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나를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들. 15
이번학기는 휴학을 하고 한동안 고향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마침 점장언니의 부탁으로 매장에 일손이 필요하여 언니네 가게에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유경언니가 연락이 와서 우리 동네에 놀러 오게 되었다. 서울에서 몇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언니는 유독 낯선 시골의 모습에 어색해하였고 언니가 살던 곳에 비해서는 매우 불편한 이 동네에 대해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나도 여기 살았으면 기를 쓰고 서울로 왔을 거야, 밤이면 더 무서워."
"그나마 이 정도 된 것도 기적이야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가게 아니었음 햄버거 사 먹으려면 여기서 버스로 30분은 나가야 돼, 근데 버스가 한 시간 십 분마다 한 대씩 와."
징검다리 휴일에 자연인 생활을 마음껏 체험한 언니는 빨리 서울로 돌아오라고 하면서 그대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다시 돌아갔고 나는 다시 학교대신 매장과 자취방을 오가는 생활을 몇 개월 지속하였다. 어느 날 컴퓨터를 하고 방정리 한 뒤 누워있는데 책장 위로 수연언니가 준 박스가 눈에 띄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엄마가 건네주었다는 전기인두였다. 작은 체구의 엄마가 이것을 가지고 일을 했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인두를 자세히 보는데 무언가 시커멓게 매직으로 칠해진 사이로 노란색 글씨와 숫자가 보이는 거 같다. 소독용 알코올로 살짝 닦아 보자 레터링과 함께 전화번호가 보였다.
XX정공 : 055-XXX-XXXX
업체이름과 전화번호를 검색해 보니 공장이름이었고 주소는 옮겼지만 계속 성업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이곳에서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산업도시에 있었다. 혹시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다시 저기로 가서 일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밤 잠을 못 이루고 공장의 위치를 계속해서 들여다보았다. 다음날 몇 번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인두기에 적힌 저 번호로 전화를 해보았다.
"여보세요. 혹시 XX 정공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어디서 연락을 주셨죠?"
처음 들어보는 딱딱한 사무적인 말투에 대화를 더 못하고 전화기를 끊어버렸다. 그래도 일부러 숨긴듯한 연락처가 있는 인두기와 그것을 아무 관련 없는 큰언니한테 줬다는 건 뭔가 의미 있는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떠날 줄을 몰랐다. 몇 번을 고민하다가 직접 그곳에 가보기로 결심하였다. 평일 어느 날 점장 언니에게 볼일을 보러 외부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그 지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논밭이 넓게 펼쳐진 우리 동네와는 달리 여기는 큰 트럭들과 굴뚝들이 엄청나게 큰 공기를 내뿜는 곳이었다. 빌딩 숲이 펼쳐지는 도시의 거대함과는 다른 느낌의 거대함이 돋보이는 곳, 터미널에서 공장을 찾아가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무턱대고 공장으로 다가왔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장 엄마가 여기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릴까도 생각하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만큼 손을 불끈 쥐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일하시는 분을 좀 찾고 싶어서 왔습니다. 임미수라고........"
"네? 임미수? 저희 회사에 그런 사람 없는데요?"
"혹시 여기서 임미수라는 분이 일이라도 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근무자 이력카드가 있는데 개인정보라서 함부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분 하고 직접 연락해 보세요."
뜬금없이 찾아와서 사람을 찾는다고 하니까 공장 직원들도 어이없다는 듯 살펴본다. 소란이 계속되자 공장에 높아 보이시는 분이 사무실 뒷자리에서 나와서 물어보셨다.
"임미수라고 하셨나요? 여기서 일하신 게 맞아요?"
"네 그 사실 엄마가 주신 건데......... 이걸 보고 왔습니다."
그분에게 인두기를 보여주자 놀라서 그분이 외친다.
"와 이거 진짜 예전에 쓰던 우리 회사 비품 맞는데, 이거 어디서 났어요? 와 신기하다."
그리고 곧장 예전 직원들한테 우리가 예전에 쓰던 수작업용 장비라고 하자 몇몇 직원이 와서 신기한 듯 쳐다본다.
"잠깐만요. 우리 사장님께 한번 말씀드려 볼게 잠시만, 찾으시는 분 성함이 임미수라고 맞죠?"
