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13

by 서울길

얼마나 잠이 들었는지, 거의 정신을 잃은 채로 버스 안에서 잠들어 있기를 몇 시간, 버스는 달리고 달려서 서울에 도착하였다. 기사님이 깨워서 간신히 일어나고 터미널 중앙홀 거대한 유리 앞에서 방금 도착한 나의 모습을 보았다. 가방을 멘 잠옷바람에 단화를 신고 있는 지금 이 모습은 귀경길이 아니라 집 앞 슈퍼마켓에 나온 거 같다. 휴대폰과 지갑은 가방 안에 넣어져 있었고 후드 주머니에는 상을 치르면서 친구들이 직접 건네준 돈봉투가 몇 개 구겨져 있었다. 나는 어떻게 여기로 왔을까? 이상하게 기숙사로 돌아가기 싫었다. 불쾌한 것들이 찾아올 거 같은 느낌,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역에 무작정 같이 내렸다. 고시원과 분식집, 피시방이 얽혀있는 동네로 대책 없이 들어가서 헤매기 시작했다.


'피씨요금 정액제 무제한, 라면 / 김밥 제공'


걷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피시방 앞에 발걸음을 멈춘다. 잘 곳은 필요한데 모텔은 비싸고 노숙은 힘드니 여기서 며칠을 버텼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나갔지만 충전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게 귀찮고 번거로울 뿐이었다. 팔, 다리 하나 까딱 움직이는 것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손가락만 딸깍거리며 인터넷의 창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고 읽었던 뉴스를 또 읽는다. 유경언니를 비롯 대학 친구들의 인스타를 들어가서 옆에 친구라도 있는 냥 지긋이 웃기도 하고 잠깐동안 잠들었다가를 반복, 엉겁결에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나는 속절없이 노답인생으로 사는 거 같고 무엇을 할지 막막한데 돋보기 속 사람들은 행복하고 활기차 보인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고 잠시 눈을 붙이는 순간, 굵은 저음의 목소리에 잠이 깨었다.


"최선주 씨 맞으시죠? 방화 살인 사건 긴급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지금부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지금부터 하는 모든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화들짝 놀라서 깨니 경찰 서너 명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예전에 언니 사건 때문에 대면했던 경찰들과는 느낌부터 다르게 서늘했다. 뒤에서는 피시방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안절부절못하고 계셨다. '방화 살인 사건? 내가 했다는 건가? 경찰들은 정중히 밖으로 나가도록 권유를 했지만 분명 강압적이었다. 신분증도 거의 반강제로 빼앗겼다.


'내가 용의자라고?'


비틀거리며 나오자 내 뒤편으로 '약 검사 해봐'라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보니 고요한 아침에 다다랐지만 나의 머리와 심장은 금세 쿵쾅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타시죠. 지금 거주지가 서대문구 XXX동 대학 기숙사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근데 제가 어떤 거에 불을 질러서 사람이 죽었어요?"

"최선주 씨 고향집 주소 이거 맞고 며칠 전에 여기 계셨었죠? 여기 집 일부가 불탔고 본인 아버지 최태수 씨가 사망했습니다."


벽돌하나가 날아와서 내 머리를 때리는 거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자 경찰들이 황급히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두 손을 얼굴에 감싸 쥐었다. 한동안 아득했던 기분이 그 탓이었나? 경찰차를 타자마자 차는 빠르게 나의 학교로 이동했고 기숙사 앞에 도착하자 유경언니가 울면서 나에게 뛰어왔다.


"선주 너 뭐야, 데체 뭔 일이야. 어디 있었던 거야!"


나와 유경언니의 방 서랍과 옷장은 전부 열려있었고, 경찰 중에 한 명이 다가와서 내가 쓰는 노트북을 볼 수 있겠냐고 하였는데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났다. 이미 수업 가기 전에 나오던 기숙사 학생들은 웅성거리며 나와 유경언니 방 앞으로 다가왔다. 눈들이 땡그래져서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하는 표정들, 수갑만 안 찼을 뿐 나는 지금 취조를 받고 있는 수사 대상자였다.


"학생분들 한쪽에 모여있지 마시고 볼일들 보시면 됩니다. 금방 끝납니다. 간단한 조사예요."


경찰관 한 명이 학생들에게 외치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나머지 세명 경찰관들은 방을 계속 조사하고 있었다. 그 와중 어떤 다른 경찰관이 달려와서 제일 나이 많아 보이는 어떤 경찰관에게 어떤 문서를 보여주며 말했고 그분의 표정이 굳어졌다가 풀리기를 반복하였다.


"우리 학생 놀랐지요? 미안합니다. 저희도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아요. 일단 너무 놀라지 마시고 현장을 가봐야 할거 같아요. 아버지도 그 근처 병원에 계십니다."


아직도 펑펑 울고 있는 유경언니를 뒤로 하고 나는 경찰들과 같이 경찰차에 탔다. 창밖으로 소문을 듣고 달려온 학생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벌떼처럼 무리 지어 있다. 차라리 극적으로 보이게 수갑을 채워주지 하는 넊나간 생각을 했지만 다행인지는 몰라도 분위기는 내가 용의자까지는 아닌 거 같다는 상황으로 가는 거 같았다. 처음 나를 보았을 때 강력범을 대면한 거 같은 경찰관들의 표정도 학교를 나올 즘에는 한결 부드러워졌으니, 다만 이렇게 일을 벌여놓은 입장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한다. 게다가 유경언니는 울면서 나를 계속 쫓아왔다. 언니에게 매우 미안하지만 언니의 반응이 나를 더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선생님 우리 서에 도착하면 어느 정도는 조사를 받아야 됩니다. 너무 걱정 말고 푹 쉬세요."

