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의 시 1

[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14

by 서울길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맞은 지 이 주일째, 아빠의 장례까지 혼자서 간소하게 치르고 나서 나는 학교와 관공서에 몇 가지 신고할 것을 제외하면 바깥을 나가지도 않았고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자취방을 소개해준 점장언니가 걱정이 되어 일 끝나고 햄버거를 건네줄 때 그때마다 당장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었고 나는 점점 눈에 띄게 말라가고 있었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고 잠깐 눈을 붙일 때면 불타는 모습을 한 창고와 불을 끄다가 쓰러진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서 새벽에도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손, 발에 점점 힘이 없어지고 기력이 떨어져서 죽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이 났다.


"선주! 제발 답장 좀 하고, 어디 있는지 말해줘, 내가 갈게."


유경언니의 카톡이 쌓여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답장을 할 수 없었다. 진짜로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 아직도 세상을 떠돌고 있는 가족들이 귀신이 돼서 내 온몸을 붙드는 거 같다. 잘못하다간 점장 언니가 마련해 준 방에서 귀신으로 승천해야 할 판이다. 귀신... 귀신이라 그렇다..... 우리는 원래부터 귀신이란 거에 큰 무서움이 없었다.


"엄마는 귀신을 믿어? 안 믿어? 그럼 우리 담력테스트 할까?"

"좋다. 지금 다 같이 가요. 낮이니까 귀신이 나와도 괜찮을 거야."


어느 날인가 방 천장에서 피어오르는 구름 속 장면에서 수연언니가 제안한 옛날 무덤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포함한 네 명이 전부 발걸음을 향한다. 우리 집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서 정말 옛날에 만들어진 거 같은 돌무덤들이 있다. 세월이 흘려 많이 파손된 옛날 돌무덤들은 종종 우리 가족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였고 언니는 엄마와 선용이를 놀리고 싶을 때면 가끔 이렇게 무덤가로 와서 숨바꼭질을 하자고 하였다. 가끔 수연 언니와 선용이는 문이 열린 굴방에서 숨어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나와 엄마를 놀라게 했다. 왠지 이상하다. 창밖 너머 보이는 저 돌무덤 같은데 언니를 비롯한 몇몇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곧 전원이 꺼질 거 같은 휴대폰을 충전시키며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아침이 왔다. 무작정 간단히 챙겨 입고 나왔다. 방 주변을 보니 먹다 남은 햄버거들 몇 개가 상해 있었다. 저 돌무덤으로 가는 길에서 나를 제외한 세 가족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기다리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며 그들을 따라 달려 나갔다.


아침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돌무덤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오래전에 도굴당했던 무덤이라 남은 건 무너진 돌방이 전부였고 썩어 들어갔던 나의 마음속과 달리 무덤을 품은 숲 속 자체는 청명함 그 자체였다. 좀 더 걸어서 언니와 선용이가 자주 숨었던 돌무덤방에 들어왔다. 귓속에서 언니와 선용이가 우리를 기다리며 키득키득하는 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나도 그때의 회상을 떠올리고 푸룻 웃으며 무덤 입구에서 같이 엄마를 기다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는 올리가 없고 내 옆에 언니와 동생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웃음기와 무표정을 넘나들며 휴대폰을 쥐고 무덤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인기척이 느껴지는 거 같았다. 올라온 길을 다시 바라보자 큰 카메라를 메고 있는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 왜 혼자 거기 있어요? 괜찮으세요?"


그 남자는 한껏 긴장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까 전에 나오면서 거울을 봤는데 초췌한 몰골에 나도 놀랐으니까, 이러고 무덤 앞에 계속 쭈그려 앉아있다면 누구라도 좀비는 아닐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말할 힘이 당장은 나오지 않아서 휴대폰 화면을 켜며 정상적인 사람임을 가만히 어필하였다.


"진짜 괜찮으세요? 구급대 불러드릴까요?"


나의 머뭇머뭇하며 휴대폰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는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안심했는지 경계를 낮추고 다가와서 물어봤다. 자기는 유적지를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유튜브도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버려진 무덤 속에서 산 사람이 기어 나온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나도 조금 미안한 부분도 있어서 이 구역의 길을 안내해 주었다. 같이 가는 내내 그 사람은 나에 대해서 뭔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는 눈치였다.


"혹시, 다른 무덤에도 관심이 있으십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무슨 말이냐고 묻자 자기가 좋아하는 유적지가 산 너머에 있는데 가보겠냐는 제안이었다. 걸어가기에는 꽤 먼 곳인데 유튜버님은 그렇게 최대한 걸어 다니면서 영상을 담는다고 한다. 그리고 직접 만든 유튜브 계정을 보여주었다. 구독자는 100명 남짓, 대부분 유적지를 다니면서 찍은 영상을 올렸던 것이다.


