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16
"엄마 아빠는 고향이 어디예요? 우리는 명절에 왜 큰집에 안 가요?"
"엄마 아빠는 둘이 어떻게 만났어요?"
"엄마 여기 흉터 왜 그런 거예요? 어디 부딪혀서 다친 거야?"
이력서에 적혀 있었던 엄마가 있었던 보육원으로 향하던 중,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자 바깥에서 밀려오는 냉기가 머릿속으로 스며들며 과거의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다. 과거에서 지금까지 내가 속한 우리의 존재가 회상 속에서 적나라하게 뚜렷해지고 있다. 버스에서 규칙적으로 울리며 전달되는 유리창의 진동은 나의 온몸을 빠르게 꿈속으로 향해 내려가게 하였다.
철없을 적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물어보았던 부모에게 향했던 질문들은 이내 차가운 눈빛 또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는 외면으로 다가왔고 언니와 나 선용이는 어느새 엄마 아빠의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에 다다랐다. 알고 보면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 일 수도 있으며 어느 누구도 내용을 안다면 크게 동요하지 않을 사실과 가설들은 인간의 교묘함과 저열함을 적절하게 섞여서 우리를 슬며시 하급 한 존재로 간주되어 하릴없이 오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뭉근하게 씹히는 소재가 되었다.
아빠는 옛날에 조폭 출신이었고 엄마를 보쌈해서 왔다느니, 벙어리 자식이 공부를 잘하는 건 뭔가 뒤가 구린게 있다든지.....
아프리카 평원에서 서식하는 연악한 초식동물과도 같은 엄마와 우리들이 지나갈 때마다 간간이 들릴 듯 말듯하게 조소 섞인 비아냥을 내뱉던 그 몇몇 인간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점장언니는 우리들이 처했던 이런 현실들을 듣고 인간 혐오증에 걸릴 거 같다고 매우 질색을 하며 분노하였다. 점장 언니도 목숨을 걸고 북한에서 탈출하여 돌고 돌아서 이곳에 정착하였지만 온갖 뒷이야기가 나왔으며 똑같은 한국의 시민이라지만 현 사회에 대한 무지함과 이질적인 북한 사투리가 버무려져 2등 시민으로의 굴레를 안고 살아야만 했다. 신체적 하자가 있는 집안과 탈북자 1인가구, 그 '출신과 성분'을 따지는 것은 우리나라도 북한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우리나라는 이주가 허락된 자유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곳으로 가서 리셋이 가능하다는 것, 수연언니가 서울로 가서 결국에는 우리 모두와 인연을 끈은 것 또한 작은 인간 세상의 저열한 수준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언니들과는 달리 우리 엄마는 그러하지 못했다. 작고 가냘프고 사회 생활하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인간, 엄마는 우리들에게 늘 미안해했고 아빠는 그 점을 알고도 엄마와 결혼했음에도 자기의 비참함을 탓하는 과묵한 괴로움이 늘 우리 집에 맴돌았다. 모두의 가슴속 새까맣게 얽어지는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는 패배의식과 비참함은 세 남매의 존재 자체를 귀태(鬼胎)화 시켰을지도 모르겠다.
바닷가와 누런 갈대밭이 뒤섞인 수수한 배경이 인상적인 보육원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고자 왔다. 예상대로 그곳에서는 엄마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공장과는 달리 이곳에서 보육받은 사람들은 이름조차도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공개할 수가 없다고 한다. 결국 당사자를 직접 찾으라는 말과 함께 별도리 없이 보육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알아낸 거 없이 헛걸음을 하게 되었고 단지 나는 엄마가 소녀 때의 추억을 공유했을 바닷가 옆길을 따라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한적한 이 동네에서 보이는 거라곤 보육원과 저 높은 산 중턱에 걸쳐있는 절밖에 없다. 잠시 멈춰 서서 엄마가 어릴 적 보았던 그 광경을 똑같이 바라보며 있는 와중 저 멀리 절 마크를 달은 승합차가 나를 지나쳐 길을 올라간다. 그 차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중, 갑자기 그 승합차가 멈추더니 천천히 후진하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어디를 찾으러 오셨습니까? 인적이 드문 곳이라 해가 지기 전에 빨리 가보시는 게 좋습니다."
차를 몰던 비구니 스님께서 차의 창문을 열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저 앞에 보육원에 계셨었는데 알아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근데 원생들 신상은 알려줄 수 없다고 해서 근처에 그냥 있었어요."
"그렇구나 저기 보육원생들이 저희 절에 지금도 많이 방문하세요. 혹시 모르니까 저희 절에 와보시겠어요?"
스님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절로 향했다. 비포장된 길을 먼지를 날리며 달리며 도착하자 스님이 물어보았다.
"혹시 지금 어머님과 연락이 안 되시는 상황인가요? 어떤 게 필요하신지 알려주시면 저희도 보육원 측에 연락해서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면 도와드릴게요."
생각을 해보니 내가 보육원을 찾아와 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엄마가 이곳에 있지 않은 이상 과거를 캐봐야 나올 것은 없으니,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자 스님도 막막한 표정을 지으며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종무실로 들어갔다.
