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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 Feb 28. 2023

3.1운동은 왜 3월1일에 일어났을까?

제104주년 삼일절 기념 3.1운동 이야기

다가오는 3월 1일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시나요? 바로 대한민국 건립의 근간이 된 중요하고도 숭고한 날, 삼일절인데요, 삼일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주목해 주세요!




일제강점기 최고의 민족운동 '3·1운동'

3·1운동 첫날 서울에서의 만세 시위 중 한 장면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1919년 우리나라는 일본의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하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1919년 1월에 고종 황제가 승하하면서 그 이유가 일본의 독살 때문이라는 소문으로 백성들의 분노가 커졌고

이에 더해 미국과 러시아의 ‘제국주의 국가에 지배당하는 약소민족들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발표가 촉발제가 되며,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는 3·1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일제 치하의 불법성과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전 세계에 알리자!"





Q1. 왜 3월 1일이었을까요?

처음 거사일은 고종의 장례식인 1919년 3월 3일 월요일로 내정되었으나, 장례식을 택하는 것은 전 황제에 대한 불경이라는 천도교 측의 의견과 2일은 일요일이므로 피하자는 기독교 측의 의견으로 3월 1일 토요일에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Q2. 3·1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었나요?

종교대표인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학생들의 주도하에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만세 시위의 함성이 울려 퍼지게 되는데요, 3·1운동은 수개월 동안 지속되며 중·소도시를 거쳐서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전파되는 위대한 민족 운동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태화관 구 건물(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Q3. 3·1운동이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3·1운동은 엄청난 변화를 만들었는데요, 가장 먼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또, 3·1운동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민족운동을, 국외에서는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일본의 무단통치 방법까지 완화시키는 파급력을 보여주었습니다.




3·1운동의 핵심 '3·1독립선언서' 자세히 알기


독립선언서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3·1독립선언서는 3·1운동에 맞추어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선언서입니다.

3·1독립선언서 원문 일부
[원문]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뜻]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당시 쓰인 독립선언문은 국·한문의 혼용으로 지금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2019년에 3.1독립선언서를 현대 말로 풀어쓴「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가 제작되었습니다.

출처: 대통령 직속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지금부터 3.1독립선언서의 현대문 일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떨쳐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나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나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어둡고 낡은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 모두와 함께 즐겁고 새롭게 되살아날 것이다. 
수천 년 전 조상의 영혼이 안에서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우리를 지켜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조선을 세운 지 4252년 3월 1일(1919년 3월 1일) 

- 조선민족 대표 -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하지만 아직 일부 외국 교과서에 대한민국의 역사가 왜곡되어 기재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지금도 많은 분께서 대한민국의 독립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3·1독립선언서 낭독 캠페인을 추진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3·1독립선언서를 세계로 알린 특파원의 집 '딜쿠샤'
(좌) 1926년 화재가 발생하기 이전의 딜쿠샤 / (우) 복원 후 전시관으로 개관된 딜쿠샤

3·1독립선언서는 '앨버트 W. 테일러'를 통해 해외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앨버트 W. 테일러는 광산기술자였던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조선에 입국했으며, 연극배우였던 메리 L. 테일러와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이후 앨버트 W. 테일러는 연합통신(AP, Associated Press)의 고종의 장례식을 취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당시 메리 L. 테일러의 출산으로 병원에 있던 그는 우연히 병원 침대 속에 숨겨진 독립선언서를 발견, 3·1운동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여 동생 윌리엄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후 윌리엄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전신을 보내며, 대한민국의 독립 선언을 알리는 3·1독립선언서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답니다.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의 이름인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가 독립 운동을 했던 행적을 역사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전시관을 조성하여 2021년 3월 1일에 개관했습니다.

딜쿠샤는 서울시 종로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한데요, 단, 전시해설 서비스를 이용하시려면 사전 예약이 필수라는 점 참고해 주세요!  ☞ 딜쿠샤 관람안내



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3·1운동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첫 줄에 기록될 만큼 최대 규모의 강력한 항일운동이었으며. 국내외에 민족의 독립 의지와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삼일절에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희생한 많은 분의 숭고한 정신을 마음속 깊이 되새기며, 대한 독립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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