"제가 사실 집에서 뛰어나왔을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안 믿기시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경찰차 안에서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푹 자버렸다. 일종의 안도감일까 아니면 후련함일까 나도 나 자신을 못 믿겠다. 어쩌면 불을 질러서 모든 걸 태워버리겠다고 생각한 것이 진짜 나일지도.


"도착했습니다. 일단 내려보세요."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다시 집 앞으로 왔다. 집의 절반 이상은 그을음으로 시커멓게 변했고 창문도 깨져있었다. 반대편의 검은색 창고는 완전히 불타버려서 뼈대만 남고 그 안에 있던 것들까지 전부 사라졌다. 언니는 결국 화장(火葬)을 두 번 하게 된 샘일까? 내가 진짜 언니가 편하게 가라고 직접 불을 질렀을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머리를 쥐어 잡고 우두커니 한동안 서있는 나를 보자 경찰관들은 나를 다시 부축해서 경찰서로 데려갔다. 뉴스에서 봤던 진지한 분위기의 경찰서를 내가 직접 조사를 받기 위해 오다니, 경찰서 천장에서 비치는 형광등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깔고 경찰관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조사실로 오니 나에 대해서 조사한 A4사이즈 보고서와 함께 경찰관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최선주 씨 맞으시죠. 우선 심심한 위로말씀드리고 앞서 우리 경찰서 사람들이 전달한 것처럼 선생님께서 지금 당장 유력한 용의자는 아니라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근데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귀하 어머니께서도 고향집에서 같이 동거를 하셨죠? 근데 혹시 어디 계신지 소식을 알고 계십니까?"


"집에 있었을 때 아빠와 같이 다 함께 있었습니다. 언니의 노트를 아빠 앞으로 던진 것은 기억이 나는데 이상하게 그 이후로는 전혀 생각이 안 나네요. 경찰관님 말대로 제가 불을 질렀을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까 처음에 저희가 너무 놀라게 해드렸나 봅니다. 근데 저희도 어쩔 수 없는 게 계속 내용이 업데이트되면서 진행 상황이 달리 진행된 경우입니다. CCTV 조회하고 동네 주민들이 증언해 주신 내용 종합했을 때 지금 선주 씨가 유력한 상황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지금 입고 계신 옷하고 소지품도 대략적으로 조사했는데 방화 용의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놀라셨다면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다만."


경찰관이 조금 몸을 내 앞으로 앞당기며 말을 이어갔다.


"아주 최근에 선주 씨 큰언니가 사망하셨죠? 그리고 가족관계도 알아보니 조사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아버지는 창고에 난 불을 진화하시다가 사고가 나셨던 거 같고 어머니뿐 아니라 남동생도 한분 계시던데 둘 다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그러고 보니 미처 엄마의 존재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더 들어보니 동네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 한마디로 신기루처럼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 동생은 사라진 지 며칠 꽤 지났지만 엄마의 행방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경찰도 그 부분까지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있다고 한다.

식사시간이 되었고 굶은 지 꽤 되었는데도 전혀 배고프지 않았다. 이제 세상 속에 놓인 사람은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하니 돌아갈 힘도 나지 않는 거 같다. 한마디로 체념이다.


"수사관님 제가 불을 질러서 아빠를 죽인 것으로 해주세요. 이제 나가봤자 기다려줄 가족도 없네요. 감옥에 가면 세끼 밥은 주겠죠? 아빠가 그랬어요. 사람이 태어나서 세끼 걱정 안 하고 사는 것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그렇게 해주세요. 수사관님."


이 말 이후 나는 바로 정신 감정조치에 들어갔다. 상담해 주는 선생님들과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는지 여자 경찰관도 오셔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해 주셨다. 심각한 자살 위험군에 정신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학교에 이어서 경찰서 내에서도 나는 관종이 되었다. 몇 가지 조사가 끝날 때쯤에는 어깨에 여러 무늬를 붙이신 높아 보이시는 분께서 제 손을 잡아주시고 몇 가지 물어보시더니 힘내라고도 하시고 들어가셨다.


몇 가지 조사를 마치고 이튿날 나는 경찰서를 나왔다. 경찰관 한분께서 혹시 돌발 상황이 오면 연락하라고 하시고 일단 안정을 취하라고 하셨다. 집도 반절정도 불타서 갈 곳이 없으니 내가 일했던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을 받았다고 했는데도 내가 나타자나 언니가 깜짝 놀라며 잠깐 단기로 쓰라고 언니가 사는 곳 근처에 원룸을 구해다 주었다. 며칠 만에 휴대폰을 켰더니 유경언니의 부재중전화와 디엠이 한가득이다. 내가 불 지른 것은 아니라고 하고 풀려나왔으니 너무 걱정하시 말라고 하고 우리 동네 원룸에서 첫날밤을 맞이했다.


"아빠가 수연 언니 죽인 거예요."

"너도 선용이 그놈하고 똑같은 소리 하고 있다. 마음대로 해라. 너네 같은 버러지 년 놈들은 낳자마자 논바닥에 던져버렸어야 했어."


화악


불타오르고 있다. 언니와 우리를 집어삼켰던 시커멓게 생긴 창고가, 악마 같은 입모양을 일렁이며 불타오른다. 그 불길에 빠져나오고 싶은데 달리고 달려도 그 불길이 멀어지지 않는다. 먼 하늘에서 들리는 언니의 울음소리와 엄마의 숨 막힐 듯 터지는 외침이 귓가에서 맴돌고 있다. 내 머리 위에 떠있는 블랙홀은 핏빛과 화염빛이 섞여 큰 상처를 입은 것처럼 징그럽게 울렁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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