전업 유튜버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아니라고 한다. 본인이 가져온 영상을 보관 차원에서 올리는 건데 홍보한 적은 없고 구독자는 조금씩 늘었다고 하였다. 대화를 해보니 본인일에 진심인 거 같아서 같이 따라가 보기로 했고 한 시간 넘게 생각 없이 걷고 나서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덤이 있는 곳으로 왔다. 높은 산 등선 위로 무덤이 빼곡하게 자리 잡은 곳이라서 중, 고등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 많이 오던 곳이었다. 그는 이곳은 산 정상에서 봐야 멋있는 곳이라고 하며 같이 정상에 올라가자고 하였다. 제대로 먹지도 않은 상태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려니 죽을 맛이었지만 어차피 방구석에 누워있어도 죽을 운명인 거 두 눈 질끈 감고 고분군 정상까지 올라갔다. 영양실조가 온 탓인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몇 배로 났다.


"고생 많으셨어요. 도착했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남자는 옅으면서도 기쁜 미소를 지었다.


"선주 씨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저는 6개월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어요. 시장이 너무 안 좋아서 정리해고 당한 거죠. 20대부터 시작해서 10년 가까이 일했는데 너무 아쉬웠어요. 그리고 이직 준비 하는데 잘 되지도 않고 너무 힘드네요. 그런데 어쩔 수 있나요. 이렇게 가끔씩 시간 날 때마다 돌아다녀요."


"여기 오면 행복하세요?"


"행복하다기보다는 이런데 오면 생각나는 사람도 있어서요. 사실 누나가 한 명 있었는데 병으로 일찍 죽었어요. 근데 누나도 어렸을 적에 이렇게 동산 같은 곳에 나를 많이 데리고 왔어요. 누나하고 많이 왔던 이런 비슷한 장소에 오면 누나도 많이 생각나죠."


우리는 꽤 많은 거리를 걸어왔기 때문에 나는 돌아갈 때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무덤 유투버는 또 다른 유적지를 향해 찾아간다. 유투버 구독버튼을 누르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거의 몇 주 만에 내 몸속 장기가 일을 하는 거 같았다. 동네에 도착해서 점장 언니네 가게에 들르자 언니는 놀라며 나를 안아주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선용이와 많이 갔던 그 언덕에서 아까 유투버 오빠가 말해주던 그 기억을 되새기고 싶었다. 혹시나 선용이가 어딘가 헤매고 다니다가 그곳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새까맣게 타들어가버린 본가를 지나쳐서 나와 선용이가 많이 오르던 동산으로 향했다. 낡은 성벽과 머나먼 들판 속 논밭이 일렁이는 것이 보이던 장소였다. 해가 지면 저 멀리 바다 물결 사이로 햇빛이 습윤한 곳, 어린 선용이를 안고서 우두커니 앉았던 그곳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 혹시 선주 아니니? 너무 오랜만이다 선주야. 소식은 들었는데 어디 있었니!"


어느덧 일어설 채비를 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성당에 갈 때마다 과자와 계란을 가끔 나누어 주셨던 성당 직원분이다. 이 동네에 큰 사건이 일어날 일이 없는데 우리 집에서 연달아 큰 사건이 터져서 성당에 계신 분들도 많이 놀랐다고 하였다.


"근데 있잖아..... 혹시 알지 모르는데 선용이가 지금 연락이 되니? 거의 한 달 다 됐는데 말해줘야 할거 같아서 그래. 그때 선용이가 수연이 장지 가는 날 성당에 들어왔었어. 그 뒤로 어디로 가더니 전혀 안보이더라. 너도 알까 싶어서."


그날 창고에서 사건이 터진 날 선용이는 떠나기 전 성당에 온 모양이다. 나도 다시 선용이가 들어갔던 길을 따라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스테인드 글라스에 비치는 형상은 아직도 아름답다. 성당 내부를 천천히 돌았을까 성당 입구 구석에 아이들이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적어놓은 것들이 가득했다. 다가가봤더니 유독 큰 종이에 담겨 있는 또박또박하게 적힌 글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에 있는 어두운 동굴

아빠는 그 속에서 매일 악마가 되었고

누나는 그 속에서 영원히 잠들어야 했고

남은 우리는 매일 이곳으로 달려야 했다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 수 없었던 깊고 어두운 동굴


모든 게 다 무능한 나의 잘못이다. 모든 이에게 미안하다.


내 머리 위로 찌릿한 번개가 뚫고 지나갔다. 휘청이며 벽에 기대자 직원이 놀라서 달려왔다. 괜찮다고 말하고 성당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은 거 같았다. 사라져 버린 엄마와 선용이를 다시 찾아와야겠다. 그리고 선용이를 다시 보면 꼭 말해줘야겠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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