내가 전달한 인두기를 가지고 그분은 사장님실에 올라갔고 몇 분 후에 무언가 소란이 나더니 어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님이 빠르게 나오셨다. 그분이 사장님이라고 하시는데.
"혹시 임미수 씨 찾으시러 왔나요? 그분이 댁한테 어떤 분 되십니까? 혹시 엄마?"
"네 맞습니다.... 저희 엄마입니다. 지금 좀 상황이...... 이렇게라도 어머니가 혹시 계신가 해서요."
"아이고!! 미수가 나가서 딸까지 낳았구나 아이고~ 아이고~."
사장님은 연신 나의 손을 꼭 잡으시더니 사장실로 가자고 하였다. 사장님의 격한 반응에 직원들이 놀라서 다가왔다.
"예전에 아....... 그 아니다. 너희들은 알 거 없다."
반가움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사장님의 표정에 나를 포함한 전부가 의아해했고 인두기를 전달해 준 높으신 분도 한동안 황당하여있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사장님실에 가자마자 비서도 잠깐 나가라고 하고 나와 독대를 하였다.
"맞아요. 맞아. 정말 오래전이었지 임미수라고 여기서 일을 했었어. 근데 그 딸이 이렇게 커서 왔구나."
예상대로 엄마는 이곳에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장님은 어머니를 매우 아껴준 듯하였다.
"애가 정말 고생도 많이 하고 했는데 똑똑하고 그랬는데...... 갑자기 나가서 소식이 끊겼지.... 우리가 잘못한 거다. 그때 우리 남편 사장님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도 태수하고 미수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하셨지."
갑자기 나온 익숙한 이름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태...... 태수요?"
"그래 태수...... 그때 이 회사를 갑자기 그만둔 게 태수라는 친구하고 그리고 네 엄마 미수였어."
"저 태수..... 그분이 아마 우리 아버지일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러니.......... 그렇구나....... 그래 미수......... 태수도 그렇고 둘이 갈 곳이 없었어... 그렇게 된 거구나."
사장님은 아빠의 이야기를 듣더니 한숨을 푹 쉬면서 연신 아빠의 기구함을 한탄하셨다. 그러다가 캐비닛으로 가서 한동안 무엇인가를 찾으시더니 아빠와 엄마의 이력서를 가지고 나오셨다. 누렇게 빛바랜 종이 위에 앳된 모습의 아빠와 엄마의 사진이 있었다.
"그래 선주야. 한번 미수 이력서에 나온 데로 한번 연락을 해보거라, 아마 거기서도 뭔가 나올 수 있을 거야. 근데 그 태수 너 아빠 이력서에 나온 건 맞지가 않을 거야...... 여기 나온 학교하고 주거지가 맞지가 않고 혹시 들었니? 태수도 거 보육원을 나온 걸로 알고 있다."
사장님은 아빠와 엄마의 과거의 이야기로 향할수록 점점 말수를 줄이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냥 공장에 있는 사람들과 트러블이 생겨서 갑작스럽게 퇴사하고 나갔다고 하였다. 왠지 아빠와 엄마가 맺어지게 된 인연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아참 내가 언제라도 너네 만나면 전해주려고 했다. 근데 네가 받는 게 맞는 거 같아. 기다려봐."
사장님은 본인 책상으로 가시더니 곧 돈 봉투를 두 개를 들고 와서 나에게 전달하였다.
"너무 미안해서 직원들끼리 전별금이라도 챙겨주려고 했었어, 근데 너무 걔들이 너무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너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일하면서 손도 다치고 했었거든, 그리고 일도 있었고..... 아무튼 자 선주야 네가 이거 챙기고 엄마라도 보면 꼭 전해줘라. 그리고 엄마하고 같이 꼭 다시 찾아오너라 알겠지?"
공장을 나와서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 내 손에는 젊은 모습의 사진이 담긴 아빠와 엄마의 이력서 복사본이 들려 있었다. 터미널에서 엄마와 아빠의 이력서 내용에 나온 내용을 검색을 해보니 아빠의 이력서에는 전혀 일치하는 내용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있었던 보육원은 아직 남아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마음을 바꿔 엄마가 성장했던 그곳으로 곧장 발길을 돌렸다. 어떻게든 힌트를 찾고 싶었다. 엄마의 과거와 앞으로 남은 가족의 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