"선주 씨 맞으시죠.? 어머니 찾으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도 보육원에 연락했는데 함부로 신상 카드를 보여드릴 수 없다고 하네요. 다만 저희 사찰에 원생들이 활동했을 때 사진이나 작품들이 남아 있는 게 있는데 한번 찾아보시겠어요?"
절 사무실 직원이 나와서 나에게 제안을 해주었고 그거 외에는 할 게 없어서 창고 뒤지듯 보육원생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보았다. 오랜 시간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다시 오신 스님과 사찰 직원은 너무 급하게 찾지 말고 템플스테이라도 할 겸 절에서 하루 묵었다 가는 것을 추천하셨다. 다음날까지 한번 찾아보기로 하고 템플스테이 장소에 짐을 풀고 잠시 몸을 누였다.
오랜 길을 달려왔으니 피곤할 줄 알았는데 눈은 전혀 감기지도 않았고 정신도 또렷하였다. 사찰의 창문 너머에 붉은색 초롱불 빛을 띠는 방이 보였다. 호기심에 다시 신발을 신고 그 방으로 향했다. 예전에 이 절에서 열반하신 주지 스님이 쓰시던 방이라고 한다. 은은한 향냄새와 미소를 머금고 있는 금빛 작은 불상이 눈에 들어왔고 하루 묵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방 주변을 돌아봤다.
'주지 스님 유품 전시'
작은 유리 케이스에 주지 스님이 활동하던 시절 사진과 직접 쓴 책들이 남아 있었고 펼쳐져 있는 사진을 보다가 아주 작은 어린아이가 주지스님 앞에서 쭈그려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엄마의 어렸을 적 모습이 분명했다. 이마에는 작은 붕대를 메고 있었다. 엄마의 모습은 사진으로 봐도 초라하고 황량해 보였다. 지금 어딘가에서 고생하고 있을지도 모를 엄마는 수십 년 전 이곳에서도 고달픈 삶을 살고 있었다. 유리 케이스로 눈물이 절로 뚝뚝 떨어졌다. 물어볼 때마다 대답을 피하던 엄마의 이마에 난 상처는 어릴 적 보육원에 있을 때부터 생긴 상처였던 것이 틀림없었다. 나도 한참을 사진 앞에서 쭈그려 앉았다가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바로 스님과 사무실을 찾아가서 저 사진 속 여자아이가 나의 엄마가 분명하고 사진을 자세히 꺼내볼 수 없겠냐고 물어봤다. 스님과 종무소 직원은 덤덤하게 대답하였다.
"전에 계시던 주지 스님께서 아이들을 많이 챙겨주시고 특히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많이 돌봐주셨었다고 들었어요. 주지 스님이 선주 씨 어머님을 많이 챙겨주셨나 보네요."
같이 주지 스님 방으로 다시 가서 잠겨있는 서랍들을 열고 주지 스님의 유품들을 더 많이 보여주셨다. 편지 들 속에서 주지스님과 어머니가 글로 대화를 나눈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보육원을 나와 이곳에서 계속 공부해서 불교에 귀의하고 싶습니다.'
'보육원 생활이 쉽지 않은가 보구나, 그런데 내가 꼭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한번 속세에서 열심히 살아보고 좋은 베필을 만나서 가족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떠냐? 이곳은 깨달음을 얻고자 오는 것이지 단지 속세를 버리고 싶어서 오는 곳이 아니다. 좋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산다면 다시 이곳으로 와서 수행만 해도 늦지 않다. 너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길 것이다.'
'저는 처음부터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부모에게도 버림받고 항상 천대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갈 곳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 어디든 너의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도 너를 모두가 아껴주고 있다. 나가서 한번 열심히 살아보거라. 그리고 도저히 안되거든 그때 돌아오너라. 그땐 내가 직접 수계를 내려주겠다.'
엄마를 잘 보살펴 주시던 주지 스님은 돌아가셨지만 그 따뜻함은 나 또한 평소에 느낄 수 없던 것이었다. 큰 스님의 유품들 앞에서 다시 한번 큰절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고 모든 상황을 들은 스님들과 직원들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하였다. 절을 떠나기 전 나를 절로 데려다주셨던 스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선주님이 하셔야 할 것이 생겼습니다. 혹시 어머니가 이곳으로 오신다면 제가 꼭 선주님께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주님은 동생을 찾으셔야죠. 행복한 가정을 다시 이루어 어머니의 소원을 꼭 풀어주십시오. 어머니도 선주님이 여기 온 사실을 알면 매우 기뻐하실 겁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언니도."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시겠다는 것을 정중히 거절하고 절을 나와 보육원을 지나서 버스가 오는 정류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수십 년 전 주지스님의 말을 듣고 엄마는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걱정 마 내가 만들어볼게.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살자, 선용이도 곧 찾게 될 거야.'
이제 다시 서울로 간다 해도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 주지 스님이 엄마에게 전한 메시지는 나에게 전달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남은 가족들이 꼭 다시 모일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엄마와 선용이를 다시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며 언덕길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