다고 얌체짓을 해서 저 소란을 피웠나 싶기도 하는데 정말 웃음밖에 안 나온다. 한참을 속으로 웃다가 대기판을 봤는데 대기 인원이 도통 줄지를 않는다. 날씨라도 좋으면 다행인데 덥거나 춥거나 비까지 내리는 악천후를 만나면 인내심이 사라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가게직원 : 김 2! , 오 4! , 정 3! , 서 4! , 최 1! , 이 2! , 임 5!


순번이 되면 직원이 문을 열고 나와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성과 숫자를 2~3회 반복한다. 그 타이밍에 제대로 응답 못하면 순서는 지나간다. 설마 기회가 날아갈까 본인의 성과 숫자가 불리면 다급히 "네" , "여기요" 하며 마치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 마냥 기뻐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오랜 기다림 끝에 호명되면 묘한 승리감에 휩싸인다고나 할까? 고진감래의 축포를 터트리며 순댓국집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이때는 뭔가 내가 해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이 온몸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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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먹어야지 하면서도 오랜 대기에 대한 보상심리 차원에서 특대 사이즈와 함께 토종순대 1인분을 추가로 시킨다. 대부분 국밥과 순대를 시키면 순대가 먼저 나온다. 국밥에 담기기 전 순정 상태의 순대를 먹으니 역시 수제 순대의 감칠맛과 풍부한 맛이 침샘의 도발 버튼을 누른다. 곧이어 나온 순댓국은 부추와 들깨가루를 부어서 더 입맛 돋우게 데코레이션 한 뒤 밥을 붓던지 따로국밥을 하던지 아무튼 열심히 뚝배기를 향해 돌진한다. 국밥과 순대를 다 비우고 나서 입맛을 다시며 메뉴판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나중에 저녁에 와서 모둠수육하고 오소리감투도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실제 실천한 적은 없다.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다시 또 일하러 가야 한다. 사투를 그렇게 펼쳤는데 또 싸우러 가야 한다. 그래도 아까 전 고생 끝에 구수한 순댓국을 먹었듯 열심히 발버둥 치면 또 뭔가 보람찬 결과가 나올거라 생각한다. 순댓국 한 그릇에 온갖 희로애락을 담아냈던 어느 점심시간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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