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12

by 서울길

우리는 다시 몇 안 되는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조용히 집을 돌아 나갈 예정이었지만 안 좋은 소식은 더 빠르고 매몰차게 돌았다. 상복을 입은 우리 가족들 곁으로 수연언니 친구들을 포함 우리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모였다. 마땅히 전할 위로도 할 것이 없었다. 우리 집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점장 언니도 모든 상황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수현 언니는 근 4년 만에 하얀 도자기에 담겨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훌쩍이는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집안을 천천히 돌았다. 그리고 집을 나와서 창고 앞으로 지나가려 하는데 언니가 담겨 있는 도자기를 들고 있던 선용이가 갑자기 창고로 향했다.


"아버지 잠깐 들어오시죠."


선용이의 돌발행동에 갑자기 주위가 웅성거렸다. 아빠는 갑자기 왜 저러지? 하는 표정으로 선용이를 따라 들어갔고 엄마는 망부석처럼 저 입구에서 멈춰서 버렸다. 나도 가능하면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길 거 같아서 창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너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아버지, 여기서 수연 누나한테 사과하세요."

"뭐라고? 너 미쳤어? 왜 그래?"

"저 안 미쳤고요. 사과하시라고요. 기억 안 나세요? 여기서 아버지가 맨날 누나한테 욕한 거 기억 안 나시냐고요. 4년 전에도 그렇게 하다가 그 이후로 누나가 나가서 안 들어온 거잖아요."

"야 너 수연이가 죽은 게 나 때문인 것처럼 말한다? 너는 자식 놈 죽은 애비한테 할 소리냐 이 새끼야!"


아빠는 역시 창고 안에서 그만의 본성이 튀어나왔다. 선용이의 뺨에 싸대기를 날리고 멱살을 잡았다. 그런데 선용이도 가만있지 않았다.


"당신이 죽였잖아요! 사과하세요!"


아빠만큼 덩치가 커진 선용이는 최태수의 검은 양복을 같이 붙들고 사과하라고 연신 소리를 질렀다. 같이 온사람들이 이 둘을 떨어뜨리려고 한바탕 또 난리가 났다. 남자 둘이서 벌이는 거친 몸싸움에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팍!

순간 고요해졌다. 선용이와 아빠는 고개를 돌아 뒤를 돌아봤다. 언니가 담겨 있는 하얀 도자기가 박살 났고 창고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정지화면처럼 멈추었다. 선용이와 아빠는 깨진 언니의 유골함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하였다. 몇 분이 지났을까 선용이가 일어났고 눈물로 번진 얼굴을 닦고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더니 창고를 벗어나 달려 나갔다. 엄마는 안에 상황을 보고 있다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그대로 시간이 멈추고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아빠를 남겨두고 조용히 창고를 벗어났다. 그곳이 싫어서 도망쳤던 언니는 다시 그곳에서 멈춰야만 했다. 모든 게 비극이다.


"우리 집안은 비극으로 끝날 거야."


장례를 치르면서 머릿속에서 내내 언니가 되뇌었던 그 말만이 생각났다. 그날 밤이 지나도 선용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 언니가 떠났다가 돌아오자 이제는 선용이 차례가 되었다. 선용이 또한 언니의 지금을 반복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차라리 내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학교로 가서 아무것이라도 했으면, 떨리는 손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억지로 하듯 천천히 언니의 유품을 하나하나 다 전부 뜯어보고 정리하였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 언니의 유품 중에서 어느 한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고 계속 훑어보다가 몇몇 날짜에 눈길이 멈추었다.


2009년 4월 5일 식목일, 아빠가 나에게 와서 선주가 매번 사고를 치는 건 너 때문이라고 하였다. 더 점잖게 행동하라고 하였다. 내일 영어 단어 시험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집이 무시를 안 당하려면 네가 잘해야 한다고 하였다.
2011년 10월 15일 토요일, 아빠가 창고로 끌고 와서 일을 시켰다. 내가 따뜻한 집에서 살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아빠가 열심히 일한 덕분이라고 하셨다. 선주하고 선용이도 곧 크면 여기서 일을 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구석에서는 쥐가 나오고 있었다. 놀라서 상자를 떨어뜨리면 아빠는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시는 여기에 오고 싶지 않다.
2015년 6월 7일 일요일, 아침 식사자리에서 중간고사 성적표를 내 얼굴에 던졌다. 이 따위 성적으로 학교에 다닐 거면 그만두고 아빠의 회사에서 일을 하라고 하였다. 아빠 회사의 작업장은 집 앞에 있는 창고보다 더 힘들고 하였다. 다음 기말고사에서 전교권에 들지 못하면 잠을 안 재우고 밤새 창고에 가둬놓겠다고 하였다. 엄마는 아빠가 어떤 소리를 하여도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만 떨구고 있다. 엄마는 진짜 저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일까?
2019년 10월 13일 일요일, 대학교를 장학금을 받고 들어가지 못할 거면 포기하라고 하였다. 오늘 선주와 선용이와 같이 놀러 나가겠다고 했다가 욕을 먹고 창고에서 일을 했다. 서울에서 이상한 물 먹어봤자 부모한테 대들고 거지 같은 인생을 살 거라고 하였다. 최태수는 나의 진짜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
2022년 2월 8일 화요일, 학교에 일이 있어서 일찍 가봐야 한다고 했는데 최태수는 그 자리에서 욕을 처박더니 오늘 선주와 선용이가 욕을 하며 싸웠는데 나 때문이라고 한다. 애들한테 욕을 가르친 건 내가 아니라 최태수 아닌가? 이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 거 같다. 지금 인생보다 더 최악이 있을까? 이런 버러지 인생이라면 버러지답게 살아야지. 간밤에 나갈까 싶은데 엄마가 눈에 밟힌다. 엄마는 이제는 눈도 잘 안 보이는 거 같다. 이제 눈까지 잘 안 보이면 최태수한테 제대로 사육당할 운명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모든 게 지겹다. 더러운 년, 씨발년, 벙어리집년, 개자식..... 이렇게 크고 나서도 최태수에게 들었던 말들, 최태수의 말대로 이제는 진짜 개자식으로 살아보겠다.

조용히 가방을 챙겼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언니가 쓰는 방 건너편 거실에는 아빠와 엄마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언니의 일기장들을 들고 최태수의 앞에 섰다.

파팍!!

그 순간 이후로 한동안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난 한밤중에 마을을 가로질러 달리고 있었다. 그때 언니의 일기장들을 최태수 앞에 던졌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로는 아무 기억이 없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제 다시는 그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 뒤로 기억이 흐려졌다가 다시 돌아왔다가를 반복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어느 곳에 다다랐을까 큰 도로 위로 빨간 소방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멀어지는 사이렌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정처 없이 걷거나 뛰는 것을 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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