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11
그때 아빠와 만났던 일은 언니에게 말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청약통장 이야기까지도, 아빠에게 질려서 나가버린 언니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간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안 봐도 뻔하였다. 그리고 언니가 바쁘다고 하면 기본 몇 개월간은 문자조차도 답장을 하지조차 않기 때문에 이런 주제를 기억해서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것보다는 '언니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 '언니는 다시 가족한테 돌아올까?'라는 생각이 언니를 떠올릴 때면 항상 따라오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궁금함이었다. 아빠가 만약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면 빨리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이미 동네 사람들에게 언니가 외국으로 연수를 갔다고 크게 거짓말을 쳐놔서 이제는 손쓸 도리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와중 1학년의 방학이 끝나감과 동시에 은행 인턴도 종료되었고 나는 매끈하게 포장된 인턴 수료증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다가오는 2학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프로젝트가 끝났어. 여기서 밤 11시에 보자."
인턴 시작하기도 전에 볼 수 있냐고 문자를 보냈는데 개강이 며칠 안 남았을 때 즘 답장이 왔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인적이 항상 드문 시간에 조용한 곳을 찾아 나란히 산책하며 대화를 하였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가족과 다시 만나서 대화할 생각은 없을지에 대해서 물어보면 전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계속 평소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이 풀리겠지 하는 생각도 있어서 그 이후로는 불편해 보일 거 같은 대화 주제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단지 그때 호텔에서 건네준 명함만 꼭 쥐고서 언니의 기분 전환만을 바랄 뿐이었다. 언니는 본인이 준 명함을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찢어서 버리라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언니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본인 나이에 맞지 않는 생활 수준을 집을 나온 지 몇 년 안에 이뤄놓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산책 잘했어, 택시 타고 가."
산책이 끝날 때면 언니는 택시를 타고 가라며 나에게 용돈을 주었다. 근데 택시 타고 가라는 용돈치고는 액수가 꽤 상당했다. 처음에는 놀라서 거부했지만 언니가 무작정 찔러 넣어주는 돈봉투를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보며 만감이 교차하였다. 언니가 무슨 일을 하는지 걱정은 되지만 언니를 볼 때마다가 나에게 주는 돈 봉투를 보며 기분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역시 어쩔 수 없는 한 평범한 인간일 뿐. 하지만 어느새인가 어디론가 멀리 갔다 오거나 밤늦게 언니를 만나는 날에는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호일리도 없고 나를 쫒는 스토커는 더더욱이 아닐 것이다. 기숙사를 들어갈 때마다 태연한 척하고는 있지만 그 옥죄는 감각은 여지없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결과는 언니에 대한 의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안녕하세요. 최수연 씨 동생 최선주 님 맞지요? 몇 가지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남성과 여성 한조로 이루어진 경찰들이 언니를 찾는다고 하며 나의 앞으로 다가왔고 며칠 후 학교 주변의 카페에서 보게 되었다. 나는 경찰을 통해서 언니가 하고 있는 일을 알 수 있었다. 언니는 도박 게임을 개발도 하고 중간에서 해킹도 하며 검은돈을 챙겨 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 천재적인 능력을 불법적인 일에 사용하는데 그 능력이 출중해서인지 조직 내에서도 꽤 높은 위치에 올라있는 거 같다고도 하였다. 한동안 잠잠했던 내 머리 위 블랙홀이 다시 커지는 거 같았다.
"충격이 크실 겁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협조를 잘해주셔야 합니다. 지금 최수연 씨가 연락을 하고 있는 몇몇 사람 중에서 범죄와 관련이 없는 사람은 앞에 계신 선생님 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개강이고 새로운 동아리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나에게는 이런 가혹함만 닥치고 있었다. 경찰 앞에서는 언니를 제대로 된 길로 인도하겠다고 말하고 언니와 연락이 되면 잘 설득해서 조사를 받으러 가게 하겠다고 말한 뒤 카페를 나왔다. 경찰도 나중에 가족끼리 의가 상하지 않게 타이트하게 붙지 않을 테니 나보고 언니를 잘 설득해서 제 발로 찾아와 조사를 받게 해달라고 하고 떠났다.
언니는 어릴 적부터 무엇인가를 잘 만들었다. 손재주도 좋았고 본인이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잘 떠올려서 구체화시키는데 특출 난 재능을 보였다. 지역에서 치러지는 수학, 과학 대회는 어렵지 않게 휩쓸었음은 물론이다.
"이거 봐봐, 이렇게 하면 저 물건이 실린 수레가 창고 안으로 들어갈 거야."
언니는 부상으로 받은 노트북을 가지고 종종 신기한 장면들을 보여줬다. 동네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들과 놀던 나와 선용이는 놀란 표정으로 언니가 만들어낸 것들을 한참을 바라보았고 우리는 이런 시골 구석 집에서 저런 사람이 나왔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평소에 동네에서도 매번 주눅 들어있다가 언니 이야기만 나오면 어깨가 자연스럽게 으쓱하게 되는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언니가 이렇게 천재성을 발휘할수록 벙어리 집안이라고 손가락질하던 마을 사람들은 점점 그 손끝에 힘이 사라져 갔고 언니가 다니던 학교 정문에 언니의 수상을 축하하는 배너가 걸리면 아빠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마을을 왔다 갔다 하였다. 그리고 아무리 촌동네라지만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세상에서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언니는 서울에 있는 최고 수준의 대학교의 정보 학과에 입학하였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상당한 실력을 가진 천재로 불렸다고 한다.
