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아싸

[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7

by 서울길

"친언니가 여기에 왔었다고? 무슨 말했어?"


학교 앞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유경언니는 연신 눈을 깜빡이며 나에게 물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언니는 한숨을 푹 쉬고 뒷 좌석 깊숙이 몸을 실으며 아까 전에 행사장에서 대신 받아온 경품을 내 무릎 사이에 끼워 넣어주었다.


"나도 사실 말할 게 있는데 너네 집에 대해서 어떻게 하다가 조금 들었어 너 본가가 좀 빡셌다고...... 근데 그런 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면 안 돼 알았지?"


유경은 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조금 빡셌다니 많이 순화해서 말해준 것이다. 다시금 나의 어릴 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고향에서 느꼈던 벙어리집 자식이라는 천대와 그런 말이 나올수록 더 거칠어지는 아빠의 푸닥거리는 끊기가 불가능한 실타래와도 같았고 몇 년 만에 보았던 언니는 그 과거를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타보는 서울 택시, 한강을 넘나드는 다리 위에서 보는 대도시의 불빛이 아른거린다. 이 시간 내가 살던 곳에는 어둠과 적막만이 흘렀는데 서울은 이 시간에도 차도 많고 불빛이 반짝거리다니, 청소년을 갓 벗어난 스무 살 나의 서울 살이에 대한 감정은 이제까지 평범한 타인들이 누리지 못한 것을 늦게나마 접한다는 열등의식과 보상심리가 동시에 얽혀있었다.


마침 언니가 건네준 명함이 다시 생각나서 명함을 꺼내보았다. '게임 어플 제작'이라는 이름, 하지만 업체 주소와 전화 연락처는 없었고 메일 주소와 인스타그램 주소만 남겨져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보니 비공개 계정이었다. 메일로 아까 명함 받았던 선주라고 하고 부모님 포함 모두가 언니를 찾고 있으니 답장을 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메일은 나중에 시간이 꽤 지났어도 읽음 표시조차 뜨지 않았다.


그 와중 2학기 기말고사는 다가왔고 좌충우돌 1학년 생활이 끝나갈 무렵 나의 과거는 같은 과 학생들 사이에서도 꽤 알려지게 되었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나는 학과의 선배님과 동기들한테 동정 어린 시선과 함께 약간의 특혜도 받는 그런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고향에서 대놓고 받던 냉대와 멸시에 비해서는 확실히 세련되게 차별을 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못된 아이들 조차 나를 여자 찐따라고 뒤에서 속삭일 뿐 면전에서 입방아를 찍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 같은 과 애가 너 어떤 애냐고 물어보더라? 갑자기 정상인 맞냐고 훅 들어와서 어이없는 거 있지. 걔 나하고 친한 것도 아닌데 좀 짜증 나더라. 그때 교양시간 때 어디까지 이야기했어?"


기말고사가 시작될 무렵, 기말고사 무사통과를 기원하며 조촐히 차린 치맥 자리에서 유경이가 나에게 물어봤다. 유경이 다 마신 맥주캔을 짜부시키며 말했다.


"선주, 그런 말은 진짜 하면 안 돼. 나 재수 학원 애들 잘 안 만나거든, 왠 줄 알지? 거기선 대학교 어디 갔냐고 호구 조사 다 하면서 대놓고 줄 세우고 꼽준다니까. 그리고 더 웃긴 게 뭔지 알아? 거기서 또 실패하거나 스트레스받아서 멘탈 털리면 그걸로도 뒤에서 씹는다고. 세상이 원래 그래."


유경 언니는 대치동에서 재수 생활을 했었다. 나는 그 동네를 동경했지만 거기는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포켓몬 공 굴리듯이 좋은 차에 애들을 태우고 이 학원 저 학원 돌리면서 강화를 해야만 탈출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동강에서 잠깐씩 보이던 현장 수강생들은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유명한 대학 간판을 달고 대치동을 벗어나야만 했던 것이다. 현역 때는 SKY도 노려봤던 유경언니는 인서울 중상위급 대학교에 온 것조차도 약간의 열등감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더 좋은 대학을 간 친구들을 보면 은근히 꿀린다고나 할까. 게다가 유경이의 친오빠는 의대를 가려다가 실패하고 공대로 진학하였다. 유경이와 유경이 오빠는 서로 볼 때마다 성인으로서의 첫 스타트를 좀 실패했다고 자조한다고 한다. 사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공부밖에 모르는 범생이인 유경의 오빠와 다르게 유경은 본인의 카타르시스를 잘 분출하고 다닌다. 필터를 씌워서 본인을 숨긴 다음 인스타에서 과감하게 포즈를 취하며 협찬과 함께 남자들로부터 DM도 받으며 자존감을 채우기도 하고 마라탕 먹는 걸 올리면서 맵찔이라고 고백하는 것도 잘한다. 처음 유경이와 친해지기 전에는 같은 방에 살면서도 DM으로 소통했으니 유경이에게 있어서 인스타는 그녀의 메타버스와도 같다. 이렇게 다른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실컷 풀기 때문에 학교생활은 무미건조하게 조용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학부생 채용 과정에서 교내 평판도 조회한대나, 치킨을 다 먹을 때 즈음 맥주캔 몇 개를 들이킨 유경 언니는 약간 취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알고 있는 인플루언서 몇몇 애들도 실제 보면 조용하기만 한데 인스타에서는 완전 여포야. 선주도 다른 데서 풀어. 학교에서 이러지 말고. 나랑 체험단이나 같이 다니자."


말이 끝나자마자 유경은 그대로 침대로 가서 입고 있던 후리스와 추리닝 바지를 훌훌 벗더니 쓰러져 잔다. 이불을 덮어주려고 다가가서 보니 언니가 입은 속옷이 꽤 섹시하다. 본인의 철학을 온몸으로 가르쳐준 유경 언니에게 감사해하며 나도 옆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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