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9
" 15번부터 20번까지 지원자님들 면접장으로 들어오세요. 대기자님들은 면접 끝나신 분들 나가는 통행로로 절대 가시면 안 됩니다. "
나는 지금 은행에서 모집하는 대학생 인턴 채용 면접장에 와 있다. 간혹 큰 도시에 가면 봤던 은행이었는데 그 은행에서 겨울 방학기간 중에 모집한 대학생 인턴 채용이다. 방학기간에만 진행하는 단기 인턴이었음에도 취업난에 스펙을 쌓고 싶은 학생들이 많이 지원해서 경쟁률이 심하다고 들었다. 처음 에타에 공고가 떴을 때도 망설이며 지원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서류에서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해서 매우 당황했다. 신입생 OT에서도 자기 소개하다가 주저앉을 뻔했는데 면접을 보러 가야 하다니 아득했고 유경언니에게 면접을 대신 가서 보고 일도 하라고 하자 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등짝 스매싱을 했다.
"공무원 시험 필기 합격해도 마지막에 면접 본다. 나중에 취업 어떻게 하려고?"
유경은 내 손을 잡고 강남역에 있는 여성 면접용 옷을 파는 곳으로 향했다. 단정하게 정돈한 나의 모습을 보며 유경은 예쁘다며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찍어댔고 언니도 자기는 승무원이 될 거라며 면접용 정장을 입고서 서로 내가 잘났다고 우기고 있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살짝 웃음 짓던 그때, 나의 면접 번호를 부르며 면접장에 들어오라고 하였고 나는 갑자기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면접장에 들어갔다. 다섯 명이 한 조가 된 곳에서 하필 가운데 자리 잡게 되었다.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41번 지원자 자기소개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봄날의 햇살을 담은 미소로 찾아주신 고객님 들게 항상 최고의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서 지원한 41번 이진아입니다. 저는 XX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고 대학교내 금융 투자 동아리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미국에서 약 6년간의 거주 경험이 있어서 다양한 사람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어학능력과 사회성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본인의 가장 큰 강점은 XX투자에 재직 중이신 아버지와 전통 한복가게를 운영하시는 어머니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아서 금융권 고객 서비스 응대에 자신이 있다는 점입니다. 감사합니다."
맨 처음 소개한 지원자의 멘트를 듣자마자 기가 죽었다. 스펙과 배경 그리고 말솜씨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아빠가 평소에 말버릇 처럼 하던 '조졌네'가 절로 생각났다. 그런데 갑자기 가운데 계신 면접관이 씩 하고 웃으며 대답하셨다.
"지원자님 너무 잘 들었어요. 근데 아직 본인 강점을 이야기하라고는 안 했는데요?"
41번 지원자는 한방 맞았는지 네..... 그.... 저...... 를 연발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힘들게 준비한 42번이 지나가고 나의 차례가 왔다. 머리 뚜껑이 살살 쑤시는 느낌이 났지만 일단 심호흡하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43번 지원자 최선주입니다. 저는 XX 대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우선 죄송합니다. 앞선 지원자 분들에 비해서 자기소개를 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어릴 적에 가끔씩 방문했던 이 은행 지점에서 매우 좋은 기억들이 있었고 친절하고 훌륭한 직원들이 많아서 저도 그러한 모습을 닮아보고 싶어서 지원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지원자들의 소개가 끝나고 각 지원자별 질의응답을 하였는데 맨 끝에 면접관님이 나에게 물었다.
"선주 씨 거주지에는 저희 은행 지점이 없는데 좀 멀리 나와서 저희 지점을 방문하셨나 보네요. 어떤 좋은 경험이 있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질문을 받는 순간 고민을 하였다. 나의 아픈 기억은 최대한 숨기라고 했는데....... 하지만 말하기로 하였다. 면접스터디에서 배운 것 중에 제일 기억나는 건 자신한테 솔직하라는 것이었다. 그 동기로 지원했는데 말을 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거 같았다.
"저의 어머니는 청각장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점에서는 어머니가 방문할 때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수어를 하실 수 있는 직원이 계속 저희 어머니를 은행 서비스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챙겨주셨습니다. 저도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성심성의껏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인턴 모집 공고를 보게 되어 지원한 것입니다."
"그럼 혹시 선주 씨도 수어를 하실 수가 있나요?"
"네 한국어 수어를 할 수 있고 그걸 통해서 어머니와 자세한 대화를 할 때 사용합니다."
"아주 훌륭한 재능인데 지원서에는 안 넣으셨네요. 알겠습니다."
가운데 계신 면접관님이 내 지원서로 보이는 종이에 무엇인가를 볼펜으로 적어놓으셨다. 바로 옆에 44번 지원자가 한숨을 쉬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 이렇게 다 털어놓았음에도 두통이 심해지지는 않았다. 나중에 나온 공통 질문 중에 혹시 이 은행에 입사했는데 만약에 본사에서 지방 지점으로 발령 보내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도 막힘없이 갈 수 있다고 대답을 하였고 그렇게 회사에서 진행한 첫 면접을 마칠 수 있었다. 며칠 후 정말 아무 기대도 안 했는데 인턴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날 유경언니와 기분이 좋아서 방에서 맥주를 마셨다. 근데 유경이 좀 억울한 표정으로 나에게 쏘아붙였다.
"넌 곧 취준생들에게 공공의 적이 될 거야."
"내가 왜?"
"왜겠어.... 이제 은행 뚫으려면 수화까지 배워야 되니까."
진심으로 원망 섞인 말투에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유달리 추웠던 겨울에 방에는 온기가 넘쳤다. 오래간만에 이렇게 크게 웃은 게 얼마만인지, 이렇게 면접까지 보고 합격하기까지 유경언니의 도움이 컸다. 쉽지 않은 서울살이에 유경언니 같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