"야 자판 몇 개 두들긴다고 세상이 바뀌냐. 저것도 대부분 보면 사기야 사기."
하지만 이상하게 유독 아빠는 어느 세상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울 딸을 보면서도 집안에서는 혀를 차는 일이 잦았다. 자기가 회사에 다닐 때부터 사무직들은 은근히 싹수없었다는 말부터 언니가 생각하고 말하는 대부분을 '실체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언니가 가진 지식과 기술은 더 각광받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는데 아빠의 평가는 냉정하기만 하였고 그 둘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될수록 언니는 명절이나 방학 때도 집으로 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아빠는 그것을 이기적인 행동으로 정의하였다. 결국에는 그때 그 창고에서 쌓여왔던 모든 것들이 터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천재 중에 천재로 여겨졌던 언니는 형사 사건의 피의자로 법정에 서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소식이 마을까지 알려지면 우리 부모님은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니가 피운 꽃을 꺾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언니는 우리 가족의 멈추지 않는 파열음에 자포자기했던 거 같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을 아빠와 세상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으니까, 언니는 밖에서는 세상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천재이자 성실한 소녀였지만 그 시커먼 창고 안에서는 또 둘도 없는 이기적인 샹년으로 변해 있었다. 최소 20년 가까이 그런 야누스의 얼굴로 살아왔으니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건 이미 불가능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나나 선용이처럼 일관되게 밥버러지 일생으로 취급받으며 살았었다면 좀 덜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떳떳하게 살자 언니. 이제까지 준 용돈 다 가져가. 나 안 받아도 돼"
"경찰들 너한테 계속 찾아오는가 보네, 그리고 왜? 더러운 돈이라서 싫어? 난 더럽게 살아와서 그런지 더럽게 번 것도 그리 나쁘지 않네?"
주변에 높은 빌딩들에 가려진 어느 빌딩의 옥상, 몇 번의 연락 끝에 만난 언니는 그때 그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서 봤던 그 느낌으로 돌아왔다. 깔끔한 정장 차림도 아니었고 온 동네를 달리던 비싸 보이는 차도 없다. 언니 주변에서 그 일에 가담한 자들은 전부 조사를 받으러 갔다는 내용을 전하자 언니는 체념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 경찰서에 가서 조사받고 처벌받으면 되는 거야? 진짜 최태수의 바람대로 쓰레기 년이 되었네. 벙어리 마누라에 전과자 딸까지 동네에서 진짜 개망신이겠다. 그렇지? 속이 다 시원하네. 차라리 내가 이렇게 잘못하고 못된 년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낫지. 내가 죽도록 노력해서 잘나 봤자 집에서조차 인정도 못 받고 다른 사람들은 어느덧 내 배경을 알더라. 그 정신병자 같은 아빠도, 말 못 하고 매일 당하고 사는 엄마도, 세상은 좁고 인간들은 사악해. 처음부터 시작하면 밑바닥 인생이라고 조롱하고 위로치고 올라가면 어떻게든 찍어 누르려고 하지. 그게 이 사회의 본질이야. 그리고 아무도 날 도와주질 않지. 아빠의 소원대로 이렇게 돼서 참 기쁘다. 자 이거 받아."
언니는 네모난 상자에 담긴 무언가를 건네주더니 나를 지나치고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언니는 나보고 자격지심에 찌든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하였지만 어떻게 보면 언니가 바로 자격지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거라고, 하지만 이제까지 나와 선용이를 방패처럼 막아주었던 건 큰 언니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언니를 욕할지라도 나는 할 수 없었다. 곧장 연락받고 달려온 경찰관들도 나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고 직감했는지 이제는 자체적으로 조치하겠다고 하고 곧장 떠났다.
"야 너 수연이하고 계속 연락하고 있었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나한테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잖아. 경찰에서 찾아왔잖아.!"
"누나 수연누나 어디 있는 거야? 아무 일 없지? 엄마 쓰러지셨어!."
며칠 동안 어디도 못 나가고 꼼짝을 못 했다. 아빠에게 거의 몇 년 치 먹을 쌍욕을 다 먹은 거 같았다. 유경언니는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병원을 가지고 하였지만 난 기숙사 침대 속에서 끙끙거리며 앓아누웠다. 어느 날 못 보던 번호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최수연 씨 보호자 최선주 님 맞지요?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결국 언니의 기나긴 외출의 끝을 보았다. 차갑게 식은 언니의 손, 절규하며 달려오는 가족의 울음소리, 나는 기억 속에 있는 책의 페이지를 잘라낸 것처럼 날카로운 칼이 나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통증을 느꼈다. 이렇게 나의 언니는 조용히 불꽃 속으로 사그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